"스토킹 피해자 꽃다운 나이에 죽었는데, 그들은 떳떳한가요?"

윤성효 2024. 5. 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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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동갑내기 남자친구에 맞아 죽은 여성 추모식... 40여 일 만에 장례

[윤성효 기자]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는 24일 거제시 가정행복지원센터 다목적홀에서 “당신을 기억하며, 폭력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추모식을 열었다.
ⓒ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왜 지켜주지 못했을까요. 지킬 수 있었는데 지키려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닌가요. 법이 있는 우리나라, 법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우리나라 아닌가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오늘 떠나보내는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안전한 나라가 맞는지 묻게 됩니다. 왜 지켜주지 않았나요? 왜 안심하라는 답을 줄 수 없었나요?"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동갑내기 전 남자친구에게 맞아 목숨을 잃은 ㄱ(20)씨를 추모하며 한 말이다. 윤 대표는 24일 오전 거제시 가정행복지원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눈물을 보이며 추모사를 했다.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는 이날 '당신을 기억하며, 폭력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추모식을 연 것이다. 이들 단체는 "차가운 병원에서 40여 일을 외롭게 보낸 님이 이제는 먼 길을 떠나려 한다"라며 "가는 길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게 함께 배웅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ㄱ씨는 지난 4월 1일 거제시 고현동 소재 원룸에서 동갑내기 남자친구인 ㄴ씨에게 얼굴과 머리를 구타 당해 외상성경막하출혈, 뇌출혈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고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같은 달 10일 숨을 거두었다.

남자친구 ㄴ씨는 경찰에 긴급체포됐다가 검찰이 긴급성을 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승인해 풀려났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회신 등에 따라 상해치사 혐의로 지난 20일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에서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ㄴ씨가 풀려난 뒤 장례를 미뤄왔던 유족 측은 25일 발인 등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장례에 앞서 열린 추모식에는 많은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을 사람"

윤소영 대표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을 사람, 누려야 했던 행복과 경험이 너무도 많이 남았던 사람, 꿈과 사랑, 가족과 친구들, 주변에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 하던 모든 이들을 힘겹게 떠나는 안타까운 청춘을 오늘 보내고자 한다"라며 "갑작스런 이별 앞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되뇌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고를 해도, 피해를 당했다고 해도, 내가 위협받고 있다고 해도, 결국 목숨을 잃어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경찰들, 법이 없다면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아무 것도 만들지 않는 국회의원들, 있는 법으로도 적극 조치를 취하지 않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서비스 대상자라고 착각하는 사법당국의 검찰들, 재판관들,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서 무관심한 사람들, 그리고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도 다시 가해를 하는 무지한 사람들. 그들은 떳떳한가"라고 물었다.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는 24일 거제시 가정행복지원센터 다목적홀에서 “당신을 기억하며, 폭력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추모식을 열었다.
ⓒ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울지 않겠다"라고 한 윤 대표는 "기억하고 싸워나가겠다.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행동에 함께 할 것이다. 사법부가 이 죽음에 어떤 책임을 다하는지 끝까지 함께 지켜볼 것이다. 사랑이라는 거짓말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다시는 활개치지 못하게 하는 교체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법을 제정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부회장은 "고인은 간호사를 꿈꾸며 열심히 살아온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제대로 꽃 피워 보지 못하고 너무나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해 더욱 안타깝고 황망하다"라며 "이제 먼 길을 떠나려 한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우리 모두 여기 모였다"라고 인사했다.

이 부회장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원에서 쇠로 된 너클을 끼고 있는 가해자로부터 살려달라는 비명도 못하고 살해 당했다"라며 "머리가 짧은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무차별 폭행하는 편의점 폭행사건(뿐만 아니라), 여성이 먼저 이별을 고한다고, 날 거절하면 안돼라는 무차별 폭력을 당하며 심지어 살해됐다고 한다"라고 한국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2023년 한 해 동안 최소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죽거나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현실"라고 했다.

"19시간에 1명이 살해되거나 살인미수 피해 당해"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2023년 '언론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살해 피해를 당한 여성은 최소 449명으로 그 중 138명의 피해자가 사망했고 311명이 살인미수로 나타났다"라며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9시간에 1명이 살해되거나 살인미수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또 다른 피해자는 목숨을 잃거나 일상이 파괴되고 있는데 사법기관은 여전히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주목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회복을 우선시 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협의회는 "국가와 사법부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원인이 '피해자가 자신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가해자의 잘못된 통념, 가해자의 행태를 용인하는 사회 구조적 성차별'에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사법기관은 피해자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할 것", "교제폭력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할 것", "교제폭력피해자에게 가정폭력, 스토킹범죄 피해자와 동일한 보호조치를 적용할 것",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에 대한 가중처벌을 위한 법안 개정을 할 것",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관해 피해자의 처벌불원서는 감형사유에서 제외시킬 것"을 촉구했다.

ㄱ씨와 ㄴ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귀었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진학했지만 ㄱ씨가 ㄴ씨에게 잦은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2년 말부터 2023년 10월까지 총 11건의 112신고가 있었고, ㄴ씨한테 스마트워치가 지급되기도 했다.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는 24일 거제시 가정행복지원센터 다목적홀에서 “당신을 기억하며, 폭력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추모식을 열었다.
ⓒ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 거제YWCA성폭력상담소는 24일 거제시 가정행복지원센터 다목적홀에서 “당신을 기억하며, 폭력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추모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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