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선의 격동 15년, 이런 원클럽맨이 또 있을까

이준목 2024. 5. 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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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에서 소노까지... KBL 역사의 한 페이지 관통하는 산 증인

[이준목 기자]

원클럽맨(One Club man)은 프로스포츠에서 데뷔부터 은퇴까지 선수 경력을 오직 한 구단에서 보낸 선수를 일컫는 표현이다. 선수가 돈과 명성 등 각종 조건에 따라 스스로 팀을 옮기기도 하고, 때로는 구단의 선택에 따라 방출이나 트레이드 되는 경우도 일상인 프로의 세계에서, 평생 오직 한 구단에게만 헌신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은 선수에게도 엄청난 명예로 남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작 중은 한번도 절을 떠난 적이 없음에도, 정작 절이 4번이나 바뀌는 아이러니를 겪어야했던 특이한 원클럽맨이 있다. 김강선(38, 고양 소노)이 그 주인공이다. 김강선은 2009년 대구 오리온스에서 데뷔하여 2년만에 연고지를 고양으로 이전했고, 이후 모기업은 고양 데이원 점퍼스를 거쳐 2024년의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바뀌었다.

오리온의 '마지막 유산'으로 시작하여 신생팀 소노의 '초대 주장'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기까지, 김강선의 15년 프로 농구인생은 그 자체로 파란만장한 KBL 역사의 한 페이지를 관통하는 산 증인이었다.

김강선은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구단인 고양 소노는 "김강선이 15년 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디딘다"며 "2024-2025시즌 홈 개막전에서 은퇴식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강선은 대경정보산업고와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9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8순위로 대구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오리온스 입단 동기인 허일영(2순위, 현 창원 LG)을 비롯하여 박성진(1순위, 당시 인천 전자랜드), 대학 동기 김종근(3순위, 당시 울산 현대모비스) 등에 비하면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김강선은 프로 첫 시즌인 2009~2010시즌부터 당당히 전경기(54경기)를 소화하면서 7.5득점, 2.1리바운드. 1.7어시스트, 3점슛성공률 40.2%를 기록했다. 허일영(10.1점 3점슛 41%)과 함께 신인 슈터 '쌍포'를 구축하여 팀의 핵심선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하필 당시 오리온은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시절이었고, 팀은 2년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1년 오리온은 프로 원년(1997년) 이후 지켜왔던 연고지를 대구에서 고양으로 전격 이전한다. 기존 연고지역 팬들이나 지자체와의 협의가 없었던 '야반도주'식 이전 강행으로 오리온은 농구팬들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김강선은 3년차인 2011-12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했고 2014년 2월에 전역하여 코트로 복귀했다.

전역 이후에는 비록 더 이상 주전은 아니었지만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궂은일을 전담했다. 팀사정에 따라 상대 스몰라인업에 대응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에서, 종종 1번(포인트가드)의 역할까지 대처하며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팀공헌도가 높은 선수였다. 추일승 감독 체제에서 암흑기를 거쳐 팀 재건에 성공하면서 2015-16시즌에는 마침내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감격도 맛봤다.

김강선은 2015-16시즌이 끝난후 FA자격을 얻었으니 팀에 잔류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팀의 터줏대감으로 활약하며 2021-22시즌에는 주장으로까지 선임됐다. 입단 동기인 허일영과 최진수(현대모비스), 이승현(KCC) 등 오리온스를 대표하던 간판스타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게 되면서 어느새 김강선은 대구 시절부터 오리온스에 남은 유일한 원클럽맨이 됐다.

2022년 5월, 오리온 그룹이 대우해양조선을 모기업으로 하는 데이원자산운용과 구단 인수 계약을 맺으며, 오리온스 프로농구단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고양 캐롯 점퍼스로 재창단했다. 김강선은 캐롯에서도 초대 주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데이원 시절은 김강선과 한국농구계에 모두 악몽으로 남았다. 데이원은 한국프로농구(KBL) 특별회비를 늦장 납부하더니, 월급 체불 등 재정적 이슈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결국 KBL은 재정적 이슈를 해결하지 못한 데이원을 리그에서 제명했다. 구단이 파행운영으로 리그에서 제명을 당한 것은 KBL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김강선은 구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단의 리더로 코트 안팎에서 후배들을 다독였다.  고양 캐롯은 선수단이 월급도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4강 플레이오프(PO)까지 질주하는 대반전을 일으키며 '헝그리 신화'를 작성했다. 또한 김강선은 선수단 대표로서 2023년 국회 기자회견장에 등장해 데이원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언론과 소통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다행히 2023-24시즌 대명소노그룹 산하 소노인터내셔널이 농구단과 연고지를 그대로 인수하여 고양 소노가 새롭게 창단하면서 김강선과 선수들은 모두 구제를 받게 됐다. 김강선은 소노에서도 그대로 주장직을 이어가며 오리온스 시절부터 세 번째이자 두 번 연속으로 신생팀 초대 주장을 맡게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쉽게도 소노는 창단 첫 시즌인 2023-24시즌 20승 34패로 8위에 그쳤고 6강플레이오프에 탈락하면서 작년 데이원 시절의 감동 신화를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좋지 않은 팀 성적에다가 외국인 선수 오누아쿠의 '아반도 부상 사건'과 김승기 감독의 'DB전 욕설 파문' 등 부정적인 이슈들이 부각되며 여전히 바람잘날없는 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김강선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15년의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김강선은 적지않은 나이에도 2023-24시즌 46경기에 출전해 평균 19분 20초를 소화하며 4.4득점, 1.8리바운드, 0.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기 몫을 다했다. 프로 통산 기록은 576경기에 나서 평균 15분 53초를 뛰며 4.3득점, 1.3리바운드, 0.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사실 한 팀의 원클럽맨이라는 타이틀이 김강선의 농구인생에 행복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오리온과 데이원은 재창단을 거치며 사실상 역사가 단절되었고 연고이전과 퇴출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며 사실상 KBL의 흑역사로 전락했다.

김강선은 슈팅가드나 전문슈터로서 딱히 엄청난 기량이나 성적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주는 최고의 팀플레이어였다. 여러 감독들이 팀을 거쳐가면서도 김강선을 선수이자 리더로서 변함없이 신뢰한 이유다. 김강선과 입단 동기중 그보다도 더 선수생활을 오래한 선수는 이제 허일영 뿐이다.

김강선은 연고이전은 물론, 모기업이 여러 차례 바뀌는 우여곡절 속에서 변함없이 팀에 헌신했고 결국 최후의 원클럽맨으로서 남아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게 됐다. 격동의 15년 현역 생활을 마치고 김강선은 이제 소노에서 지도자로 변신하여 농구인생의 새로운 2막을 앞두고 있다. 선수시절의 다사다난했던 경험들은 앞으로 김강선이 좋은 후배들을 길러내는데 있어서 귀중한 자양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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