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농축산물 물가 잡는 전방위 대응이 시급하다

2024. 5. 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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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장보기가 겁나는 게 일상이 됐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9%지만 신선과실 상승률은 38.7%나 됐다. 사과는 지난해 동기 대비 80% 뛰었고, 수박도 30% 올랐다.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온 변화폭이 크고, 잦은 비에 일조량이 부족한 데다, 노인 비중이 50%인 농가 고령화, 복잡한 유통구조 등이 얽혀있다. 수입 개방도 간단치 않다. 병충해 유입 가능성과 농가 타격 등 위험 분석과 검역 협상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편 냉동 김밥, 만두, 라면 등 수출 역군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9(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 올랐다. 상품별로는 농축수산물이 1년 전보다 10.6% 상승했다. 사진은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 이상기후로 농축산물 가격 상승
손실·폐기 줄이고 첨단기술 활용
수직농장·대체기술 인프라 구축
중장기적·구조적 대응 강화해야

지난해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영국 BBC 프로그램). 이상기후가 농축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현상인데, 악화일로다. 동남아를 덮친 폭염에 태국의 두리안 수확은 급감했고, 닭과 오리 알이 40%로 급감해 계란값이 폭등했다. 폭염과 가뭄으로 올리브유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의 생산량이 반 토막 나자 국제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세계적으로 농업은 토지의 40%, 담수의 70%를 쓰고,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3분의 1을 내놓는다(2020년 유엔식량농업기구). 토지 이용의 80%는 축산 사료용이다. 이런 식량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을 골고루 나눌 수만 있다면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러나 현실은 기아 인구 8억1000만 명에 비만 인구 20억 명이다(2022년). 매년 식량 생산량 40억t 중 3분의 1은 공급·유통·소비 단계에서 손실된다(연간 1조 달러). 우리의 농식품 폐기량은 14%(500만t)로 연간 손실액 20조원이다(2018년). 유통·조리과정에서 57%, 잔반으로 30%, 보관하다 폐기하는 식품 9% 등이다. 폐기 식품 처리에만 연간 1조원 이상이 든다.

식품 폐기물 감소를 위한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본격 시행된 1월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육류에 소비기한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이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일본은 2001년 식품재활용법, 2019년 식품손실감소법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2016년 식품폐기금지법을 제정해 팔다 남은 식품을 자선단체에 기부토록 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음식 낭비를 부추긴다고 ‘먹방금지법’까지 만들었다. 우리는 식품 폐기 감량을 위해 지난해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했다.

식량위기는 기후위기와 동전의 양면 격이다. 식량안보에는 전통과 첨단을 망라한 전방위 대응이 필요하다. 농약·비료에 의존하는 ‘녹색혁명’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유기농법의 ‘갈색 혁명’도 중요하다. 수직농장(vertical farm), 즉 디지털 기술과 로봇·인공지능을 결합한 실내형 수직 다단식 구조물에서 온도·습도·생산공정을 자동제어하는 공장형 농법은 세계적 혁신기술로 부상했다. 재배방식에 따라 수경·분무·아쿠아포닉스(물고기양식과 수경재배) 등 다양하다. 수직농장 세계시장은 지난해 42억 달러에서 2028년 153억 달러로 전망된다.

작물 재배용 선반을 층층이 쌓아 만든 수직농장의 모습. 사진은 스마트팜 기업 팜에이트의 평택 본사 식물공장의 전경. 팜에이트

기후위기는 세계 커피 시장(1132억 달러)도 강타하고 있다. 원두 생산의 60∼70%를 차지하는 아라비카 재배지역이 이상기후에 시달리는 가운데 야생 커피 75종의 60%가 멸종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대체 커피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해바라기 씨 등 40여 가지를 섞어 커피의 맛과 향을 낸 아토모(Atomo) 커피는 미국 대학생 대상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진짜 커피보다 맛이 좋다는 평까지 들었다고 한다.

최근 세포공학 기술의 바이오 반응기(Bioreactor)를 이용한 배양육 개발이 화제다. 동물 세포 중 분화되지 않은 줄기세포를 추출해서 배양기에 넣고 근육세포 등으로 증식시키는 방식이다. 찬반 논란 가운데 시장은 커지고 있어, 런던에서 2013년 배양육 버거가 공개된 이후 관련 기업이 60개에서 2023년 174개로 늘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비용인데, 2001년부터 20년간 매년 평균 45% 내려갔다(맥킨지).

포항 티센바이오팜 본사에 있는 배양육 진열장. 마치 흔히 보는 정육점의 냉장 진열장을 보는 것과 같다. 최준호 기자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아그테크(AgTech)도 주목된다. 중국 윈난대 연구진은 유전자가위 기술로 한 번 심어 여러 번 수확할 수 있는 다년생 벼를 개발했다. 한·중 공동연구진은 돼지의 근육 성장을 막는 유전자를 제거해 일반 돼지보다 몸집이 큰 이중근육의 수퍼돼지를 만들었다(2015년 김진수·윤희준, 네이처).

기후위기에 맞서 각국 정부가 첨단농법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고도의 인프라 투자 재원과 기술력은 민간부문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신기술 도입에 대한 러다이트(Luddite)의 두려움과 저항, 기존 산업과의 이해 충돌 등을 해소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물론 연구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규제 합리화가 필수다. 최근 정부가 수직농장 사업과 배양육 개발 등을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으나, 부처 간 실질적 협력에 의한 실행력이 관건이다. 유전자가위 기술도 외국에 시장만 내어주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규제 합리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살기가 팍팍하면 민심은 떠난다. 기후위기시대 농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기존의 단기적·계절적 수급 안정 대책에서 나아가 첨단기술 활용의 중장기적·구조적 대응을 해야한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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