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하늘의 뜻인가, 인간의 뜻인가

조유리 2024. 5. 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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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영화 <밍크코트> 가 주목한 죽음의 의미와 시점에 대해서

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자말>

[조유리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밍크코트> 중
ⓒ 인디스토리
 
최근 중년층 사이에서는 연명치료사전의향서 작성이 자주 화두가 된다. 이는 몸이 건강할 때 미리 연명의료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밝혀두는 것인데, 만약 내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된다면 그러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명의료, 즉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는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과정'을 실행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미리 본인의 의견을 정해두는 것이다.

이 연명의료와 관련해서는 먼저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2008년 76세의 김 할머니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려 검사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다.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 연장 장치에만 의존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할머니의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을 전하며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소송에까지 이른다.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하였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이러한 연명의료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2016년 2월에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되었으며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었다.

필자의 아버지도 생전에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싶어 하셨는데, 이러한 의사를 미리 밝혀두지 않으면 환자 당사자의 의사도 모른 채 연명치료 여부를 두고 가족들이 힘겨운 갈등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명을 이어가는 치료를 멈춘다는 것 자체가 불효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상황이 닥치면 너무도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미래를 대비했던 아버지지만 결국은 세상을 떠나던 상황에서는 며칠의 연명치료는 불가피했다. 아버지가 소생 불가능한 임종 직전의 상태에 빠졌는데도 병원은 최종 결정을 가족에게 맡겼고, 형제와 나는 결국 며칠의 고민 끝에 연명치료 포기에 동의하고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것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로부터 중단할 수 있는 연명치료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인공호흡기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투여 등이다. 이 중 환자의 상태에 맞게 실행되는 치료 중에서 순차적으로 하나씩 중단을 하는 것인데 필자의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혈압상승제를 투여하고 계셨고 마지막 치료를 포기할 때는 혈압상승제 중단만으로도 생을 마감하게 됐다.

효자를 가늠하는 척도일까

영화 <밍크코트>가 개봉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2012년이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최소한의 제도 마련도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을 놓고 벌어질 수 있는 가족 간 갈등이 매우 현실적으로 담겨있다. 병원비 문제도 있고 어머님도 깨어나기 힘든 상태이니 연명치료를 중단하자고 말하는 형제들과 어머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인 딸 사이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다. 말로만 다투는 것이 아니라 연명치료 중단을 몸으로 막기 위해 육탄전까지 벌이는 가족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지만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들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뗄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실제 병원에서는 임종기에 있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는 1997년 벌어진 '보라매병원 사건'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50대 남성이 머리를 다쳐 보라매병원에 응급 이송되었고 긴급 뇌수술을 받은 뒤 이어서 치료를 받던 상태였다. 그런데 보호자는 치료비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환자의 퇴원을 요구했고 처음에는 이를 허락하지 않던 의료진이 강경한 보호자의 태도에 '퇴원 후 환자의 사망에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귀가 서약서를 받고 환자를 퇴원시킨다. 결국 환자는 퇴원했고 병원을 나간 지 5분 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장례비를 지원받아보려던 보호자가 환자를 병사가 아닌 '변사'로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이 환자의 사망을 수사하게 되었으며 결국 보호자와 의료진은 모두 살인죄로 기소가 되었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대법원은 보호자를 살인죄의 정범으로, 담당 의사와 전공의를 살인방조범으로 판단하고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의료계에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도 절대 거부하고 다른 연명치료는 다 중단해도 호흡기만은 절대 떼지 않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인공호흡기 또한 '법적으로는 멈출 수 있다고 정한' 연명치료에 속하지만 아직까지도 인공호흡기 제거는 허용하지 않으려는 병원이 많다.
 
 영화 <밍크코트> 중
ⓒ 인디스토리
  
연명의료의향서는 무용지물인가

연명의료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의가 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환자'라고 규정하기가 쉽지 않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산 사람을 죽이는 행위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무리 환자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향서를 써놓았다고 해도 보호자나 병원 측이 이를 반영하지 못할 때도 많다. 또한 이 사전의향서의 내용을 반영해서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려면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야 하는데 보통 윤리위원회는 상급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설치되어 있다. 그 외의 병원이라면 의향서를 써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향서를 기준으로 연명치료여부를 결정하지 않기도 한다.

언뜻,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것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의식있는' 부모가 되었다는 증명인 듯 느껴지기도 해서, 필자의 주변에도 이 서류를 작성한 뒤 어깨를 으쓱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확실히 말하기에는, 아직까지 이 제도를 둘러싼 현실이 다분히 복잡하고 논의 거리도 많다. 그럼에도 의향서를 써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의식을 잃은 환자의 죽음에 대한 평소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런 걸 보면 이제 더 이상 죽음이 하늘의 뜻이 아닌 시대다. 죽음은 철저히 인간의 손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렇다고 죽기도 쉽지 않은, 즉 죽음까지 도달하는 여정이 매우 험난한 시대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죽음 자체보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www.lst.go.kr,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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