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인 신부, 노무현 대통령 추도사 "소통이 막히고 정치가 실종"

윤성효 2024. 5. 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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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인 신부(천주교)는 23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15주기 추도식에서 공식추도사를 통해 "보고싶습니다"라고 했다.

자전거에 태우고 봉하 들판을 달렸던 당신의 손녀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손수 심은 나무들은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꿈꾸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중받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고르게 주어진 세상, 그러한 세상을 무도한 권력과 허망한 정치가 가로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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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15주기 추도식 공식추도사 전문

[윤성효 기자]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묘역 열린 추도식에서 송기인 신부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 김보성
 
송기인 신부(천주교)는 23일 오후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15주기 추도식에서 공식추도사를 통해 "보고싶습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이다.

추도사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느결에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전거에 태우고 봉하 들판을 달렸던 당신의 손녀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손수 심은 나무들은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잊혀가고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세월이 갈수록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집니다. 꾸밈없는 모습과 정겨운 목소리는 더욱 도렷해집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부르신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그리움만큼이나 부끄럽습니다. 당신께서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세상은 한 걸음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삶은 나아져야 아는데. 당신이 가신 뒤 오히려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거칠어졌습니다.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 시민이어서 자랑스러운 세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이 땅의 민중이 피땀으로 이루어 낸 민주화의 찬란한 역정은 지금에 이르러 뒷걸음질하면서 홀대당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자식처럼 사랑하고 어버이처럼 모셨던 이 땅의 민중들은 지금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괴물이 되어 무한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댑니다. 독단과 독선, 오만으로 소통이 막히고 정치가 실종됐습니다.

대통령께서 꿈꾸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존중받는 세상,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고르게 주어진 세상, 그러한 세상을 무도한 권력과 허망한 정치가 가로막았습니다.

저잣거리의 무뢰배보다 못한 정치판이 좋은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당신의 꿈, 다 함께 잘 사는 대동의 세상을 지키고 이루지 못한 채 지금 이 자리에 선 우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새롭게, 올곧게 거듭나려 합니다.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세상의 주인으로서 자세를 가다듬고 당신께서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당신을 향한 그리움 위에서 당신께서 남긴 정신을 따르려 합니다. 진정 우리가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서 찬찬히 새겨보면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愚公移山 - 당신의 생각대로 더디지만 진득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이제 우리는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와 편견과 아집, 탐욕을 벗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행복한 좋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정치판에서, 경제판에서, 문화판에서 열린 가슴으로 소통하면서 개인의 영달보다 이웃의 평화와 나라의 발전을 앞세우겠습니다.

"여러분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의 생각과 실천이 내일의 역사가 될 것이다."

당신의 뜨거운 절규를 오늘 이 자리에서 가슴에 아로새기며 소아를 벗고 대의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겠습니다. 다시 당신 앞에서는 날 떳떳할 수 있게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시공을 달리하고 있는 그곳, 주님의 뜰에서
유스토 노 대통령님 평화로우소서.

2024년 5월 23일. 송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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