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등 마을 이유 있었네…‘감태’ 하나로도 귀어인 함께 살기 충분

장정욱 2024. 5.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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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 중리·중왕어촌체험마을 현장
‘감태·바지락’ 해양 자원으로 상품화
귀어인 정착 위한 경제 뒷받침 ‘든든’
체험마을 넘어 공동체 재건 모범 사례
충남 서산시 중리어촌체험마을 갯벌 모습. ⓒ공동취재단

정부세종청사에서 승합차로 1시간 30분가량 달렸다. 오전 11시 50분께 도착한 충남 서산시 중리어촌체험마을은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갯벌 체험을 마치고 노란색 승합차에 오른 ‘병아리’들도 보였다.

주위를 잠시 둘러본 뒤 우리 일행은 허기진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공동 식당 식탁 위에는 낯익은 모습이지만 색다른 음식이 이미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감태로 만든 김밥, 아니 김 대신 감태를 썼으니 ‘감태밥’이 정확할 수도 있겠다. 편의상 감태김밥이라 부르는 새로운 먹거리는 취재진 이목을 집중시키기 중분했다.

감태김밥과 감태주먹밥은 배고픈 취재진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과는 완전히 다른 식감과 색감, 그리고 부드러움이 혀끝은 물론 뱃속까지 편안하게 어루만지는 듯했다. 김밥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기자도 감태김밥에는 연신 손이 갔다. 감태주먹밥도 마찬가지다.

감태김밥과 주먹밥을 ‘리필’하자 이번엔 녹색 면을 담은 국수가 나왔다. 감태국수다. 일반 국수보다 탱탱한 식감은 조금 덜한 느낌이었다. 대신 그만큼 소화는 잘 됐다. 무엇보다 맛이 기가막혔다.

감태김밥과 감태주먹밥 모습. ⓒ공동취재단

감태김밥과 주먹밥, 국수까지 게 눈 감추듯 해치운 일행은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로 발걸음을 했다. 해무가 연신 피어오르는 바닷가에는 갯벌이 모습을 점점 감추고 있었다. 밀물 때였던 거다.

바닷가에 온 김에 바지락 채취도 해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오늘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감태를 집중 파헤치기로 했다.

감태 연구에는 박현규 중리어촌체험휴양마을(중왕·중리마을) 어촌계장이 도움을 줬다. 박 계장은 연매출 13억8000만원의 ‘해품감태영어조합법인(해품감태법인)’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감태는 우리나라 전국 해안가에서 생산되는 데 주로 11월부터 2월까지 채취한다. 요즘은 5월까지도 뜯곤 하는 데 최근들어 소비자 관심이 엄청 늘고 있다.”

박 계장에 따르면 감태는 갯벌에서 수확한다. 갯벌 위에 잔디처럼 깔리는 감태를 일일이 손으로 건져 올린다. 주민들은 갯발에 달라붙은 감태를 뜯는다고 표현했다.

뜯어낸 감태는 육지 공장으로 옮겨 세척 작업을 한다. 원통에 옮겨 담은 감태는 바닷물을 공급해 갯벌이나 이물질을 씻어낸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원심력을 이용해 갯벌 진흙을 털어낸 감태는 김을 만드는 것과 같은 사각 틀에 넣어 한장 한장 펼쳐 모양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이물질을 또 한 번 걸러낸다.

해품감태영어조합법인에서 감태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해품감태영어조합법인에서 감태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귀어인 생활 지원·어르신 마을 연금

역할 분담 통해 공동체 성공 운영

박 계장 설명에 따르면 감태를 하루 종일, 죽어라 만들면 250속(25000장) 정도 만든다. 그러면 대략 67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론상’ 그렇다. 특별한 기술 없이 하루에 67만원을 번다는 건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다만 감태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라 같은 노동력을 투입한다고 가정하면 분명 짭짤한 이익이 보장된다고 한다.

중리·중왕마을에 있어 감태는 지역민 소득원이지만 귀어인을 위한 소득 안정화 장치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이 감태를 뜯어오면 귀어인들이 한 장 한 장 손질하고, 이를 다시 해품감태법인에 납품하는 형태다.

박 계장이 특별한 기술이 없는 귀어인들에게 어촌에서 기본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했다. 단 청년수산학교와 같은 귀어 프로그램(교육)을 거쳐야 한다. 해당 교육은 외지인이 마을의 경제 공동체를 이해하게 만들고, 감태 손질이나 바지락 캐기 같은 최소한의 경제 활동 능력을 키워준다. 귀어인이 마을에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마을과 기존 주민들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귀어인인 학교 수강생들이 직접 감태를 손질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어선들 뒤로 갯벌 위에 널린 감태가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단

마을에서는 초보 귀어인을 위해 도우미도 붙여준다. ‘간사’란 명칭의 마을 선배들은 귀어인만을 위한 어장에서 직접 어로 기술을 가르쳐 준다. 어촌 생활에 서툰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2012년 이후 현재 18가구가 귀어했는데, 지금까지 이탈자가 한 명도 없다.

귀어인 관리에서 알 수 있듯 중왕·중리마을은 공동체 활동이 많다. 해품감태법인도 102개 가구 중 71개가 출자해서 만들었다. 박 계장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중앙어촌계 ▲연금사업단 ▲특산물가공팀 ▲시설관리팀 ▲음식전담팀 ▲체험마을팀 ▲수산학교팀 ▲상조회 ▲갈등관리위원회까지 9개 조직으로 나눠 각자 역할을 한다.

중리어촌체험마을과 해품감태영농조합법인이 받은 각종 상장과 표창. ⓒ공동취재단
중리어촌체험마을 어촌계장이자 해품감태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인 박현규 씨가 취재진에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특히 갈등관리위원회는 귀어인과 기존 주민 간 갈등은 물론 마을 내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정하고, 해법을 찾는 역할을 한다. 귀어 6년 차 노인회장이 갈등관리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중리·중왕마을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마을 연금제도다. 지금 중리·중왕마을은 해품감태법인 조합원들은 노동 수익의 1%를 노인들을 위한 연금으로 내고 있다. 체험마을 사업에서 얻는 수익도 20%를 연금으로 귀속한다. 해품감태 판매액은 50%를 연금으로 귀속한다. 현재 78세 이상 22명의 노인이 연금을 받고 있다.

중리·중왕마을은 해품감태법인을 중심으로 어촌 소득 문제와 고령화, 외지인 마을 적응 등을 모두 해결하고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2014년 해품감태법인 설립 이후 10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연매출 13억8000만원 뿐만 아니라 귀어인들을 품에 안기 위한 노력들로 ‘어촌소멸’ 문제도 이겨내는 중이다.

관광객들이 중리어촌체험마을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다. ⓒ한국어촌어항공단
감태초콜릿 만들기 체험 모습.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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