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죽음으로 삶을 노래하는 오페라

2024. 5. 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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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크나큰 슬픔을 준다. 비극적인 이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뛰어난 리라 연주자였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의 죽음으로 큰 비탄에 빠져 슬퍼하다가, 지옥으로까지 아내를 찾아 나선다. 음악으로 지옥의 신의 마음을 녹이는 오르페우스 신화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1607),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로 재탄생하였다.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테드 창의 단편소설 ‘지옥은 신의 부재’(2001)에서 주인공 닐 또한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내 사라를 잃고 큰 슬픔에 빠진다. 닐은 아내를 따라 죽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천국에 간 아내를 못 만날 것이기 때문에 죽지 못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벨기에의 작가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도시 브뤼주』(1892)에서도 전개된다. 주인공 위그는 아내가 죽자 슬퍼하며 절망감에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지옥에 가면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되기에 차마 자살하지 못한다. 그 대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중세적 분위기의 도시 브뤼주에서 아내의 유품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 코른골트의 후기 낭만주의 작품
오페라 ‘죽음의 도시’ 국내 초연
죽음 다루지만 삶의 희망 노래

‘죽음의 도시’의 한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

이러한 문학 작품이 오페라로 구현될 때, 관념적인 죽음과 상실은 한층 생생하고 감성적으로 형상화된다. 로덴바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코른골트(1897~1957)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1920)가 그러하다. 회색빛 죽음의 도시 브뤼주(Bruges)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덴바흐의 소설은 ‘신기루(Le mitage)’라는 4막의 무대 작품으로 출판되었고, 이 희곡을 토대로 오페라가 탄생하였다.

이 오페라가 드디어 한국에서 초연 중이다. 국립오페라단(단장 최상호)은 23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죽음의 도시’를 공연 중이다. 줄리앙 샤바가 연출을 맡았고, 주인공 파울은 세계적인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린츠 콩쿠르 수상자로 활발한 국제적 활동을 하는 이정환이, 마리와 마리에타의 역은 바그너 오페라 연주에 정평이 있는 레이첼 니콜스와 소프라노 오미선 성신여대 교수가 맡았다. 양준모·최인식·임은경·이경진 등 국내 최고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로타 쾨닉스의 지휘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죽음의 도시’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는 많다. ‘이미지로 쓴 소설’이며 ‘도시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드러낸다는 원작은 코른골트와 음악평론가로 저명했던 그의 아버지의 대본 작업으로 3막의 긴장감 있는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1막에서 아내 마리의 죽음 이후 우울하게 지내는 파울은 아내를 닮은 무용수 마리에타를 만나 심리적 갈등을 겪게 되며, 2막에서 그는 마리에타에게 점점 마음이 기운다. 하이라이트는 3막이다. 마리에타가 파울에게 아내 마리를 잊으라고 자극하자, 죄책감을 느낀 파울은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마리에타를 죽인다. 그렇지만 이후 파울은 마리에타를 다시 만나게 되니, 그 살인은 환상 또는 꿈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슬픔과 집착,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오가는 내러티브는 ‘비엔나의 푸치니’라고 평가받는 코른골트의 후기 낭만주의 양식의 서정적이고 화려한 음악으로 구현되었다. R. 슈트라우스·드뷔시·푸치니 그리고 바그너에게 영향을 받았던 코른골트의 음악은 조성에 기반한 화성진행, 음향적 색채감, 비르투오소적 화려함을 보인다. 1막에서 마리에타가 부르는 ‘내게 머물렀던 행복’은 당시 비엔나에서 인기를 얻었던 오페레타의 서정성을 보이며 큰 사랑을 받고 있고, ‘피에로의 노래’는 화려한 관현악과 합창이 등장하는 2막에서 ‘나의 동경, 나의 망상, 옛꿈을 꾸네’라는 가사와 함께 서정적인 순간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의 드라마투르그를 담당한 이용숙은 ‘죽음의 도시’가 “우울하면서도 활력이 넘치고, 로맨틱하면서도 스릴러의 긴장을 품은 독특하고 매혹적인 오페라”라고 평하며, 작곡가는 이 오페라의 제목을 원래 ‘삶의 승리’로 정하려 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중심이 되는 오페라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아내에 대비되는 생동감 넘치는 마리에타, 마리에타를 살해하며 자신의 강박증에서 해방되는 파울의 모습, 그리고 마리와 마리에타 모두를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스스로 브뤼주라는 도시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 오페라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 이 공연을 보려고 한다. 최고의 연주자들이 펼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음악적 사유가 기대된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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