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7월 4일 조기 총선 소집…집권당 수낵의 ‘빗속 승부수’

임성빈 2024. 5. 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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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7월 4일 총선을 소집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리시 수낵 총리가 7월 4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14년 동안 집권했던 보수당이 제1야당인 노동당에 지지율 열세를 보이는 가운데 던진 승부수다.

22일(현지시간) 수낵 총리는 7월 4일 선거 소집을 발표했다. 앞서 수낵 총리는 하반기에 선거를 열 것이라고만 밝힌 적이 있고, 10~11월경 선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수낵 총리는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지금이야말로 영국이 미래를 선택하고 우리가 이룬 진전을 바탕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불확실한 원점으로 돌아갈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몇 주 동안 나는 표를 얻기 위해 싸울 것이며, 여러분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며 “내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만이 우리가 힘들게 얻은 경제적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을 여러분에게 증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다음 총선을 내년 1월 28일까지만 치르면 되는데, 그 전에 총리가 총선일을 발표할 수 있다. 수낵 총리는 이날 찰스 3세 국왕과 만나 다음 총선을 위한 의회 해산을 요청했고, 찰스 3세가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지지율 밀리는데 왜


수낵의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에 20%포인트 넘게 뒤지는 상황이다. 노동당은 총선 전초전으로 여겨진 지난 2일 지방선거에서도 보수당에 압승을 거뒀다.

그런데도 수낵 총리가 ‘정치적 도박’에 가까운 조기 총선을 발표한 배경에는 우선 인플레이션이 안정화하는 등 경제 상황이 일부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낵 총리는 연설 직후 X(옛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 경제는 프랑스·독일·미국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는 우리의 계획과 우선순위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며“이것이 내가 선거를 소집한 이유”라고 부연했다.

실제 영국은 지난해 3·4분기 연속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다 올해 1분기 성장 전환했다. 이날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2.3%로 영란은행(BOE)의 목표치인 2%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보수당 일각에서는 앞으로의 정세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수낵 총리의 조기 총선론에 힘을 싣는다. 수낵 총리는 이민자에게 부정적인 보수 유권자를 겨냥해 르완다 난민을 돌려보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르면 선거 전인 6월 말에 첫 비행기를 띄울 수도 있다. 이 계획은 인권 침해와 국제법 충돌 논란 등으로 반대 여론도 존재한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 의원은 앞으로 경제 상황도 악화할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약속해온 감세 정책을 더 추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당 관계자를 인용해 수낵 총리가 올가을까지 기다리는 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에 이르는 상황에서 보수당이 반전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인기가 더 떨어지기 전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뜻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날 수낵 총리는 보수당 정부의 안보 정책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긴장, 이민 증가 등으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을 거론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를 여러분께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이제 문제는 여러분이 가족과 나라에 안전한 미래를 위해 누굴 믿느냐”라고 역설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가 22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총리의 7월 4일 총선 소집 발표 이후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노동당은 보수당이 지난 14년간 경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기업에 안정성을 제공하지 못하며 성장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또 물가가 치솟고 치안이 위험해졌으며 공공 서비스에 위기가 왔다면서 정권 교체론을 펼치고 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수낵 총리의 발표 이후 사전 녹화된 영상을 X에 올려 “보수당 집권 14년을 거쳐 이제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란을 멈추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재건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날 총선일을 발표하기 전 이미 수낵 총리는 노동당 정부에는 안전한 미래가 없다며 연설에 나섰고, 스타머 대표는 선거 공약을 발표하는 등 양당이 사실상 선거전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총선에서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바뀐다면 8년간 6명의 총리가 생기는 것으로, 이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편인 영국에서 183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로이터는 짚었다. 앞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총리 관저 등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의혹인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2022년 9월 불명예 퇴진했고, 후임 리즈 트러스 총리는 감세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금융 시장 혼란이 커지자 2022년 10월 사상 최단 기간인 45일 만에 물러났다. 이후에도 보수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이어지고 있으며,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21~22일 실시한 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21%로 노동당의 46%에 25%포인트 뒤지는 상황이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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