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남 배우,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시민추도사 전문

윤성효 2024. 5. 23. 16: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3일 오후 봉하마을 15주기 추도식

[윤성효 기자]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묘역 열린 추도식에서 명계남씨가 시민 추도사를 하고 있다.
ⓒ 김보성
 
명계남 배우는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15주기 추도식에서 시민 추도사를 했다. 다음은 시민추도사 전문이다.

추도사

노무현 대통령님,
님 안 계신 지 15번째 5월입니다.
그새 저는 님의 이승 나이보다 10년을 넘어 살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님의 말씀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올 때마다 이를 지켜내는 것은 시민이다, 우리다, 깨어있는 시민이다
자긍심으로 지치지 않는 강물이 되겠다 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님 때문에 눈이 높아진 우리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고 꼬집으며 동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여서 민주주의는 시시때때로 위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전진을 더디게 만드는 데 우리가 스스로 한몫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여 님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대통령님 야단쳐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민주주의는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사상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결과에 승복하고 패자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그래서 이견과 이해관계를 통합해 나가는 정치 기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지키지 못하는 님의 말씀임니다. 야단쳐 주십시오.

"지금 당신의 생각과 실천이 바로 내일의 역사가 된다"고 말씀 하셨지요. 무서운 말씀입니다.

네 그래서 이 오월, 다시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깨어있는 시민인가? 조직되어 있는가?
아, 잘 모르겠습니다.

네, 주제넘은 넋두리를 한 듯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눈이 높아진 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엄한 얘기도 함부로 꺼내는 어설픈 용기도 가져봅니다. 용서하십시오.

엊그제 묘역애서 만난 한 참배객께서 저더러 "고향도 아닌 여기로 이사 와서 이렇게 매일 무얼 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마땅한 대답을 못 찾은 제 입에서 불쑥 나온 대답은 "대통령께서 언제 불쑥 일어나실지 몰라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요. 그분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흔들리고 우리끼리 날 세우고 생채기를 낼 때면 더욱 대통령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더없이 따뜻하지만, 차가운 이성이 압도하던 당신. 잘못하면 사과하고, 잘났지만 겸손하며, 좋아한다고 하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던 당신. 무엇보다 사랑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 대놓고 지지해도 쪽팔리지 않게 해 준 사람. 더 사랑하지 못해 미안해지게 하는 사람.

내 힘으로, 우리가 모여 더 나은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일깨운 사람. 사느라 시들어 버린 열정을 되살려 준 사람. 내가 얼마나 뜨거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준 사람.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 기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해 준 사람.

그리고 그리고, 다시없는 지독한 슬픔을 알게 한 사람. 당신을 너무 믿어서 습관처럼 어떤 고난도 혼자서 알아서 잘 이겨내시리라 편하게 생각해 버린 것을 천추의 한이 되게 만든 사람, 당신. 당신의 마지막 오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미워서 환장하게 한 사람.

그리고 그리고. 다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이 되어 준 사람. 15년을 버티게 해 준 사람. 더없이 고마운 사람. 외로운 사람. 그리운 사람, 당신.

대통령님 지낼 만하신가요? 우리 생각은 하시나요? 때때로 보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그립기는 한가요?

괴로운 일을 당할 때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내가 하는 선택은 당신이 매 순간 해야 했던 선택의 무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님이 넘기신 말과 글을 수백 번 옮겨 쓰고 읽고 보고 듣고 다시 들여다보고,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습니다. 그러면 살아 볼 용기를 다시 내봅니다. 언제나 지금도 님은, 부족한 제게 삶의 기준이며 지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다시 시간이 쌓이고 세월은 쉼 없이 오가겠지요.
20년 30년이 지나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은 내 가장 찬란한 시절로 남을 것입니다. 그럼요.
그때도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노라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노짱.

2024년 5월 23일. 명계남 올림.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