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일하니 더 적게 받으란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익자 2024. 5. 23. 07: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여성노동자 빈곤의 심화 ③] 식당서 2년 6개월 근무한 순자씨 이야기

[김익자]

2024년 5월 24일은 '여성비정규직 임금차별 타파의 날'이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대비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을 비교하여 1년으로 계산한 날이다. 이날부터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는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2023년 기준,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34.9%에 불과하다. 성별과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큰 임금 차이가 나는 것은 차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이 문제가 차별임을 제기하고 이를 해소할 방안을 요구하려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언제나 최저임금 수준에서 정해진다. 최저임금이 올라야 임금이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가사·돌봄업종에 대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지급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경영계는 지난해 편의점업, 숙박음식점업, 택시운송업에 대해 차등 지급을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시리즈 기사를 통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지급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정부의 행태와 법리 분석, 현장 노동자의 인터뷰로 구성된 본 기사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지급이 얼마나 차별적 문제이며 노동자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말할 것이다. - 기자 말

여성 노동자들이 자랑스럽게 '나의 노동 현장'을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나의 노동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가 여성의 노동을 비하시키고 하찮은 일로 치부하며 사회적 가스라이팅 하기 때문에 피해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발생하지만 당사자는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쉽게 보지만 실상 일터는 그렇지 않다.

자영업을 10년 하다가 폐업하고 식당 시간제 일자리에서 2년 6개월 근무했던 49세 여성 노동자 순자씨(가명)의 일상으로 들어가 보자. 식당 백반집에서 시급 1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인 소개로 일하러 간 순자씨의 노동은 어땠을까?
 
 설거지 노동을 하는 주방노동자
ⓒ Adobe Stock
 
순자씨는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손님들에게 더 친절하게 응대하려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같이 도와주기도 했고, 사장님이 급하게 장 보러 가야 할 때는 자신의 차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면 사장은 순자씨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진상 손님이 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더라고... '물은 셀프'라고 식당 곳곳에 붙어 있는데도 손님이 어른이 밥 먹고 있는데 물도 안 갖다 준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이런 황당한 포인트에서 욕을 먹으니까 순간 멈칫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하더라고. 손님 입장에서 내가 알바인지 사장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런 진상을 만났는데 사장이 날 보호 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순자씨는 처음에는 일이 손에 안 익어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해나갔다. 일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안정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니 사장님은 포스기 운영방법을 알려주었고, 순자씨는 서빙도 병행하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갔었고, 1만 원을 주니까 시급이 되게 많다고 생각 했어요. 일단 최저시급보다 더 받으니까. 몇 백 원이라도 많다고 생각을 했는데 일이 익숙해지고 그 공간에서 내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시급이 너무 싼 거야, 싸게 느껴지는 거야. 그러니까 올려서 받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모든 업무가 마찬가지일 것 같아.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도 그 직군에서 내가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임금은 올려 받아야 될 거 같아."

순자씨는 식당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나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시급이 1만 원으로 고착되자 문제의식이 생겼다. 하지만 임금 이야기를 하기엔 눈치가 보였다.
 
"식당에서는 조금 더 일을 맡기고 업무가 자꾸 중요해져 그런데 급여는 똑같아! 계약서를 썼어야 하나, 생각했고 주위에서는 당당하게, 네 권리니 찾으라고 했지만... 자존심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가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만약에 말을 했다가 상대방이 세게 나오면, 상대방의 거절을 내가 못 받아들일 것 같은... 그래서 두 번 다시 이 사람을 못 보고 여기서 일을 못 할 것 같다는 게 바탕에 깔려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이 자영업자였던 시절이 생각났다고 한다. 순자씨는 사장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냥 내가 참자'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사장이었을 때를 생각하는 거예요. 사장이었을 때 당연히 직원 입장에서는 올려 달라고 말할 수 있고 뱉어볼 수 있다는 거를 알면서도 직원이 뱉으면 내가 사장이었을 때 기분이 조금 그러긴 했었는데 그런 게 있는 거예요."
 
스스로 참자고 다짐해도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노동강도는 약했는가의 질문에 순자씨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강도는 한 사람이 먹어도 한 상이고 두 사람이 먹어도 한 상이니까 '똑같다'고 했다.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3시간 일하고 나면 진이 쏙 빠져 어떤 때는 퇴근하는 것조차 귀찮을 때도 있다고 했다.
 
 식재료 손질을 하는 주방 노동자
ⓒ Adobe Stock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기가 오면 경영계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내세워 업종별 차등적용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순자씨는 사장 입장에서는 임금을 적게 줄 수 있으니 우선 당장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강도가 세다는 말이거든. 진이 쏙 빠져 3시간이니까 하고 있는데 풀로 식당에서 일하면서 겨우 임금 조금 오른 거 받는다? 진짜 자괴감 들 것 같아. 내가 당장 돈이 아쉽고 쓸 데가 있으니까 한다고는 하지만 힘들 것 같아. 내 임금을 싸게 후려치고 있는데, 사장은 자꾸 나를 더 싸게 시키려고 하면 난 자꾸 더 피하고 안 할 것 같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기는 할 것 같은데 절대 사장이 시키는 업무 강도를 하지 않을 것 같아. 사장은 그 돈 주고 왜 너는 일 안 해, 나는 그 돈 받고 일 못 해, 이렇게 돼버리는 거지. 그런데 정부는 몰라. 임금만 깎으면 소상공인이 잘 될 줄 알겠지만 절대 아니거든."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 운영이 어렵기에 최저임금을 적게 책정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손쉬운 선택이다. 상가 임대료나 재료비, 프랜차이즈 가맹비 등은 자영업자가 손댈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임금은 가장 손쉽게 손을 댈 수 있다. 일을 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취업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드는 것이다. 순자씨는 최저임금이 차등적용된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은 저임금으로 일해도 되는 사람이냐고 분노하며 접근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든 작은 사업장이든 간에 일하는 강도나 일자리의 중요성은 나한테는 똑같이 소중한 건데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내 임금이 다르게 책정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그래서 소상공인은 소상공인대로 접근이 달라야 한다고 봐요.
 
나도 경험 해봤지만, 건물 임대료 깎을 수 없고 부자재도 깎을 수 없으니 결국 사람한테 들어가는 돈밖에 깎을 게 없는 거잖아요. 솔직히 소상공인 사장만큼 힘든 게 어디 있어요? 새벽부터 시작해서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게 많잖아요. 그런데 사장인 본인 임금도 못 가져가는데 저 일하는 사람의 임금은 자꾸 올라가면 그 임금 받아가는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한 노동력을 뽑아먹을 생각을 사장도 하겠지요. 그래서 소상공인은 다른 시선으로 접근이 필요해요. 세금 혜택을 주던지 아니면 임대료를 못 올리게 제재를 해준다든지 그래야 돈 나갈 구멍을 사람으로 보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순자씨에게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지,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물었다.
 
"난 똑같을 것 같아! 급여를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적게 받은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필요한 자리에서 사회가 돌아가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내가 일하고 있다는 것, 그런 나의 소중한 노동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네가 하는 서비스 누군가는 하겠지, 너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하는 일자리도 노동자 없이 유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 시기만 오면 외식업체의 사업자들은 인건비 등 영업비용의 폭등으로 경영난에 처한다며 노동자를 감원하고 고용 시간을 단축하여 노동강도를 높인다.
외식업체에서 영업비용은 인건비와 식재료비, 임차료 등 고정비용이 주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건비 증가가 영업 이익의 급감을 가져왔다고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외식업체 업주들도 안다. 그러나 비용 절감 할 수 있는 것은 인건비밖에 없기에 끊임없이 인건비를 절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한가운데에 정부와 사업주의 '노느니 일한다'의 가스라이팅으로 병원을 다니고 보약을 먹어가며 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외식업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타 업종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지급해도 괜찮다는 가당찮은 말은 하지 말자.
 
순자씨 이야기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북여성노동자회 활동가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