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기업승계 위해 기업상속공제 제도 손봐야”

황민혁 2024. 5. 2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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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장포럼] 패널토론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국민성장포럼 2024’ 패널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 윤웅 기자


중견기업들이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기업 승계를 포기하거나 평생 일군 회사를 헐값에 매각하는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확대 적용해 기업 부담을 덜고 장기적으로는 상속·증여세제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기업 지속 성장 위협하는 상속·증여세,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국민성장포럼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에는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세무학회장) 등이 참여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약 2500개인 한국 중견기업 창업주들은 30∼40대에 회사를 창업해 현재 60∼70대”라며 “다음 세대에 회사를 물려줘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고 상속세제 개편 논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 교수는 “무거운 상속세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의 각종 회피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며 “기업을 매각한 후 그 돈으로 상속·증여세가 없는 국가에 투자법인을 설립하거나 아예 국적을 바꿔 투자 이민을 단행하는 등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실제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소속 기업의 20~30대 후계자 모임에서 첫 공식 해외 탐방국으로 싱가포르를 꼽았다”며 “상속·증여세 없는 친기업적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기업 매각 사례도 거론됐다. 이 부회장은 2009년 쓰리세븐, 2013년 농우바이오, 2017년 락앤락, 2022년 라이온켐텍 등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들 기업은 모두 상속세 부담으로 매각을 결정했고, 매각 이후 성과는 이전보다 훨씬 나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가업상속공제 제도 적용 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상속세제 틀 자체를 바꿔야 하지만, 곧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존 공제 제도 개선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다. 가업상속공제란 매출 5000억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상속 재산총액 중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임 책임연구위원은 “제도 명칭을 가업상속공제에서 기업상속공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제도는 당초 소규모 영세 가족기업(가업)에 세제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현재 매출 5000억원 미만 기업까지 공제 대상이 확대돼 있는데, 더 큰 규모의 기업 승계까지 고려해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중소·중견기업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며 “기업 규모에 따른 세제 혜택의 격차가 과도하면 기업이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꺼리고, 현재 수준에 머무르고자 하는 ‘피터팬증후군’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패러다임을 가업에서 기업으로 바꿀 때”라며 “이 관점으로 접근하면 보다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연한 제도 운영의 예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들었다. 최 교수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상속인이 해당 기업의 대표자가 되는 경우에만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패러다임을 바꿔 제도를 운영하면 기업 소유권은 상속인이 갖고, 경영권은 다른 친족이나 전문경영인이 갖는 방식에도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업종 유지 등 엄격한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 교수는 “‘가업 승계’ 개념에서는 상속 이후에도 기존 업종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지만 ‘기업 승계’ 개념에서는 굳이 한 가지 업종을 고집하기보다 경제 및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속세제 전반의 개편 방향에 대해 임 책임연구위원은 자본이득세로의 전환을, 최 교수는 유산취득세 도입을 언급했다. 자본이득세란 자본 매각에서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임 책임연구위원은 상속인이 받은 회사 주식을 시장에 팔아 처분할 때 이익 실현분에 한해 과세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교수 (한국세무학회장)


최 교수가 제안한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들 각자 실제로 취득한 상속 재산에만 과세하는 방식이다. 유산 전체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기존 유산세 방식보다 상속인의 세금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최 교수는 “상속 재산을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 입장에서 세금을 계산해야 소득세·상속세 이중과세 논란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 수렴 없이 제도 개편을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부담 완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한 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본 인식 조사에서 ‘상속세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응답이 65%였다”며 “국민 대부분이 상속세 부담 완화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설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책임연구위원은 “스웨덴은 노사정 대타협 형식으로 논의를 끌어가면서 여론을 조성했다”며 “고용 유지, 투자 확대 등 기업 스스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긴 호흡으로 정치권과 기업, 교육기관 등이 인식 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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