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8년 전 ‘국가핵심기술’ 선정을 둘러싼 의혹들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이라는 의약품이 있다. 얼굴 주름을 펴주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밖에도 다한증, 방광과민증, 편두통 등 신경이 관련된 다양한 증상에 사용된다. 한 기관에 의하면, 보툴리눔 톡신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4년 현재 약 16조원에 달한다.
애브비(AbbVie), 입센(Ipsen), 머츠(Merz)등 거대 글로벌 제약사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시장에 국내 제약사들이 도전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전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수출을 규제한다. 현재 75개의 국가 핵심기술이 지정돼 있는데,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도 2010년부터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2016년부터는 보툴리눔 독소를 생산하는 ‘균주’도 추가됐다.
보툴리눔 톡신(독소) 제제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라는 박테리아 균주로부터 얻어진다. 이 균주를 배양하여 독소를 얻고, 이를 정제하여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제를 만드는 것이다.
‘균주’ 그 자체는 산업기술보호법에서 말하는 ‘기술’이 될 수 없으므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균주를 지정한 것은 법률에 위반된다. 해외에서 균주를 쉽게 구매할 수 있으므로 수출을 규제할 필요성도 없다. 2016년 이래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으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요지부동이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생산 ‘기술’은 어떨까. 이미 특허와 논문 등으로 충분히 공개돼 있어, 이를 규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려는 국내 제약사의 발목을 잡는다. 국내 제약사가 해외 진출을 준비하게 되면 현지 규제 당국의 요구에 맞게 기술문서를 제출해야 하고 허가 이후에도 각종 변경이 있을 때마다 기술문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방법과 공정이 국가 핵심 기술일 땐 수개월씩 걸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추가적인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내 제약사로서는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한국의 산업기술보호법과 마찬가지로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의 안보와 산업 보호를 위해 특정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는 제도를 두고 있으나, 보툴리눔 톡신 생산기술과 균주를 지정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업계 의견을 모아 전달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월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열고도 이를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김기정 법무법인 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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