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잘못된 만남? ‘신세계’는 없었다 [스페셜리포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5. 23. 1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통 공룡’ 신세계그룹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본업 부진으로 현금흐름이 위축된 가운데 이커머스 계열사 SSG닷컴 재무적투자자(FI)에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 상환 압박마저 받고 있다. 수년 전 SSG닷컴은 FI에 총 1조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2024년 상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기업공개(IPO)는 속절없이 미뤄졌고 SSG닷컴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FI 측은 투자금 회수를 압박하고 나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로 그룹 재무 리스크가 가중된 데다 FI에 1조원 회수 압박을 받게 되자 신세계그룹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단 우려가 팽배하다.

주주간계약 5년여 만 부메랑

‘풋옵션’ 달린 자본 → 부채 돌변

지난 2018년 10월 31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신세계그룹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커머스 사업에 국내 최대 규모였던 1조원 투자 유치를 자축하며 당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철주 어피너티 부회장, 윤관 BRV 대표 등은 손을 맞잡았다. 윤관 대표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맏사위다. 어피너티는 홍콩계 사모펀드로 당시 한국을 비롯 동북아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신주인수계약 체결에 앞서 투자 유치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낸 보도자료에선 “2023년 연매출 10조원을 달성해 그룹 핵심 유통 채널로 성장시키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담았다. 자신감에 찬 신세계그룹은 5년 내 SSG닷컴 거래액(GMV)이 5조1600억원을 넘지 못하거나 복수의 증권사에 기업공개(IPO) 가능 의견서를 받지 못하면 1조원을 FI 측에 돌려주기로 주주간계약을 맺었다. FI에 빌린 돈은 형식적으로는 자본이지만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꼬리표가 달려 실질적으로는 상환 의무를 띤 부채 성격이 짙다.

장밋빛 전망에 들떠 체결했던 주주간계약은 불과 5년여 만에 부메랑이 됐다. 이커머스 업황은 신세계 예상과 정반대로 갔다. 공격적인 물류 투자를 앞세운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지배적 사업자로 등극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기업 입지는 갈수록 위축됐다. 검색 기반 플랫폼 네이버마저 커머스로 수평적 다각화에 나섰고 최근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중국계 e커머스)’ 공세까지 매섭다. 5년 전 꿈꿨던 매출 10조원과 상장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SSG닷컴 매출은 1조6784억원, 영업적자는 1030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 안팎에선 투자 유치 당시 주주간계약으로 체결한 풋옵션이 훗날 발목을 잡을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주주간계약에 담긴 풋옵션 행사 요건을 두고 현재 SSG닷컴 대주주인 이마트와 신세계는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과 벼랑 끝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어피너티와 BRV는 SSG닷컴에 2019년 7000억원, 2022년 3000억원 등 총 1조원을 투자해 각각 15%씩 지분을 갖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FI 간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타협점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신세계 측은 SSG닷컴 GMV가 주주간계약 요건을 충족해 풋옵션 부담을 덜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FI 측은 상품권 판매 등 중복 계상 거품을 걷어내면 실질 거래액은 주주간계약 요건에 못 미친다는 주장을 편다. 풋옵션 행사 예정 기간은 지난 5월 1일부터 2027년 4월까지다. 아직 3년이라는 기간이 있어 FI 측이 풋옵션을 즉각 행사하기보단 신세계그룹과 피 말리는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