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을 맞은 잔나비 최정훈의 오늘

이재희 2024. 5. 24.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프론트맨 최정훈. 수십 년이 흘러도 무딘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래하는 내 모습은 언제까지나 날 서고 예민할 것이라는 최정훈의 초상.

화보 컨셉트는 정훈 씨의 의도가 담겼다고 들었습니다. 키워드는 ‘쑥스럽지 않은 나의 모습’이라고요

직접 기획했다기보다 의견을 냈어요. 이전 화보가 멋있어 보이는 데 치중했다면, 이번에는 억지스러운 멋을 빼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어요.

실크 톱과 팬츠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앨범을 구상할 때도 ‘빼는 것’에 집중하는 타입인가요

2021년에 발매한 정규 3집 〈환상의 나라〉까지는 더하려고만 했어요. 언젠가 우리 곡을 들어보니 요소가 많아 듣기에 살짝 피곤하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빼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1년간의 공백 이후 오른 첫 페스티벌 무대 ‘더 글로우 2024’는 어떤 영감을 안겨줬나요

새벽 2시면 잠드는 편인데 공연 전날은 거의 못 잤어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우리가 준비한 것에 확신이 없었어요. 기타를 연주하는 도형이와 우린 평소대로 하되 ‘구닥다리’로 불리는 세션 팀에는 힘 빼서 대충 하자고 작전을 세웠죠(웃음). 세션 팀에 부담을 주기 싫었거든요. 처음으로 ‘파이팅’ 대신 ‘대충 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친 뒤 무대에 올랐고, 다행히 공연은 훌륭했어요. 1년 만의 공연이라 행복했고, 우리가 어릴 때 꿈꿨던 밴드 공연과 관객들의 모습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이 팬들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걸 해볼 수 있겠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체감했어요.

슈즈는 Tod’s. 팬츠는 Dolce & Gabbana. 톱과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올해로 잔나비의 데뷔 10주년이죠

10년이 이토록 짧을 줄 몰랐네요. 그 시간 속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요. 10년이 흘렀다는 사실만으로 올해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10년을 지속하면 손에 익숙해지잖아요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모든 게 낯설어요. 전부 처음 겪는 일 같고 생소하죠. 작은 공연 하나하나마저도요. 여전히 생경하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숄더 실루엣이 독특한 셔츠는 Prada. 키티 장식의 폰 케이스 액세서리는 High Cheeks x Sanrio.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성향이군요

저는 굉장히 호전적이에요. 모든 일을 전투로 생각하죠. 10년 동안 크고 작은 전투를 잘 이겨왔다고 생각해요.

데뷔 시절의 싱글 앨범 〈로켓트〉를 만들던 때의 최정훈은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우리끼리 잔나비의 시작은 〈로켓트〉 발매 이전 혹은 더 이후라고 말하긴 해요. 그 앨범을 만들 때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미래에 얼마나 고단하게 음악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오늘 당장 곡을 만들고 공개하자는 추진력만 가득했죠. 그때는 음원 발매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포부와 꿈은 컸지만, 그걸 성취하기 위한 계획이나 음악에 헌신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없었어요.

화이트 컬러의 실크 톱과 팬츠, 슈즈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한 인터뷰에서 “시류를 의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그러나 시류에 맞추자니 잔나비의 코어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잔나비의 코어는 시류에 따라 변하지 않는 건가요

빛을 쬐는 각도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이듯 잔나비의 음악 코어는 그대로지만 시류에 따라 달리 읽힌다고 생각해요.

도형 씨와도 시류에 대한 대화를 하나요

최근에 많이 했어요. 요즘 사람들이 듣는 음악과 우리 음악이 어떻게 들리고 읽히는지에 대해 고민하죠. 저는 음악을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갖고 내 음악을 바라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류를 주의 깊게 살펴요.

니트 톱과 팬츠, 벨트는 모두 Jil Sander. 레이어드한 반팔 셔츠는 Junya Watanabe.

묵묵히 걸어온 잔나비가 음악적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이뤄낸 순간은

최근 큰 변화와 맞닥뜨렸어요. 요즘 제가 빠진 ‘추출’이라는 단어처럼 잔나비의 음악 코어에서 필수 요소만 추출해 내 관심사와 적절히 섞는 일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꾀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환경 다큐멘터리 촬영 차 남극에 갔어요. 남극 세종 과학기지로 들어가기 전에 호텔에서 강제로 일주일 동안 격리를 했죠. 그때 잔나비에 대해 혼자 깊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남극에 가기 이전까지는 잔나비 음악에 외적 요소가 담기는 게 싫었어요. 하지만 남극에서의 시간 이후 외부 요소가 우리 음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기 시작했어요.

톱과 팬츠, 슈즈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곡의 서사를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역시나 ‘재미’일까요

궁극적으로는요. 저는 스스로 몰입하고 도취하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어요. 그 시간을 만끽하려면 내게 벌어지는 일과 나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야 하죠. 그러다 보니 가사를 쓰고 앨범을 만들 때 당시 내게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게 돼요. 일기처럼요. 사람들은 잔나비 음악을 서사적이라고 표현해요. 일기를 쓰는 과정 끝에 완성된 거예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선 남몰래 펼쳐보아요” 같은 구절에서도 팬들은 잔나비의 가사를 ‘낭만’ ‘달콤한 동화’ ‘서사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송곳니처럼 날 선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나요

저는 ‘불만’과 ‘화’가 많고, 매사에 날이 서 있어요. 개인적인 자리에선 말도 거칠게 하죠(웃음). 그런 뾰족한 마음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사를 써요. 날 선 말을 스펀지로 포장하고 곱게 갈아주면서 예쁘고 동화적인 가사로 탄생시키는 거죠. 가끔 있는 그대로 쓸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재미가 없어요. 부르기에도 재미없고 읽기에도 그렇죠.

미키마우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해 5~8월 동안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을 진행하며 MC 자질을 느끼기도 했나요

전혀요. 회차가 거듭될수록 자질이 없다고 느꼈습니다(웃음). 그래도 MC 하면서 더 유명해졌어요. 작업실 앞 공사장에서 건설현장 아저씨들이 줄지어 앉아 물을 마시다가 제가 지나가니까 “잔나비잖아, 잔나비!”라고 외칠 만큼.

음악 방송을 진행하며 다양한 아티스트의 무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도 MC의 장점이 아닐까요? 가장 강렬했던 자극은

양희은 선배님이 출연했을 때. 선배님이 무대에서 내려온 뒤 적잖이 긴장한 모습으로 스태프들에게 “나 잘했니?”라고 되묻는 모습을 보며 크게 자극받았어요. 나는 긴장을 덜어내고 초연하게 무대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모든 것에 무딘 뮤지션을 꿈꿨는데.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양희은 선생님조차 그러지 못하시는구나. 내가 겉멋이 들었구나 싶었어요.

셔츠는 Kimhe–kim. 타이는 Dolce & Gabbana.

잔나비는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하는 선배인가요

바람을 말하는 편이에요. “앨범 좀 내줘. 말보다 네 음악을 듣고 싶고, 네 음악이 궁금해”라고.

슬리브리스 톱은 Circusfalse. 재킷은 Gimaguas by Shop Amomento. 팬츠는 Lele Lin. 벨트와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느꼈던 낭만적인 순간은

저와 도형이는 출근제로 작업하거든요. 얼마 전 어느 월요일에 날씨가 너무 좋았어요. 도형이랑 딱 30분만 출근을 미루자는 대화를 서너 번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더라고요. 도형이에게 ‘나 지금 너무 행복한데’라고 문자 했더니 ‘같은 생각이야’라는 답을 받았어요. 오늘까지만 딱 쉬기로 했는데 그만큼 행복하고 낭만적인 순간이 없었어요.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분이 몹시 좋았죠.

슬리브리스 톱은 Circusfalse. 재킷은 Gimaguas by Shop Amomento. 팬츠는 Lele Lin. 벨트와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낭만은 사소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평소 제가 생각하는 낭만은 사전적 의미의 낭만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날만큼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낭만적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낭만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막 쓰고 싶지 않거든요. 낭만적인 순간이라는 게 조금 말이 안 되는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셔츠는 Junya Watanabe. 니트 톱과 팬츠, 벨트는 모두 Jil Sander.

10주년을 맞이한 잔나비의 각오는

전 세대를 아우르고 싶습니다. 남녀노소, 지나가는 꼬마도 우리 음악을 듣고 신나 하거나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노래를 부를 줄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셔츠는 Junya Watanabe. 니트 톱과 팬츠, 벨트는 모두 Jil Sander.

그 소망이 이뤄지고 있다고 체감할 때도 있나요

네,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 대한민국에서 우리 노래도 남녀노소 불리는 노래로 거듭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솟고요. 꽤 멋진 일이죠?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엘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