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가 몰락했냐고요? 그래서 살펴봤습니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4. 5. 2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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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제도와 시장이 바꾼 수제 맥주 개념... 크래프트 맥주와 구분 필요

[윤한샘 기자]

 2023년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박람회 및 와인&로컬 드링크 페어'의 한 부스에서 수제맥주를 시음용 잔에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수제 맥주가 어렵다고 난리다. 불과 2~3년 전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어리둥절하다. 언론에서는 과다한 마케팅 비용을 원인으로 짚고 있다. 지엽적인 분석이다. 매출 대비 마케팅 비용 분석은 어불성설이다. 대기업과 수제 맥주 회사 매출 간극은 하늘과 땅 차이다.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 틈새시장에서 대중시장으로 들어간 수제 맥주 회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결과다. 

본질이 변했다. 나는 2년 전부터 수제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제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는 다른 것인가? 그렇다. 이제 다르게 봐야 한다. 워낙 시장이 급변하다 보니 혼란하다.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하우스 맥주의 태동

2002년 이전까지 한국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했다. 맥주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주세법이 규정하는 시설을 갖춰야만 가능했다. 설령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1933년 이후 독과점을 유지하던 두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2014년 맥주 시장에 뛰어든 롯데 클라우드가 여전히 고전하는 걸 보면, 이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전환점이었다. 정부는 월드컵 개최를 명분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를 발급했다. 놀랍게도 짧은 기간에 100개가 넘는 소규모 맥주 회사가 생겼다. 대부분 제조 맥주와 음식을 한 군데서 팔아야 하는 브루펍이었다. 매장은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주요 상권에 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장벽은 주세법이었다. 당시 주세법은 종가세였다. 맥주 가격에 장비 감가상각,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까지 모든 비용을 반영하다 보니 한 잔에 7000~8000원이 훌쩍 넘었다. 오비라거 생맥주 한 잔에 1500~2000원 남짓하던 시절이었다. 

또 다른 장벽은 외부유통 금지였다. 소규모 면허로 양조된 맥주는 허가를 받은 장소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다. 하우스 맥주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받긴 했지만 지금 물가로 한 잔에 2만 원 정도 되는 맥주를 마시러 오는 고객이 금방 늘기는 어려웠다. 

당시 대부분 소규모 맥주 장비들이 독일에서 수입되었기 때문에 독일 맥주 스타일이 정착했다. 일명 '필바둥'이라 불리던 필스너, 바이스비어, 둥켈은 생소했다. 맥주 하면 시원한 호프 한 잔을 떠올리던 당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 결과, 1년 만에 소규모 맥주 면허가 50여 개로 하락했다. 주세법과 소비 환경은 하우스 맥주 회사에 가혹했다. 이때부터 소규모 맥주 회사들은 줄기차게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내는 종량세와 외부 유통 허용을 담은 주세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우스 맥주에서 수제 맥주로
 
 미국 크래프트 맥주들
ⓒ 아마존
  
2014년 주세법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소규모 제조 맥주의 외부 유통이 허용된 것이다. 2016년에는 병입 판매가 가능해졌고 2018년에는 소매점 판매도 허가됐다. 2010년 초반부터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오며 시장 지형을 흔든 결과였다.  

환경도 달라졌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수입 맥주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꿨다. 특히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라고 부르는 새로운 스타일이 화제가 됐다. 외부 유통으로 젊은 소규모 맥주 회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독일 스타일에 한정됐던 하우스 맥주와 달리 인디아 페일 에일, 스타우트, 세종처럼 미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에 초점을 맞췄다. 

본진은 서울 이태원이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탭룸이 생겼다. 그리고 조금씩 다른 지역에 있는 펍과 맥주 전문점으로 퍼져갔다. 생맥주가 인기를 얻으면서 더부스, 세븐브로이, 플래티넘, 제주맥주 같은 몇몇 브랜드가 병 제품을 판매했고, 바틀샵을 넘어 마트 채널까지 진출했다. 언론에서는 이런 맥주를 수제 맥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가 하우스 맥주와 수제 맥주가 나뉜 시점이다. 누가 정의한 것도, 주장한 것도 아니지만, 대중과 언론에 의해 개념이 나뉘었다. 수제 맥주는 크래프트 비어를 단순 번역한 단어였지만 직관적이었다. 손으로 만든 맥주 아니냐는 혼란도 잠시, 점차 대기업 맥주와 다른, 프리미엄을 의미하며 시장에 녹아들어 갔다. 

소비자의 관심은 채널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마트와 편의점의 요구도 높아졌다. 수제 맥주 중 마트에 납품 가능한 몇몇 브랜드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세븐브로이와 카브루가 대표적이다. 제주맥주와 문베어도 동참했다. 진열대 가격은 대기업 맥주들보다 높았지만 차별된 브랜딩과 맛은 고객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마트와 편의점에 수제 맥주는 새로운 카테고리였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더 낮은 가격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전히 종가세가 벽을 치고 있었다. 

수제 맥주 전성기 이끈 주세법 개정

2020년 둑이 무너졌다. 맥주 세금 체계가 70년 만에 종량세로 바뀌었다. 저가 수입 맥주가 원인이었다. 종가세 체계에서 수입 맥주에는 수입가에 세금이 붙었다. 수입가를 낮추면 판매가를 내릴 수 있었다. 간헐적으로 시행되던 수입 맥주 4캔 만원이 2018년 즈음 정착되며 매출이 폭증했다. 대기업 맥주들도 종가세 하에서는 4캔 만원이 힘들었다. 국내 맥주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종량세는 수제 맥주에 양날의 검이었다. 이론적으로 4캔 만원이 가능했지만 현실적으로 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답은 판매량을 높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코로나 팬데믹이 동력이 됐다. 집합 금지가 실시되며 펍과 맥주 전문점 같은 유흥시장이 사라졌다. 맥주 판매는 편의점과 마트로 집중됐고 제조사와 채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몇몇 수제 맥주 회사에 돈이 몰렸다.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 곰표 밀맥주의 성공과 유니콘 기업 자격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제주맥주가 기폭제가 됐다. 

곰표 밀맥주는 신선했다. 고객들은 맥주의 새로운 변신에 열광했다. 레트로 콘셉트 맥주 열풍이 불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다. 이후 말표, 쥬시후레쉬 등 콜라보레이션 협업 맥주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심지어 오비맥주도 핸드 앤 몰트를 인수하고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KCB)라는 조직을 만든 후, 이 대열에 동참했다. 편의점 냉장고는 밀가루, 속옷, 조미료, 껌 이름으로 도배됐다. 

끝없이 성장할 것 같던 수제 맥주에 이상이 감지됐다. 2022년부터 판매량이 주춤했다. 소비자들은 범람하는 콜라보레이션 맥주에 싫증을 느꼈다. 4캔 만원으로 프리미엄 지위도 상실했다. 재미를 찾던 편의점 소비자들은 하이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움직였다. 

반면 수제 맥주 회사들은 대중 맥주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을 증설했다. 시간이 필요했으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높은 마케팅 비용은 매출이익을 반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그것도 대기업에 비해 10분의 1 정도였다. 대중 채널에 진출한 수제 맥주들이 지금 힘겨운 이유다. 

원래 이름을 되찾은 크래프트 맥주
 
 크래프트 맥주들
ⓒ 윤한샘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수제 맥주가 그렇다. 언론과 대중은 편의점 콜라보레이션 맥주를 수제 맥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편의점에 진출한 수제 맥주가 '수제'라는 단어를 흡수했다. 

한때 힙했던 레트로는 재미로 치환되며 대중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수제 맥주는 재미있었지만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수제맥주는 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가진, 그러나 재미있는 대중 맥주가 됐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다. 그냥 대중이 그렇게 인식하고 소비할 뿐이다. 

수제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는 이제 구분되어야 한다. 편의점에 진출하지 않은 수제 맥주들, 여전히 소규모 맥주 면허를 통해 자신들의 철학과 색을 입히고 있는 맥주들은 이제 다르게 인식되어야 한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크래프트 맥주로 부르는 게 합리적 아닐까? 

크래프트 맥주를 수제 맥주로 통칭하기에는 이제 규모와 성격 그리고 방향이 많이 다르다. 자본주의에서 구분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차별화는 생존의 기본 수단이다. 대중에게 다르게 인식되어야 새로운 소비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크래프트 맥주가 선이고 다른 맥주가 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맥주는 예술이 아니다. 비즈니스다. 대기업 맥주는 대중 맥주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누구는 국산 대기업 맥주를 대동강 맥주와 비교하며 비하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카스와 테라가 대동강 맥주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편의점에 진출한 수제 맥주도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했다. 하지만 대중 맥주 영역에 들어선 순간, 맥주 문화 리더십을 잃었다. 단기간 성장으로 생긴 염증이 치유되면 시장은 정리될 것이다. 수제 맥주를 즐기는 소비자가 있는 한, 경쟁에서 이긴 1~2개 회사가 이 영역을 차지하리라 예상한다. 

크래프트 맥주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이곳은 누군가의 리더십에 좌우되지 않는다. 작지만 개성 강한 크래프트 맥주에게 통합, 스타, 통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크래프트 맥주는 다양성, 지역성, 진정성, 지속가능성이라는 철학 위에 느슨하게 연대할 것이다. 2~3년 내에 맥주 문화의 리더십은 크래프트 맥주가 가져갈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가 예술은 아니지만 예술의 감성을 공유하고 프리미엄의 품질을 지향해야 한다. 점이 모여서 선과 면이 되 듯, 소규모 맥주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될 것이다. 수많은 케이팝 그룹이 정의할 수 없는 케이팝 문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크래프트 맥주가 케이팝 그룹처럼 큰돈을 벌 수는 없겠지만. 

다양하고 다원화된 맥주가 공존하기를

획일화는 위험하다. 다양성은 자연과 시장의 법칙이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들이 필요한 법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맥주 시장이 잃고 있는 다채로움을 채워주고 있다. 지역을 품고 사람을 말하고, 때로는 인권과 도전을 외칠 수도 있다. 맥주가 술에 불과하지만 문화로 빛날 수 있는 이유다. 

대기업 맥주는 합리적 가격과 품질을 담은 대중 맥주로 역할을 하면 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제 맥주는 한정된 범위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맥주를 선보일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맥주 세계에 색을 채우며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다.

경쟁에서 나온 발전은 소비자를 이롭게 하고, 공존에서 나온 문화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모든 변화 발전에는 명암이 있다. 한두 브랜드가 지배하며 죽어있는 시장보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장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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