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대통령'님, 나라 밖도 좀 둘러보시죠[장세정의 시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험한 비화와 소회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출간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후폭풍이 거세다. 김정은의 말뿐인 비핵화 약속을 진심인양 철석같이 믿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순진무구한 속내를 책으로 확인하고 아연실색한 국민이 한둘이 아닐 듯하다.
회고록을 내는 바람에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 외유 의혹이 증폭하고 있다.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발탁한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이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을 굳이 질문에 넣고 문 전 대통령이 상세히 답변한 의도가 궁금하다. 행간을 읽어 보면 아마도 서로 조율한 문답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김건희 여사를 에둘러 비판하려는 계산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런 의도는 빗나간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 여사의 인도행을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로 나름 포장했다. 그러나 이는 4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단독 외유'이자 '혈세 낭비 단독 관광'이라는 여당의 공격을 초래했다.
■
「 미·중 경쟁 등으로 국제 정세 요동
이재명 대표, 글로벌 안목 키워야
미국·일본·대만 격변 현장 가보길
」
급기야 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원장을 역임한 박지원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는 "제가 모셨던 이희호 여사(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님이 2002년 5월 유엔 총회 초청을 받아 연설했다"며 '김정숙 여사 첫 단독외교'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회고록은 결국 국민의 궁금증과 의혹만 키웠다. 대통령 1호기를 타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타지마할 행과 관련해 과연 무슨 부적절한 일들이 있었을까. '3김 여사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위를 가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골프와 외국 방문은 종종 뒷말을 낳고 뒤탈이 생긴다. 특히 해외에 나가 골프 치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정적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러나 공금으로 쇠고기를 사 먹지 않는다면, 합법적 절차를 거친 경비 지출이라면, 무엇보다 자기 주머니를 열고 귀한 시간을 투자해 해외 견문을 넓힌다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기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마땅하다.
불나방처럼 여의도 주변만 맴도는 '내수형 정치인'들에게 가능하면 많이 해외로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주목한다. 22대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재선 의원이 된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말이 회자할까.
그가 정치적 영향력을 특정 이념과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로운 방향으로 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처럼 여의도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 곤란하다. 미·중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미국 대선 동향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살피고 글로벌 안목을 키워야 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 대표가 해외에 나간 횟수는 극히 적었다. 경기도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5년에는 호주·뉴질랜드 출장 중에 호주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대장동 게이트' 수사에서 소환됐다. 2015년과 2016년 성남시장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기록이 나온다. 2019년 11월 경기도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기록 이후에는 거의 해외 행차가 안 보인다.
이 대표가 앞으로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입법 활동을 하느냐에 국가 운명과 국민의 삶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막강한 야당 지도자가 된 이 대표가 가능하면 꼭 방문했으면 하는 '가상의 버킷 리스트'를 제안해 본다.
미국 실리콘 밸리를 10년 만에 다시 방문해 세상을 뒤흔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현주소를 점검하면 좋겠다. 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 열풍을 보이는지도 따져볼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동면에서 깨어나 재시동을 걸고 있는 현장도 놓칠 수 없겠다.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를 질주하는 대만 TSMC 공장을 찾아가면 "중국에 그냥 셰셰(謝謝·고맙다)하면 된다"고 했던 이 대표 자신의 발언을 되돌아보게 될 거다. 혹시 시간이 더 나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도 좋겠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했다"는 단편적 생각을 재고할 기회가 될 것이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는 당분간 법정 출석에 집중해야 할 테니 해외를 둘러볼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당사자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지만, 설마 눈치 없는 검찰이 '용산 대통령'도 이제는 무시 못 한다는 '여의도 대통령'을 출국 금지했을까.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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