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균열의 시대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 어떻게 할 것인가 [소셜 코리아]

신진욱 2024. 5. 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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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합의 형성 과정 없는 정당 지지는 분열 불러... 의제별 연대 높이고 다양성 존중해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신진욱]

지난 22대 총선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 전부였다고 하지만, 실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들을 제기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을 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저출생과 인구 고령화, 경제 불안, 사회적 고립, 기후위기 등 여러 국내외적 도전에 직면하여 긴급한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문제해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당사자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난 총선에서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개입 방식은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가들이 4월 9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투표 독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총선넷
첫째는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의 활동이다. 총선넷은 73개 시민단체와 17개 연대기구가 참여했다. 이번 선거에 관여한 시민사회 단위들 중에 가장 포괄적인 연대체의 하나에 해당한다. 총선넷은 정당들의 정책공약 분석, 공천 후보자들의 자격 검증, 사회개혁을 위한 정책과제 제안, 투표 독려 운동 등을 주요 활동 과제로 삼았다. 이는 큰 틀에서 보았을 때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서 시작한 낙천·낙선 운동과 다양한 매니페스토 운동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활동들은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투표일인 4월 10일까지 국내 모든 전국 일간지와 경제지, 4대 방송사의 보도 중 '총선시민네트워크' 또는 '총선넷'이 언급된 기사는 24건에 불과했다. 시민사회 활동의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과 여론의 반응에 있다고 했을 때, 이처럼 낮은 인지도를 갖고서 정당의 공천에 영향을 미치거나 정책과제를 쟁점화하긴 어렵다.

총선넷은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10대 분야 46개 정책과제'를 제시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지만, 결국 남은 과제는 이 같은 활동에 대한 사회적 주목과 대중의 호응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를 파악하고 행동전략의 혁신을 모색하는 일이다.

합의 과정 전무했던 비례정당 참여
     
둘째 유형은 여성, 주거, 인권, 복지, 기후 등 의제 분야별로 총선 개입 연대체를 결성하거나, 기존 연대체가 총선 개입 활동을 한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로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 총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 총선주거권연대 등의 총선연대 조직을 들 수 있다. 기후·환경운동 분야에서는 기후정치바람,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시민물결 등 단체들과 다양한 기후유권자캠페인, 기후정치네트워크들이 움직였다. 그 밖에도 광역지자체, 시도 단위의 총선시민사회연대 네트워크가 여러 지역에서 결성되었는데, 이들도 산하에 의제 분야별 기구를 두고 정책과 제도 개혁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연대체들은 각 분야의 전문적 의제를 중심으로 정당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제도개선의 대안을 제시했으며, 전국 또는 지역 범위에서 정당들과 정책협약을 체결하는 활동을 했다. 일례로 총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8대 요구안에 대한 이행 약속을 더불어민주연합으로부터 받아 정책협약식을 체결했고, 지역 단위에서도 후보자와 정책협약을 체결하는 등 결실을 맺었다.

이 같은 활동들은 선거를 계기로 제도의 실태와 정책개선 과제를 명확히 정리하고, 구체적 목표를 중심으로 연대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작지 않다. 나아가 이러한 연대 경험과 조직은 향후에 정부와 정당들의 정책에 더 큰 영향을 행사할 토대가 될 수 있다.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 시민회의 발족 기자회견이 1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시민사회단체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셋째 유형은 시민사회단체 임원들과 지식인들이 연합정치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라는 이름의 한시적 단체를 결성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사례다. 이 모임은 원래 선거제를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병립형으로 회귀시키려는 정치권의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생겼는데, 이후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결합했다. 시민회의는 오랫동안 시민사회에 기여했고 존경받는 다수 인사를 포함했으며, 비례후보로 역량 있는 정책전문가를 추천하여 당선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시민회의 방식의 선거 개입은 시민사회의 본질적 가치인 연대와 신뢰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여러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단체의 전현직 최고위 임원들이 참여하여 그 상징성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내에서 합의 형성 과정이 전무했다. 또한 많은 경우 참여자의 소속 단체에서 조직적 결의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바람에 모호한 성격의 모임이 되었다.

이처럼 시민사회 내에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시민사회 후보'로서 상징성을 갖는 인사를 추천한 것도 아니며, 또한 시민사회의 조직적 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허락하는 후보만 추천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수용해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쟁점은 더불어민주연합이 위성정당이냐 아니냐, 더불어민주연합을 파트너로 택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냐 아니냐,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타당하냐 아니냐 등등이 전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 임원이라도 조직의 내규와 결정이 허용한다면 정치적으로 당파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시민사회 명망가들의 모임이라는 형식으로, 시민사회 내의 동의와 지지를 구하지 않고 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구성원들 사이에 분열과 불신이 일어났는데, 그 외침의 핵심은 '당신은 틀렸어(You Are Wrong)'가 아니라 '나는 아니야(Not In My Name)'이다.

정당-시민사회 관계 훨씬 복잡해져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 출범 기자회견이 2023년 12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렸다.
ⓒ 어퍼
 
오늘날 시민사회의 정치참여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000년대 한국 시민사회의 확장과 다양성의 증대라는 구조적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대내적으로 결집되고, 대외적으로 단결된 행동을 하며, 강력한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는 시민사회라는 관념은 민주화 직후의 일정 시기 동안만 예외적으로 실현 가능했던 역사적 현상이었다.

그것이 실현 가능했던 것은 첫째 반독재 단결 투쟁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고, 둘째 시민사회의 규모와 분화가 아직 제한적이었으며, 셋째 정당정치가 미발전하여 시민들의 정당에 대한 참여와 일체감이 아직 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시민사회의 통일된 목표에 대한 동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시민사회가 여러 면에서 구조적으로 분화했으며, 정당정치가 활발해져서 당원들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다양한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당-시민사회 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시민사회 내의 다중적인 균열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첫째, 시민사회는 한때 '공동선'을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민사회 자체가 이념적으로 분화하고 분열해 있다. 우선 진보와 보수 단체들 간에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보수사회 세력의 조직화가 본격화했는데,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보수적 이념 성향의 '일반 시민'들도 집단행동 참여가 대단히 활발해졌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이념적 균열은 진보와 보수 양극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큰 틀에서 '진보적인' 시민사회 내에서도 근본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세력, 온건한 개혁 세력, 체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세력이 공존한다. 이 차이는 평소에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적 태도가 분명해지는 지점에서 적대적 관계로 전환할 수도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둘째, 정치적 균열은 이념적 균열과 때론 중첩되지만 이념 진영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범진보 진영 내에서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독자적 진보정당들에 대한 입장을 둘러싼 갈등은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균열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정당 활동을 하고 있고, 이들이 활동하는 정당도 과거보다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역으로, 정당의 활동적 당원들은 시민사회 활동도 활발하다. 2023년 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의 당원은 시민단체와 사회적경제 참여율이 비당원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므로 합당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체 또는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는 내부적으로 격렬한 분열과 반목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다른 정당 당원들이 수두룩하게 있으니 말이다.

다른 경험·관점·강조점 공존하는 시민사회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라파 지상군 투입 규탄, 가자 주민 집단학살 중단을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셋째, 가치의 분화도 시민사회 내에서 깊숙이 진행되어 왔다. 얼핏 시민사회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곳이니 공통의 가치로 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시민사회야말로 가치의 충돌이 격렬할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정치에서는 권력을 위해 타협할 수 있고, 경제에서는 이익을 위해 협상할 수 있지만,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으로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일정 기간 동안에는 환경, 여성, 인권운동 등 부문 운동의 분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큰 틀에서 민족·민중·민주의 큰 가치를 공유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민사회는 노동, 주거, 자산, 세대, 젠더, 기후, 지역 등 여러 쟁점에서 각기 다른 경험과 관점, 강조점과 민감도를 가진 구성원들이 긴장 속에 공존하는 곳이다. 내게 아주 중요한 어떤 것을 타인이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둘 사이에 연대는 불가능하다.

이상과 같은 시민사회 내의 차이와 다양성, 잠재적 적대가 어떤 조직적 위계 또는 세대적 권위, 명망이라는 이름의 권력에 의해 묵살되었을 때 서로 간의 신뢰와 존경은 무너질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이 모든 차이와 적대를 넘어서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이 동의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최소한의 공통 분모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민사회가 개입하는 방식을 낙천·낙선 운동, 의제별 연대 행동, 특정 정당 참여라는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중 첫째 유형은 가장 보편적인 캠페인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서도 뜨거운 지지를 끌어낼 수 없었다. 반면, 셋째 유형은 동의 기반 없이 특정 정당과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시민사회 내의 정치적 분열을 초래했다.

오늘날의 시민사회 현실에서는 각각의 의제 영역에서 구체적인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행동하고, 그러한 연대의 네트워크들이 더 큰 틀에서 교류하는 실천 방식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일찍이 마이클 월처가 시민사회는 '연대들의 연대'가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했던 것은 이런 의미일 것 같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 신진욱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신진욱은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입니다. 민주주의, 시민사회, 사회운동, 불평등 문제를 연구합니다. <한국정치 리부트> <그런 세대는 없다> <다중격차> <한국의 근대화와 시민사회> 등의 저서와 공저를 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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