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센 여자, 정유인

이예지 2024. 5.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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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몸, 태닝된 피부, 굽히지 않는 마음. 물에선 맨발로 28m를 잠수하고, 땅에선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더 단단해진 정유인 선수가 말하는 기쁨과 용기와 평등.
재킷 song for the mute. 브라톱 본인 소장품.

Q : 근사하게 태닝이 됐네요!

A : 자연 태닝입니다. 프리다이빙, 서핑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탔어요.

Q : 닮고 싶은, 아주 멋진 몸이에요. 어릴 때부터 체격이 좋았나요?

A : 표준체중으로 태어나 5살 때부터 수영을 했어요.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골격이 발달하며 어깨가 벌어지고 역삼각형 몸매가 됐죠. 별명이 ‘어깨’, ‘아빠 옷’이었어요. 아빠처럼 큰 옷을 입는다고. 남자애들이 턱걸이 내기를 하자며 도전을 많이 했는데, 져본 적이 없네요.(웃음)

Q : 어린 마음에 그런 별명이 속상하진 않았어요?

A : 전혀요. 부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서 주변에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주변 오빠들이 “너 DNA 좀 내가 가져가자”라고 할 정도였죠.(웃음) 수영 선수들은 대부분 근육이 작은 편인데, 저는 근육이 되게 크니까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남들의 시선보다 옷 사이즈가 안 맞는 게 꽤 스트레스긴 했어요. 교복을 사이즈에 딱 맞게 입으면 팔을 들 수도 없고 머리를 묶을 수도 없고, 집에 와보면 피멍이 들어 있을 정도였죠.

Q : 기성복을 입기 어려울 것 같아요. 가뜩이나 한국에선 여성 옷 사이즈가 작게 나오니까요.

A : 맞아요. 테일러 숍에서 슈트를 맞추며 제 어깨가 53cm라는 걸 알았는데, 키 185cm 정도의 어깨라고 하더라고요. 어깨뿐 아니라 암홀, 팔 두께, 맞는 옷이 없어요. 주로 슬리브리스 톱을 입고, 스판이 들어간 옷, 남자 옷, 미국 브랜드를 많이 입죠.

보디슈트 Zara. 슈즈 dolce&gabbana.

Q :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체형이죠. 사람들의 편견에 맞닥뜨릴 때도 있나요?

A : 많죠. 제 SNS나 유튜브만 봐도, “여자 몸이 왜 저래?”, ”여자 어깨가 어떻게 저래?”라는 댓글이 한가득이에요. 근데, 저는 여자고, 제 몸은 여자 몸이잖아요.(웃음) 그런 사람들 얘기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그럴수록 뻔뻔하게 오히려 내놓고 다녀요. 비키니 입고, 슬리브리스 톱 입고!

Q :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나요?

A : 네. 저는 마음에 들어요. 저는 남들과 다른 거, 평범하지 않은 걸 좋아해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죠.

Q : 어떻게 하면 이렇게 근육을 벌크업할 수 있나요?

A : 체질이에요. 저는 수영만 해도 펌핑이 돼요.(웃음) 지금 이 몸도 2년간 웨이트를 쉰 거예요.

Q : 웨이트를 2년 쉰 몸이라고요! 믿기지 않아요. 3대 215를 친다는 말을 봤는데, 사실인가요?

A : 네. 웨이트를 별로 안 했을 때 기록인데 제대로 하면 3대 300까지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웃음) 여성들이 벤치 프레스가 약한 편인데, 저는 벤치 프레스를 잘 들거든요.

Q : 피지컬로 유명해졌지만, 10대 때부터 수영 선수로 활동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7개를 땄고, 2019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죠. 당신에게 수영이란?

A : 한글보다 수영을 먼저 배웠어요. 5살 때부터 했으니 이제 27년 차네요. 제 인생 자체고, 앞으로도 함께할 동반자예요.

후드 집업 재킷 Khy. 튜브톱 Adidas. 쇼츠 Golden goose. 목걸이, 워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프리다이빙, 서핑 등 물놀이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A : 웨이크보드도 탑니다. 휴가도 꼭 물 있는 곳으로 가요.(웃음) 프리다이빙은 최근에 시작했는데, 안 배우고 스노쿨링만 했을 때도 7~8m는 그냥 들어갔죠. 전국체전 끝나고 지난해 11월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프리다이빙 자격증인 아이다 3까지 취득했는데, 사실 자격증 따기 전부터 이미 그 수심을 넘었어요. 맨 몸으로 오리발 안 끼고 28m를 내려갔거든요. 한국 기록이 50m라는데, 그 기록을 깨려고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처음이어서 할 때마다 제 자체 기록이 경신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어요.

Q : ‘수속성’ 그 자체네요.(웃음) 물이 왜 그렇게 좋아요?

A : 편안해요. 물속에 있으면 땅에서보다 자유로운 기분이에요. 지구의 70%가 물인데 물에 못 들어가면 우리는 30%만 보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바닷속에 얼마나 멋진 해양생물이 많은데요. 얼마 전 일본 아마미오섬 바다에서 혹등고래와 프리다이빙을 하고 왔어요. 잔잔하고 먹을 것도 많아서 혹등고래가 출산 및 육아를 하러 오는 곳이에요. 엄마가 아기 고래 부력 맞추는 것, 꼬리 치는 것을 알려주는 걸 봤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Q : 하지만 땅에서도 멋있잖아요. 오늘 스튜디오로 할리데이비슨을 직접 몰고 왔죠. 입문한 계기가 있어요?

A : 제가 어릴 때부터 수영을 가르쳐주신 여자 코치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이 20년 전부터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셨어요. 지금은 50대 이신데, 여전히 타고 다니세요. 그걸 보면서 제게도 할리데이비슨은 로망이 됐죠. 할리를 타면서 제게도 새로운 삶이 열린 것 같아요. 차보다 자유롭고, 바람 냄새와 흙냄새를 느낄 수 있고, 더울 땐 땀 뻘뻘 흘리고 추울 땐 손가락이 곱는데, 온몸으로 날씨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달리는 게 너무 좋아요.

Q : 이렇게 할리데이비슨을 여자가 몰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어때요?

A : 멋있다! 길 가다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는 분들도 계시고, “멋있어요!”라고 소리 지르시는 분들도 진짜 많아요.

Q : 뜨개질도 좋아한다면서요?

A : 네. 손가방, 티코스터, 컵 슬리브 같은 거 많이 떠요. 주변에서 뜨개질로 팔운동 하냐고 할 정도예요.(웃음)

브라톱 Calvin klein. 데님 팬츠 032c.

Q : 프리다이빙, 라이딩, 뜨개질까지 취미 부자네요. 정유인 선수는 어떤 걸 재미있다고 느껴요?

A : 무엇이든 도전하는 게 재밌어요. 할리데이비슨을 샀을 때도 “무리 아니야? 여자가 할리데이비슨 타는 거 쉽지 않아”라고들 했지만, 저는 “왜 나는 못 해? 나 할 수 있어” 하면서 그냥 했어요.

Q :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A : 몸보다 마음이 강한 것. 나에게 확신이 있다면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

Q : 이렇게 강한 당신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다면?

A : 흠, 지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두려운 게 없네요. 10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하면 겁은 좀 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워낙 긍정적인 사람이라 상황이 안 좋아도 ‘잠깐 쉬어 가라는 거구나?’라고 생각해서요. 대신 미래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보디슈트, 선글라스 모두 Zara. 쇼츠 24ans. 재킷,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Fun, Fearless, 그리고 Female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근육질에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정유인 선수는 한국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인데요.

A : 제 할리데이비슨에 해골 파츠 붙어 있는 거 보셨어요? 해골 문양은 ‘평등’을 의미한대요. 여자든 남자든 죽어서 뼈가 되면 같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면서 평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어요. 왜 남자가 배구를 하면 ‘배구’인데 왜 여자가 배구를 하면 그냥 배구가 아니라 ‘여자 배구’일까? 왜 내가 할리를 타면 ‘라이더’가 아니라 ‘여성 라이더’라고 할까? 그에 비하면 수영은 좀 더 열려 있죠. ‘여자 수영’이라고 칭하진 않으니까요. 훈련도 남녀 나누지 않고 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기회에서 배제된 적도 있어요. 전지훈련을 가야 하는데 저보다 기록이 좋지 않은 남자 선수들은 가는데 저 혼자 여자여서 훈련을 가지 못했다거나 하는 식이었죠.

Q : 스포츠에서는 더더욱, 여성은 사이드킥인 게 대체로 당연한 분위기죠.

A : 맞아요. 그러면서도 여자 수영복이 남자 수영복보다 비싸죠! 물론 천값이 더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해서 어깨까지 올라오는 수영복을 입는 건 아닌데, 항상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죠. 또 하나는, 한국은 생활 체육 시설에서 비키니 금지잖아요. 남자는 팬츠 하나 입으면 되는데, 여자는 선수용으로 나오는 화려하지 않은 비키니도 생활 체육 시설의 수영장에선 입을 수 없어요. 해외에 나가면 저는 늘 비키니를 입고 훈련합니다. 등에 여자 수영복 특유의 동그라미 자국 나는 게 싫어서요. 아, 그리고 얼마 전 제가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수영장을 가봤는데 샤워실과 라커룸이 남녀 공용인 것도 신기하더라고요. 다들 수영복을 입은 채 샤워하고, 대신 탈의할 수 있는 공간은 칸막이로 막혀 있는 구조예요.

Q : 핑크 택스부터 여러 생각할 만한 주제를 던지는 이야기네요.

A : 제가 어느 정도 유명해지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언니 보고 운동 시작했어요”라는 말이었어요. ‘아, 그래도 내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구나. 내가 이단아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시대를 스스로 이끌 수 있는 존재 중 하나가 된 거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제 팔뚝이 화제가 된 게 2018년 정도인데, 그 후로부터 여자들도 당당하게 운동한 몸을 보여주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아요. 얼마나 좋아요. 운동해서 이렇게 몸을 탄탄하게 만들었는데, 숨기고 있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훨씬 멋있잖아요.

Q : 정유인 선수는 ‘노브라’ 주의인가요?

A : 네.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뛸 때 ‘더워 죽겠다, 남자들은 상의 탈의하고 뛰는데 왜 나는 옷 입고 뛰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게다가 제가 광배가 넓어 브라를 입으면 눌려서 자국이 깊게 남아요. 평소엔 노브라로 다니고, 너무 달라붙는 옷을 입으면 그냥 패치를 붙여요. 수영장 탈의실에서 제가 옷을 훌렁 벗으면 친구들이 “야, 너 진짜 편하게 하고 다닌다?”라고 하곤 하죠.(웃음)

Q : 앞으로는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나요?

A : 전문 생활체육지도사, 잠수기능사 등등 자격증을 더 따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 ‘스윔 보홀’이라고 필리핀 보홀에서 프리다이빙과 수영을 배우는 투어를 주최했어요. 제가 브랜드에 직접 연락해 “저 이런 걸 할 건데 지원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제안해서 물품지원을 받기도 했죠. 당장 다음 주에 또 프리다이빙하러 보홀에 가고, 그 다음엔 다낭에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끼리 투어를 하러 갑니다. 역마살 낀 것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네요.

Q :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A : 단순해요. 어떤 일이든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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