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구 진짜 문제는 ‘감소’ 아닌 ‘불균형’

김남중 2024. 5. 2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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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이철희 지음, 위즈덤하우스, 312쪽, 2만원
한국 인구 변화에 대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력 부족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며, ‘노동력의 고령화’와 ‘청년 노동인구 부족’이 진짜 문제라고 진단한다. 5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가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의 약 33%에서 2072년 약 50%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우리 사회 최대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신뢰할만한 한국 인구 이야기가 나왔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는 한국의 인구 변화를 ‘일할 사람(노동력)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살핀다. 이 교수는 20년간 ‘인구와 경제’ 과목을 강의했으며, 현재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인구 관련 논문들을 바탕으로 쓴 이번 책은 그의 첫 대중서로 인구 문제에 대한 기존 논의가 매우 부정확하다는 걸 알려준다.


이 교수는 먼저 한국의 인구 감소에서 더 우선적이고 심각한 도전은 ‘규모’가 아니라 너무 빠른 ‘속도’, 그리고 노령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인구구조’라고 말한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는 2072년까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반면 유소년과 청년 인구는 현재의 약 40%로 줄어들 것이다.”

그는 또 “적어도 앞으로 15년이나 20년 동안 ‘총량’에서 노동인력 부족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동안은 15∼64세 생산연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근거로 노동력 부족을 우려해 왔다. 이 교수는 경제활동인구를 기준으로 향후 50년간의 노동인구 추계를 제시하면서 실제 노동력 감소는 느릴 것이며, 특히 15년 후인 2030년대 후반까지는 그다지 큰 폭의 감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노동력 부족을 메꿀 방법도 존재한다. 여성과 장년인구(55∼6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된다. OECD 38개국 중 33위 수준인 한국의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노동력 투입 저하를 상쇄할 수 있다.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일본 수준으로 높아지는 경우를 가정한 추계에 따르면, 2022년 대비 2047년과 2072년의 노동 투입은 각각 92.6%와 59.8%로 유지될 것임을 보여준다.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생산성이 모두 개선되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2047년과 2072년의 노동 투입이 각각 109.0%, 72.1%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력 부족은 시급하지 않다. 한국 인구 변화의 진짜 문제는 ‘노동력의 고령화’와 ‘청년 노동인구 부족’이다. 당장 4∼5년 후부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인력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5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가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의 약 33%에서 2072년 약 50%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게 왜 그렇게 문제가 될까. 이 교수의 ‘인구변화로 인한 산업별 노동 공급 변화’ 분석을 보면, 2031년까지 운전 및 운송 관련직에서 26만명,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 제조 관련 단순 노무직, 건설 및 채굴 관련 기능직 등에서 각각 10만명 이상의 노동 공급 감소가 예상된다. 젊은 노동자가 줄기 때문이다. 반면 부동산업, 교육 전문가 및 관련직, 법률·행정·경영·금융 전문가 및 관련직, 경영 및 회계 관련 사무직 등에서는 노동 공급이 오히려 10만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 노동자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인구 문제는 바로 이런 노동 수급 불균형이다. 불균형이 가장 두드러지는 산업은 사회복지서비스업으로 2031년까지 약 37만명의 노동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지금은 총량적인 노동력 감소로 발생하는 문제보다 부문 및 유형 간에 발생하는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구 총량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해온 정년 연장이나 외국인력 도입 등은 그래서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청년인력이 급감하는 부문과 정년 연장으로 장년층 고용 확대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그다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노동력 부족이 가장 심각하리라 예상되는 산업은 사회복지서비스업, 음식점 및 주점업, 전문직별 공사업,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운송업, 소매업(자동차 제외) 등인데, 정년을 연장한다고 해서 이 부문에 노동 공급이 그리 많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외국인력 도입도 앞으로 한국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부문과 유형의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며 “외국인력 도입을 인구문제 해소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는 태도는 버리는 편이 좋다”고 지적한다. 특히 필리핀 가사도우미 도입과 같은 정책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볼 때 상당히 위험이 따르는 방안”이라고 평가한다. 해당 부문의 내국인 노동 공급 기반을 아예 무너뜨려서 장래 외국인력 도입이 중단된다면 치명적인 인력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이 보다 정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의료 인력의 경우, 2050년까지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 효과가 인구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 효과를 압도하면서 현재보다 2만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2050년 이후에는 인구감소 효과가 더 커져서 의료서비스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의사 수요 증가에 이어 감소가 일어나기 때문에 증원 규모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 극복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인구 변화의 충격에 적응 또는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외면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당장의 저출산 완화 정책과 장기적인 인구변화 대응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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