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차량 구매액만 27억 원…독보적 권위 쌓은 이 기관

김종학 2024. 5. 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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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째 맞이한 미국 컨슈머리포트

[한국경제TV 김종학 기자]

미국 테슬라, 일본 도요타 등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도 이 기관의 평가 하나 하나에 전쟁을 치릅니다. 온갖 제품 리뷰와 추천 정보가 유튜브,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신뢰도 면에서 전 세계 어느 매체도 따라하기 힘든 이 기관의 보고서 때문입니다. 바로 자동차, 가전, 가구, 각종 소비품목에 대해 객관적이고 깐깐한 평가로 권위를 쌓아온 컨슈머리포트(CR) 얘기입니다. 이 기관은 거침없는 제품 평가는 물론 문제가 있다면 미국 정부, 의회에 탄원서를 내거나 증언에 나서는 역할까지 도맡아하다보니 기업들에게 여간 불편한 곳이 아닙니다. 최근까지 테슬라는 컨슈머리포트로부터 자율주행 안정성을 지적받아 미 도로교통안전국의 조사 대상이 됐고, 2010년 도요타는 SUV 차량의 전복 위험을 지적받아 리콜에 나서기도 했다.

22일(현지시간) 뉴욕 본사를 개방하고 이러한 제품 테스트 과정을 언론에 공개한 마르타 텔라도 컨슈머리포트 최고경영자는 "제품 리뷰와 평가는 이제 시장에서 보편화되어 어디에서나 무료로 얻을 수 있다"면서도 "저희와 같은 기관은 그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차별성, 공정성,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뉴욕 용커스에 자리한 컨슈머리포트는 1936년 첫 흑백 잡지로 우유 품평부터 시작했습니다. 같은 품질인데 더 비싼 가격의 우유 제품을 골라내는 보고서로 첫 보고서가 4천부 이상 팔렸고 이후 품목을 늘려 디지털, AI 시대가 된 지금까지 88년째 온갖 제품을 다루는 보고서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긴 생존력을 유지한 비결은, 설립 이후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광고를 받거나 무료 샘플을 통한 테스트를 일절 받지 않은 것에 있죠. 비영리기관이지만 외부 기부와 개인 자격의 600만 명이 낸 소액의 구독료를 더해 지난해 2억 3,500만 달러의 수익을 확보했는데, 이 가운데 3천만 달러(약 410억 원)은 시험용 제품 구매에 사용했고, 나머지는 수백만 명의 소비자에 대한 시장 분석, 650명이 넘는 엔지니어 등 직원 관리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컨슈머리포트는 미국 자동차 딜러들로부터 평가용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비밀리에 매년 200만 달러, 약 50여 대의 승용차와 트럭을 구매해 시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이 휩쓴 휴대전화,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주된 시험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만, 최근들어 단일 구매가격이 높고 기술변화가 빠른 전기차, 하이브리드차량 리뷰 수요가 중심을 이룹니다.

컨슈머리포트가 이날 테스트 과정을 공개한 렉서스 RX450 2024년형은 미국 현지 가격으로 약 6만 5천 달러, 우리 돈 8,900만 달러의 가격으로 컨슈머리포트가 직접 구매해 주행, 안전 테스트에 사용하는 차량입니다. 이렇게 구매한 차량은 327에이커, 약 40만 평에 달하는 코네티컷주 콜체스터의 최첨단 시험주행 설비에서 최첨단 편의 장비뿐 아니라 보행자 추돌 위험, 카시트 설치 시 안전 위험 등을 전문 엔지니어가 평가해 보고서로 작성합니다. 제이크 피셔 자동차 시험책임자에 따르면 이러한 평가로 전세계 자동차에 충돌방지 시스템, 안전벨트, 카시트 등을 안전 문제 개선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목적에서 차량뿐만 아니라 미국 일반 주택 관리에 필수인 잔디깎는 기계의 성능 시험을 위해 축구장 크기의 면적을 직접 관리하기도 하고, 러닝머신(트레드밀)의 내구도를 위해 사람의 발을 흉내낸 기계를 직접 개발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죠. 심지어 접고 펴는 간이 러닝머신은 수십 종을 모두 구입해 달릴 때 발이 닿는 면적, 자세, 기울기 등 운동 중에 발생할 부상 위험을 연구원들이 수치화하는가 하면 충전 케이블의 단선 여부나 자전거 헬멧의 충돌시 부상 위험 등에 대해 수시로 시험을 진행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공신력을 얻은 평점과 평가를 보기 위해 매달 1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컨슈머리포트 페이지를 방문하고 있죠.

물론 수십년 간 견고한 위치를 지켜온 컨슈머리포트도 고민은 있습니다. 생성형AI의 등장과 소프트웨어 기술의 눈부신 속도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죠.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는 생성형AI 개발 경쟁 속에 이른바 환각으로 인한 잘못된 정보의 제공, 이용자를 오도 위험을 막을 객관적인 평가가 현재로서는 없기에 소비자에게 제공할 기준을 만드는 것부터 큰 숙제입니다. 마르타 텔라도 최고경영자는 "매우 설득력있는 정보를 전달하도록 훈련되어 있지만 공정성과 편견은 따져야할 문제"라며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의 확보하고 구현하는 과정을 단 몇 곳의 기술기업이 정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우리 개인이 가진 정보는 서로 매우 다르지만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한다"며 "소비자의 목소리와 권리를 키우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어 평가하고 교류할 기회를 늘려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비영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공익사업을 위한 기관은 아닌 곳입니다. 소비자의 신뢰,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살아남는 기관이라는 걸 수십년째 터득하고 있는 곳이죠. 아쉽게도 한국에서 따라하려 했지만 이곳처럼 대량의 제품을 이렇게 평가하고 쉽게 비교 공유할만한 곳은 여전히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름난 인플루언서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하기도 하죠. 이름만 흉내내지 않고 진짜 소비자 기준에서 평가하는 컨슈머리포트,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뉴욕=김종학 특파원)
김종학기자 jh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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