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복지 깨고 여성들의 자주적인 삶을 지원합니다

이주현 2024. 5.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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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복지사업 운영 단체, 사회복지법인 윙 최정은 대표

[이주현]

지난 1분기에 서울시 은평구 소재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사회복지법인 윙 최정은 대표의 북토크 강연이 있었다. 사회복지법인 윙은 성매매 여성 지원, 여성 직업 교육 지원 등 여성 복지 사업을 중점적으로 운영해온 단체이다.

법인 설립 70주년을 맞아 최정은 대표는 그동안의 사업 발자취를 담은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를 편찬했다. 최정은 대표는 기존의 복지프레임을 깨고 여성들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어떤 노력을 했을까? 사회복지법인 윙의 발자취를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 사회복지법인 윙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회복지법인 윙은 1953년에 '은성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회복지 단체입니다. 당시 전쟁 직후에 남겨진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위한 모자 복지 사업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하고, 어머니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60~70년대부터 여성 복지 사업을 주로 했습니다. 산업화 시기부터 서울로 상경한 여성들 중 향락 사업에 빠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원룸이나 숙소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경한 여성분들이 숙식 제공하는 데를 찾다가 향락 산업에 빠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여성들을 위해 주거를 제공하고 직업 기술을 가르치고 교육을 시켜 취업을 알선하는 직업 보조 사업을 주로 했습니다. 현재도 여성 자활을 중점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윙 최정은 대표가 윙의 전신, 은성원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
 
- 윙이 운영했던 대표적인 여성 복지 사업을 뽑으신다면?

"'상도동 우리집'을 대표적인 복지 사업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도동 우리집은 서울주택도시공사로부터 주택을 빌려 운영했던 셰어하우스입니다. 전국의 쉼터에 있는 여성분들 중 나만의 집/방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입주자를 받았습니다.

상도동 우리집에서는 두 가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임대료 제날짜에 내기, 두 번째는 반상회에 월 1회 참석하기였습니다.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 직원분들과 센터 친구들이 옥신각신했습니다.

센터 친구들이 월세를 잘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당 사회복지 선생님께 월세를 제날짜에 받아오도록 시켰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사회복지 일을 하지 못하고 월세를 걷느라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에요. 친구들이 밖에서 월세조차 잘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선생님을 격려했습니다.

또, 반상회도 모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들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년에 반성회를 세 번 이상 빠지면 재계약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센터 친구들이 오도록 음식을 하고, 안마도 해주고… 다양한 유인책을 썼습니다.
저희가 제날짜에 월세를 받기까지 정말 딱 1년이 걸렸어요. 1년 만에 처음으로 센터 친구들이 월세를 제날짜에 낸 순간, 담당 선생님이 소리 지르며 기뻐하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셰어하우스 상도동우리집 (사진 ? 사회복지법인 윙, https://wing.or.kr/recordpg-2/)
ⓒ 사회복지법인 윙
 
- 윙은 다른 사회복지 기관들과 다르게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사회복지 용어들을 폐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저희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복지라는 기능에 매몰돼서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우리가 물건이에요? 케이스라 그러게?"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 사회복지사 1명당 5케이스씩 여성을 맡아서 상담을 하다 보니 저희들도 그냥 이렇게 관성적으로 "걔는 내 케이스야", "그 친구는 내 케이스야"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쉼터 친구들은 "우리가 관리당하고 있다"라고 얘기해서 저희는 너무 놀라며 현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든 권위적인 사회복지 용어들을 다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관리라는 말은 금지어고요. 사례라는 말도 안 쓰고 저희는 '비전 토크'라고 바꿔서 말합니다.

당시 용어들을 바꾸고 마당에서 비전 선포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윙이라고 막 풍선을 띄우고 하나 하나하나 그런 옛날에 쓰던 용어들을 폐기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이 된 친구들도 그 짜릿했던 기억들을 아직도 기억하더라고요.
저희는 복지라는 기능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런 것들을 굉장히 고민하고 복지에 매몰되지 않는 공동체를 지향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과거 윙 소속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등산을 갔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윙에 인문학자들이 강의를 하러 오셨을 때 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자 분들께서 '신체가 능동이면 정신이 능동이 되고 신체가 수동이면 정신도 수동이 된다. 몸과 정신은 평행하다'라는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을 가르쳐 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센터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해주는 일이 정신과에 데려다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과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는 것까지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체를 능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요가를 하다가, 요가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직원들과 센터 친구들을 데리고 관악산 등산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반발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도 힘들어하고, 센터 친구들도 빠지려 애쓰고… 그래도 건강을 위해 독려하며 등산을 갔습니다. 10년 넘게 등산을 다녔고 지금은 가지 않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윙 소속 직원 및 센터 이용자들이 관악산을 등반하는 모습 (사진 ? 사회복지법인 윙, https://wing.or.kr/recordpg-3/)
ⓒ 사회복지법인 윙
 
- 윙은 밥도 센터 사람들이 직접 스스로 만들어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등산처럼 몸을 능동 상태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마침 취사원분이 그만두신다고 해서 저희가 스스로 밥을 해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주방 매니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을 보고, 식단을 짜고, 당번표를 짰습니다. 센터 직원들 및 친구들이 두 명씩 짝이 되어 음식을 하고, 각자 덜어서 먹고, 자기가 먹은 건 자신이 설거지를 하고 그런 식으로 운영을 했습니다.

의외로 직접 밥을 하는 행위가 센터 친구들에게 성취감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내가 스스로 밥을 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밥상을 차리고, 상대방이 너무나 맛있게 먹고,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해주고, 그때 친구들이 받은 성취감이 결코 작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에게는 일생에서 처음 맛보는 칭찬이고 성취였었던 거예요. '자기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그걸 발견했다'라고 생각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해줄 수 있다는 것,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 직접 밥을 하는 행위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 윙에는 '선물 칠판'이라는 특별한 칠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윙 마당에는 선물 칠판이라는 게 있습니다. 선물 칠판은 자기에게 어떤 기쁜 일이나 의미를 담고 싶은 기념일이 있으면 이름과 스토리를 쓰고 자기 자신이 아닌, 우리 공동체에 선물을 하는 이벤트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선물을 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의외로 센터에는 어렸을 때부터 쭉 복지시설을 경험한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쉼터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냥 받는 것만 익숙해지고, 이런 습관이 이어져 결국 셰어하우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월세를 내지 않는 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셰어하우스에서 월세를 걷을 때 센터 친구들이 "여기 사회복지법인 아니에요?", "사회복지법인이면서 왜 이렇게 돈을 내나요?" 등 비슷한 얘기를 들었을 때 선물 칠판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센터 친구들이 받기만 하고 주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주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물 칠판을 만들고 서로 선물해 주는 문화도 만들며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 대표님의 다각적인 노력들이 인상 깊습니다. 이외에도 어떤 사업들을 진행하셨나요?

"여성들의 자활을 위해서도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했습니다. '신길동 그 가게'라는 카페를 만들어 센터 친구들에게 로스팅도 가르치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카페가 나름 잘 되는 듯해서 '상수동 그 가게' 카페도 만들었고요. 카페 말고도 환경단체, 여성단체 대상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한때는 피부관리숍도 운영했습니다. 예전에 똑똑한 친구 한 명 있어서 피부관리숍 사장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피부 관리 교육도 잘 받고 피부관리숍 사장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 보였으나, 친구가 '결혼하고 애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투자를 많이 했는데 허탈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업을 할 때 사람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고,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2013년경 사회복지법인 윙의 전경. 1층에는 법인이 운영하는 핸드메이드숍, 신길동 그가게가 입점해있다. (사진 ? 사회복지법인 윙, https://wing.or.kr/recordpg-2/)
ⓒ 사회복지법인 윙
-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제가 책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을 쓴 후, '복지의 끝은 어디인가요?'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할까요? 집이 필요하면 집을 제공하고, 일이 필요하면 일자리를 제공하면 끝일까요? 그 다음에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복지에서 달라질 수 있으면 좀 다른 길을 걷고 싶습니다.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을 주려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서로 도와가는 관계, 청소년-성인/여성-남성/지식인-비지식인 이런 구분을 다 없애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걸 상상하면서 또 숙제를 가득 안고 있습니다. 향후 이런 고민, 숙제를 풀어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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