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동명부대장의 막말 "이태원·세월호 놀다 죽은거 아냐?"
[김도균 기자]
▲ 동명부대원들이 레바논 현지에서 고정감시적전을 벌이고 있다. |
ⓒ 합동참모본부 |
해외 파병 부대장이 부하들에게 이태원·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언급하면서 '놀다 죽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레바논에 파병된 대한민국 평화유지단 동명부대장 A대령은 지난 2월 19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외 진료에 따른 안전 문제를 제기한 군의관들과 수의장교를 부대장실로 불러 모아 영외 진료를 나갈 것을 지시했다. 이에 한 군의관이 '만약 영외 진료 활동 중에 목숨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자 A대령이 '당연히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다 죽었으면 순직'이라고 답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세월호·이태원 참사' 발언이 나왔다.
A대령은 천안함 전사자와 세월호·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비교하면서 부대원들에게 "이태원 사건에서 아직까지 저러고 있잖아. 막말로 놀다 죽은 거 아니야?", "수학여행 놀러가다가 죽은 거고 이태원 그것도 전 날에 내가 이태원쪽 지나갔는데, 핼러윈 때 놀다가 죽은 거 아니야?"라며 놀러갔다 죽은 것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복수의 제보자들은 민군 작전 재개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안전성 평가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채 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한 후 대민 지원 작전시 장병 안전 확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재발방지 약속을 한 가운데 파병부대 지휘관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레바논은 안전한가
동명부대는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유니필)' 서부여단 예하 대대로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1개 대대를 주축으로 공병·통신·의무·군사경찰·수송·정비 등 제 병과로 구성되어 2007년 7월 제1진이 파병된 이래 지난 1월에는 29진이 현지에 도착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불법무기·무장세력 유입에 대한 감시정찰작전과 레바논군 지원 외에도 우호적 작전환경 조성을 위한 민군작전이 부대의 주요 임무다.
▲ 지난 20일 이스라엘 공군기의 폭격을 받은 마얄리에(Maaliyeh) 마을은 동명부대 주둔지에서 5km가량 떨어져 있다. |
ⓒ 제보자 제공 |
무엇보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 소식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별다른 정보나 신변 보호조치 없이 현지인 마을로 나가서 진료하라는 지시가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는 것이다.
군의관들이 가장 불안해 한 점은 이스라엘의 공습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공군기들은 자주 동명부대 상공을 저공 비행하면서 플레어(열추적 미사일 회피용 섬광탄)나 기관포 사격을 했다는 것이 복수의 부대원 증언이다. 한 부대원은 민군 작전 재개를 결정하기 직전인 지난 2월에만 7일, 11일, 14일, 21일 이스라엘 전투기의 위협 비행과 기관포 사격으로 부대원들이 방공호로 대피했다고 기록했다. 공습경보 발령에 따른 대피와 해제, 다시 대피가 반복된 날도 있었다. 제보자들은 공습경보는 거의 이스라엘군의 폭탄이 떨어진 후에야 발령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부대장은 작전 보안을 강조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불안해하는 군의관들에게 '한국으로 보내버리겠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외 진료는 위험하다고 호소하는 군의관들에게 부대장은 자신의 국가정보원 파견 경력을 내세우며 '군사경찰에 지시해서 먼지 털 듯 조사를 시키겠다' '한국으로 보내버리겠다'며 지시를 따를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부대장은 영외 진료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군의관 중 한 사람을 지목해 다른 부대원들 앞에서 '비겁자'라고 수차례 비난했다고 한다. 단순한 비난에만 그치지 않고 부대장은 이 군의관을 부대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 지난 20일 이스라엘 공군기의 폭격을 받은 마얄리에(Maaliyeh)는 동명부대 주둔지인 티레(Tyre)에서 5Km가량 떨어져 있다. |
ⓒ 구글 지도 갈무리 |
귀국한 군의관이 의무대에 한 명뿐인 치과 군의관이었던 탓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할 부대원들은 격전이 벌어지는 이스라엘 국경 근처 유니필 병원까지 가야했다. 이 군의관은 최근 파병 전 근무지였던 수도권의 한 사령부에서 강원도의 보병사단으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주 5회 대민진료' 시행하려다 중지되자 '한국 위상 떨어뜨렸다' 비난
해당 군의관이 귀국한 직후인 지난 11일 부대장은 남은 군의관들에게 대민 진료 확대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초 주2회로 계획되었던 대민 진료는 주5회로 확대돼 공지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한 곳씩, 총 5곳의 마을을 돌면서 현지인 대상 진료를 하도록 한 것이다. 군의관들이 걱정했던 테라 디바 마을은 매주 목요일 진료를 하는 것으로 예정됐다.
하지만 지난 13일 해외 파병부대를 관할하는 합동참모본부(합참)는 동명부대의 대민 의료 지원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부대원들로부터 현지 상황을 전해 들은 국내 일부 가족들이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 동명부대의 민군 작전 확대 방침을 우려하는 글을 올리면서 합참이 문제점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동명부대장은 합참의 작전 중단 지시가 내려진 후 회의 석상에서 '개인의 의견이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부대장은 또 '한국 부대는 가장 안전한 지역에 있으면서 겁쟁이 부대라고 인식됨' '유니필, 서부여단에서 합참에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라고도 언급했다. 이 같은 내용은 14일 카카오톡 공지를 통해 '부대장 전파 사항'으로 부대원들에게도 전달됐다.
▲ 지난 2023년 10월 27일 윤상현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 "동명부대는 이스라엘 국경 지대로부터 후방에 있다지만 불과 2.7km 떨어진 곳에 헤즈볼라 근거지가 있어 철수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
ⓒ 윤상현 의원실 |
동명부대의 안전 문제는 이미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2023년 10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동명부대가 헤즈볼라 근거지인 테라 디바 마을과 불과 2.7km 떨어져 있다"라면서 "헤즈볼라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오폭 공격을 유도하는 계략 가능성이 상존해 있어 동명부대가 피해를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동명부대는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지난해 10월부터 민군 작전을 잠정 중단했다. 현지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지난 3월 민군 작전 재개를 결정한 배경에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더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15일에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유엔 안전보안국(UNDSS) 소속 직원 1명이 유엔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가 이스라엘군 탱크 공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격을 받은 차량에는 유엔 표시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한편, 동명부대장의 언동과 민군 작전 재개의 근거를 밝혀 달라는 <오마이뉴스> 질의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참은 22일부터 동명부대에 대한 현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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