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한 영어로 흥분한 코너 토닥토닥, '공부 또 공부' 진화하는 이병헌 [IS 인터뷰]
윤승재 2024. 5. 24. 11:05
볼넷에 이어 초구 볼. 외국인 투수가 마운드를 거칠게 밟으며 흥분하자, 포수가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를 향했다. 통역도 함께 마운드로 뛰어 나갔다. 흥분한 투수를 다독이기 위한 포수의 마운드 방문. 하지만 통역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3~4초 가량 포수만 짧게 이야기했고, 투수의 등을 톡톡 두들기며 다독인 포수는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투수는 바로 안정을 찾았다. 흥분을 가라앉힌 코너 시볼드는 이후 강타자 강백호와 장성우를 땅볼과 삼진으로 돌려 세웠고, 천성호에게 다시 볼넷을 내줬지만 박병호를 삼진 처리하면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위기를 넘긴 삼성은 3-1로 승리하며 연패에서 탈출, 코너는 시즌 4승(3패)을 챙겼다. 대구 홈에서 첫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의 감격도 맛봤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걸까. 경기 후 만난 포수 이병헌은 "밖에서 봤을 땐 내가 잘 다독인 것 같지만, 사실 별 말 안했다. 잘 던지고 있다고 이대로만 하자고 했을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수에겐 큰 힘이 됐다. 코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볼넷을 내줘 조금 흔들렸다. 이병헌이 올라와서 괜찮다고 잘 던지고 있다고 다독여줘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고마워했다. 더 나아가 코너는 "이병헌은 정말 좋은 포수다. 나와도 잘 통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게 즐겁다"라며 그를 칭찬했다.
이병헌에게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하다. 외국인 투수들과 호흡을 많이 맞춰봐서다. 이병헌은 지난해부터 유독 외국인 투수들과 호흡을 많이 맞췄다. 올해 코너(21⅓이닝), 대니 레예스(12⅔이닝)와 호흡을 맞추고 있고, 지난해엔 알버트 수아레즈의 부진 탈출을 이끌기도 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이병헌이 외국인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선수들이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잘 리드하면서도 상대 타자 분석을 잘 하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며 그를 칭찬했다.
흔들리면 흥분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다독이는 것도 곧잘 해낸다. 과거 데이비드 뷰캐넌의 통역을 맡았고 지금은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이철희 통역 매니저는 이병헌이 별다른 말 없이도 외국인 선수들을 토닥이는 방법을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의 말부터 "코치님이 그냥 올라가 보래서 올라온 거야", "이따 끝나고 뭐 먹을래?"라는 평범한 말들로 흥분한 선수들의 마음을 잘 가라앉힌다고. 이런 말들은 사실 원어로 이야기 해야 감정이 잘 전달된다. 이병헌은 이 점을 잘 캐치해 응용하고 있다.
이병헌은 평소에도 외국인 선수들과 잘 어울린다. 외국인 선수들과 김성윤이 있는 단톡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2군 시절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한 효과를 보고 있다. 이철희 매니저도 "(이)병헌이가 영어를 잘한다. 저(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은 다 할 수 있을 정도다. 마운드에서도 야구적인 이야기는 내가 통역을 하지만, 그외의 이야기는 병헌이가 영어로 다 표현한다"라고 말했다.
이병헌은 그저 "상황과 운이 잘 따라줘서 이렇게 기회를 받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엔 그 나름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공부하는 포수'로 잘 알려진 그는 매일 자기의 타격 영상을 돌려보고 상대 타자를 분석하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의 올 시즌 도루 저지 능력은 무려 37.5%(16번 시도 6번 저지)로, 100이닝 이상 소화한 KBO리그 포수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 또한 이정식 배터리 코치와 피나는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이런 노력들을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거잖아요"라면서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 그저 제 할 일을 충실히 할 뿐입니다. 더 발전해야 하는 선수고, 투수들이 믿고 편하게 던질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라면서 각오를 다졌다.
대구=윤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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