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투쟁'하기로 한 부부

이훈 2024. 5. 2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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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이지영 사무장과 그의 남편을 만나다

[이훈 기자]

경상북도 구미시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아래 '옵티칼') 공장이 있다. 옵티칼은 일본 NITTO 기업의 한국 자회사로 18년간 7조 7천억 매출액을 냈다. 그러나 2022년 11월 4일, 급작스레 청산을 선언했다. 노동자 전원에겐 희망퇴직서를 쓰도록 했다. 210여명의 노동자 중 11명의 노동자가 이를 거부하고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공장에 남아있다. 당시 부부사원으로 일하고 있던 이지영씨와 권민우(가명)씨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이자, 두 사람 중 한 명은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한 사람은 노동조합 투쟁을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지영씨는 노동조합의 사무장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옵티칼 노동조합의 투쟁은 점차 커졌다. 그에 따른 회사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졌다. 노조 사무실엔 전기와 물이 끊겼고 조합원 대상으로 가압류, 가처분, 통장압류 등이 진행되었으며 일부 조합원의 집은 부동산 강제경매가 개시되기도 했다. 이지영 사무장의 선택을 같이 결정한 남편은 아내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투쟁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이지영 사무장과 그의 남편 권민우(가명)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PART 1. 투쟁을 바라보는 남편 "차라리 내가 할걸"
 
 법무법인 태평양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지영 사무장이 발언중이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저는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이지영 사무장의 남편 권민우(가명)입니다. 아내는 옵티칼에서 일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3년 반 정도 연애하다가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부부 사원으로 함께 공장을 다녔습니다. 공장이 청산 문자 보낸 걸 받고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보며 대화했던 게 생각납니다. 부부가 동시에 직장을 잃는 건 큰일이잖아요. 그때 노동조합 찾아가서 설명회도 들었습니다.

둘이 같이 결정했습니다. 한 명은 희망 퇴직한 후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한 명은 노동조합 투쟁을 하기로. 둘 중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남자가 유리했습니다. 그리고 공장 교대근무가 꽤 힘듭니다. 아내가 교대근무보단 쉬운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노조 투쟁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요즘엔 '차라리 내가 투쟁을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아내가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도 자주 하고 더운 날, 추운 날 밖에서 선전전하는 걸 보면 안쓰럽습니다.

다치지만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는 집에 오면, 노조 투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아주 세세하게 말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많을 때나 큰일이 있을 땐 이야기하고 저는 잘 들어주려 합니다. 회사의 첫 법적 압박은 가압류였는데, 집 보증금이 가압류 됐다고 들었을 때 솔직히 좀 걱정했습니다. '빚이 생기진 않을까', '살아가는 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아내에게 "이거 혹시 문제 되는 거 없을까?"라고 물으니, 아내는 "크게 문제 되는 거 없을 거 같아"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믿었습니다.

저번엔 아내가 다쳤더라고요. 사측 대응하다가 다쳐서 발에 반깁스한 적도 있고 갈비뼈에 금이 가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습니다. 아내가 다칠 때마다 속상합니다. 다칠 거면 그만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니까 아내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다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요.

우린 함께 평택으로 갈 겁니다

아내는 '꼭 끝까지 싸워서 이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저도 아내와 같은 마음입니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의견이 맞아서 금세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처럼 금방 해결되지 않는 게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만약 회사가 앞에 있다면, "이제 받아들이고 그만 좀 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내의 투쟁이 승리하면, 저희는 함께 평택으로 갈 겁니다. 같이 가야죠. 가족이니까. 떨어질 수 없으니까.

PART 2.-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 "남편과의 시간이 소중해요"
 
▲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선전전에 연대하고 있는 이지영 사무장 이지영 사무장이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선전전에 연대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공장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더라고요. 일하다 보면 누군가 하긴 해야 하는데 누가 할지 애매한 일들이 있잖아요. 보통은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면서 딴청을 피우는데, 남편은 자기가 먼저 나서서 하더라고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투쟁을 시작하고 생각보다 개인 시간이 없어요. 농성도 자주 하고 주말에도 자주 노조 사무실에 나오니까요. 저녁에 잠깐 짬이 나거나 주말 하루쯤 남편이랑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짧은 시간이 엄청 소중해요. 잘 활용하려고 애쓰고요.

투쟁에 대해 남편한테 얘기 많이 해요. 작은 것까지 다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정말 화나는 일이 있을 땐 '겁나 빡친다'고 하면서 얘기해요.(웃음) 그때마다 남편은 제 편을 들어줘요. 같이 회사 욕도 하고요.

다치지만 말라는 배려

남편이 옆에서 힘내라고 막 응원해주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남편은 제 선택을 존중해줘요. 꼭 투쟁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제가 하는 선택을 따라주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남편은 혼자 밥 먹거나 자는 걸 안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농성하는 걸 안 좋아하지만 그거로 이래라 저래라 하진 않아요. 남편의 배려가 느껴져요.

제가 다쳤을 때 '많이 아프냐', '지금 데리러 갈까?'하고 묻더라고요. 당시엔 남편도 당황해서 잘 말을 못하던데, 나중에 저한테 "제발 다치지 마. 뭘 하든 좋은데 제발 다치지만 마"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진심이 느껴졌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고용승계 이후를 고민해요

지난 5월 19일 밤 10시쯤, 한국니토옵티칼에 농성장을 쳤어요. 저희가 고용승계되어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니까요. 천막을 치고 컨테이너를 내리는 건 생각보다 쉬웠어요. 그런데 경찰들이 금방 몰려오고 평택서장까지 나왔더라고요. 새벽 2시까지 경찰과 대치하면서 컨테이너 갖고 싸웠어요. 경찰은 컨테이너를 강제로 가져가는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경고 방송도 했어요. 하지만 경찰한테 강제집행 권한이 없다는 건 저희도 알고 있었어요. 그건 시청한테 있는 권한이죠. 경찰이 자기들한테 권한이 없는 걸 몰라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걸 지켜보면서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평택서장이 니토옵티칼 사장이랑 친구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느껴졌어요.

지금은 며칠 지나니까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어요. 하루에 세 번 선전전 해요. 출퇴근 시간엔 저희가 출퇴근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어요. 그러면 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주세요. 너무 반갑더라고요. 힘 나고 신나요. 지금은 우린 같은 사원복을 입고 있음에도 누구는 길에 있고 누구는 출근하죠. 하지만 곧 다 같이 웃으며 출근할 거라고 믿어요. 제 지금 고민은 '고용승계 후에 노동조합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까?'에요. 고용승계가 안 될 거란 생각을 안 해요. 그런 면에서 남편이 저와 함께 평택으로 와주겠다고 해서 고마워요. 저를 믿어주고 따라줘서 고마워요. 그냥... 고마워요.

덧붙이는 글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고공농성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공에 오른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의 동생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한겨울 새벽, 공장 옥상에 올라간 언니...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29260 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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