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연 건축가 장윤규 "사람이 만들어가는 풍경 그렸죠"

이은주 2024. 5. 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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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인간산수'전시, 26일까지
장윤규, 인간의 매듭 Ⅱ, 판화지 위에 먹, 2021, 130x300cm. [사진 운생동]
장윤규,백록담 Ⅱ, 820x102cm, 판화지 위 먹,아크릴, [사진 운생동]
장윤규, 인간의 산 Ⅲ, 102X82cm, 판화지 위 먹, 아크릴. 2021.[사진 운생동]

멀리서 보면 대담하게 붓으로 그린 산수화 혹은 매듭의 윤곽이 보인다. 하지만 그림 앞으로 다가가면 뜻밖의 모습이다. 면을 가득 채운 것은 수많은 사람이다. 사람 하나하나가 깨알처럼 모이고 이어져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건축가 장윤규(59·운생동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국민대 교수의 개인전 ‘인간산수’가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과 관계의 본질을 탐구해온 그의 건축 회화 등 '건축산수' 연작과 먹 등으로 그린 회화 '인간산수' 연작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건축산수'가 건축 설계 일을 하며 떠오른 다양한 아이디어를 확장해 'SF 이미지'로 시각화한 것이라면, '인간산수'는 삶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마치 현대 산수화로 표현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것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완성한 '건축산수'다. 그의 머릿속에만 있던 최첨단 빌딩과 도시가 컴퓨터 모델링과 3D프린터 작업을 거쳐 입체 회화로 구현됐다. 이른바 '건축적 회화'다.

앞서『복합체( Compound Body)』라는 저서를 통해 건축의 구조, 공간, 재료에 있어서 보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통합을 제시했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스케치와 모형 작품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가 설계 사무소 동료들과 함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아 만든 SF영화 같은 영상 작품 '비저너리' 3편도 함께 선보인다.

[사진 운생동]

반면 '인간산수'는 긴 시간에 걸쳐 손으로 직접 그린 것으로만 구성됐다. 멀리서 보면 추상 회화, 가까이서 보면 아주 작고 단순하게 그려진 인간 무리가 면을 채운 군상화(群像畫)다. 군상화는 이응노(1904~1989)와 서세옥(1929~2020) 등이 선보인 바 있지만, 장 교수의 그림에선 군상이 모여 하나의 산수 풍경을 이룬 게 특징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장 교수는 '인간산수'에 대해 "사람으로 풍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그린 그림"이라며 "풍경은 주로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라고 여기는데, 작업을 통해 주체와 객체, 주인공과 배경을 바꿔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간이 서로 얽혀 하나의 환경이 되고 풍경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어 "이응노·서세옥 선생의 군상화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내 머릿속에 맴도는 삶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따라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 이어진 모습도 각기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선과 면의 형태에 따라 질서와 무질서, 열림과 닫힘, 충돌과 무한 확장 등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 인간과 인간이 만나 만든 관계의 지도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리켜 '새벽화'라고도 불렀다. 낮엔 본업인 설계 일을 하고 매일 새벽 한 땀 한 땀 수도하는 마음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다. 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잠을 줄여가며 매일 새벽마다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아 그림을 그려왔다"며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보내는 집중과 고요의 시간에 이끌려 10여 년간 그리기 작업을 지속해왔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몸은 고됐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내 안에 떠오르는 풍경, 내 안에 고이는 소리를 밖으로 끌어내며 내적 충만함을 느껴가는 과정"이었다.

'인간산수'는 '회화'라는 매체로 표현됐지만, 모든 작품에서 건축가로서 그가 꿈꿔온 이상(理想)세계가 담겨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그는 "인간의 관계가 한 작은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서로 충돌하며 무한하게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캔버스에서도 허공을 사람들이 받들고, 사방으로 무한히 열리고 늘어나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장윤규의 '인간산수' 전시장 모습. [사진 운생동]
자신의 대형 회화 '물의 지도 Ⅱ' 앞에 선 건축가 장윤규.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장 교수는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7년 한내 지혜의 숲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으며, 2018년 세계적 저널 PLAN지에서 커뮤니티 부문 국제건축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종로구 통합청사, 크링 복합문화공간, 예화랑, 생능출판사 사옥, 갤러리 더 힐, 성수문화복지회관 등이 있다. 전시는 26일까지. 무료.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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