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국사 보살펴준 비둘기들…그 바위에 구멍 수백개 파인 사연 [강해영 트래블]

손민호 2024. 5.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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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영 트래블② 숙박 체험


영암 구림마을은 2200년 묵은 한옥마을이다. 사진은 마을 복판에 들어선 회사정. 구림마을 대동계의 집회장소이자 3ㆍ1 운동 때 만세를 불렀던 현장이다.
강해영은 전남 강진·해남·영암 세 개 고장이 힘을 합한 공동 관광 브랜드다. 이 세 고장의 관광 콘텐트를 소개하는 연재기획이 ‘강해영 트래블’이다. 지난달 강해영 트래블 첫 회에서는 강해영 세 고장의 대표 향토음식을 다뤘고, 오늘은 이들 세 고장의 전통 숙소와 숙박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2000년 묵은 명당 마을에서 잠을 청해도 좋고, 전국 1주일 살기 사업의 모범이 된 농촌 민박에서 남도 밥상을 받아도 좋고, 마을 민박과 체험 활동이 결합한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좋다. 강해영에서의 하룻밤은 단순히 잠만 자는 게 아니다. 남도의 정서와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다. 여기에 푸근한 정과 넉넉한 인심이 더해진다.
김주원 기자

영암 구림마을


드론으로 촬영한 구림마을. 멀리 보이는 산이 호남의 영산 월출산이다. 월출산 정기를 품고 2200년 묵은 구림마을이 들어서 있다.
영암의 상징은 월출산이다. 해발 810.7m로 높지는 않지만, 호남에서 손에 꼽는 명산이다. 기암괴석이 봉우리마다 가득해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도 기운이 느껴진다. 정기 그윽한 월출산 북쪽 자락 아래에 구림마을이 자리한다. 월출산 좋은 기운을 고스란히 품은 천하 명당이다. 마을의 역사는 무려 2200년 전인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먼 옛날 구림마을은 포구였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 바닷길로 4세기 백제의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구림마을 아래에 먼 옛날의 포구 상대포가 복원돼 있다. 벚꽃 피는 봄날이면 해마다 이 일대에서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구림(鳩林)이란 마을 이름은 풍수설의 대가 도선국사(827∼898)와 인연이 있다. 마을 처녀가 몰래 아기를 낳고 숲속 바위에 아기를 버렸는데, 며칠 뒤에 보니 비둘기 떼가 날개로 아기를 덮어 보살피고 있더란다. 그 아기가 커서 도선국사가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비둘기 떼 내려앉은 숲은 비둘기 구(鳩) 자를 써 구림이 됐고, 아기를 내다버린 바위는 훗날 ‘국사암’이 됐다. 마을 이름 구림도 이 바위에서 비롯됐다. 국사암에 흉터 모양 작은 구멍 수백 개가 나 있다. 영암군 곽종철(69)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도선국사 같은 아들을 낳고 싶은 임신부가 바위를 파 간 것이라고 한다.

현재 구림마을에는 600여 가구 1100여 명이 살고 있다. 마을 한옥 중에서 시방 19개 한옥이 민박을 친다. 별난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유서 깊은 마을에서 지내는 하룻밤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다. 영암군청 홈페이지 ‘한옥체험’ 메뉴에 한옥 민박별 이용 정보가 모여 있다.

구림마을의 유래가 내려오는 국사암. 아기였던 도선국사를 비둘기 떼가 품어줬던 곳이라고 한다.

강진 1주일 살기


강진에서 1주일 살기에 참여하면 사진처럼 푸짐한 시골 밥상을 받을 수 있다. 농가에서 1주일 머물면서 농가 밥상을 체험하는 것처럼 푸근한 여행도 없다. 사진 채지형
‘강진에서 1주일 살기’는 강진군이 2000년 6월 시작한 지역 체류형 관광사업이다. 문체부 생활관광 사업의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푸소’라고 불리는 강진군의 농박(농촌민박) 브랜드가 사업의 기초가 된다. 푸소(FUSO)는 ‘Feeling-Up, Stress-Off’의 줄임말로 농박과 농촌체험을 결합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2015년 학생·공무원 단체를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94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 푸소 농가에서 관광객이 1주일간 생활한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밥도 먹는다. 사업 초기에는 하루 두 끼 음식을 제공했으나 지금은 매일 아침은 주고 저녁은 두 번만 준다. 농가에서 농민이 제 텃밭에서 딴 채소와 마을 앞에서 잡아 온 해물로 차린 시골 밥상이 1주일 살기의 메인 콘텐트다. 강진에서 1주일 살기는 시골의 인심을 판다. 올해 1주일 살기 사업에 참여한 농가는 38개다.

강진에서 머무는 동안 지역 체험활동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말이 어려워 지역 체험 활동이지, 강진 관광지 방문과 해양낚시, 청자 빚기, 무료 음반 만들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이다. 대부분 무료고 일부 프로그램은 할인 혜택을 받는다.

조건이 파격적이다. 참가자는 1인 17만원만 내면 된다. 농가는 1인 참가비에 같은 액수인 17만원을 추가로 지원받아, 1주일 살기 부부를 받으면 68만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예산이 한정돼 있어 참가자 수 제한이 있다. 올해는 1000명만 받는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 임석 대표는 “2000년부터 2023년까지 1주일 살기 사업의 직접 경제효과가 23억6430만원”이라고 소개했다.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에서 1주일 살기 신청을 받는다.

강진에서 1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강진 농가의 표식. '푸소'는 강진의 농박 브랜드다.

해남 땅끝마실


해남은 땅끝마실이라는 이름의 생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무선동 한옥민박마을의 한 민박집 모습. 민박 주인이 직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땅끝마실’이라는 이름이 정겹다. ‘땅끝’은 한반도 최남단 해남을 가리키고 ‘마실’은 ‘마을’ 또는 ‘가벼운 나들이’를 뜻한다. 땅끝마실은 해남이 고안한 생활관광 브랜드다. 2021년 시작했고, 현재 해남군의 27개 민박집에서 참여하고 있다.

해남 땅끝마실은 강진 1주일 살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참가자에게 숙박비를 지원하고 지역 체험 프로그램을 권유하는 건 같다. 아침도 공짜로 먹여준다. 대신 지원 방식이 다르다. 해남은 참가자 1인에게 숙박비 명목으로 1박 2만원씩 지원한다. 전체 숙박비는 민박마다 다르다. 강진과 달리 1박2일도 가능하다. 참가 신청은 전남관광플랫폼 ‘JN TOUR’에서만 할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도 민박에서 직접 운영한다. 민박 주인과 함께 요리 체험, 마을 숲길 산책, 고무신 그림 그리기, 고구마 캐기, 바나나농장 체험 같은 가벼운 소일거리를 체험한다. 무료 프로그램도 있고, 최대 3만원을 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대흥사 스님과의 차담이다.

땅끝마실을 운영하는 민박은 해남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히 해남군청과 두륜산도립공원 중간 무선동 한옥민박마을의 한옥민박 여남은 곳이 땅끝마실에 참여한다.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구성된 마을로, 집마다 개성 있게 꾸며 놓아 말 그대로 마실하기에도 좋다. 두륜산도립공원 안에 있는 두륜산관광펜션에서 하룻밤을 잤다. 안주인 최민경(60)씨가 아침에 전복죽을 내고 함께 두륜산을 거닐거나 대흥사를 다녀온다. 최씨는 “우리 집을 찾은 손님이 좋은 추억을 갖고 가면 좋겠다”며 환히 웃었다. 땅끝마실의 킬러 콘텐트도 시골 인심이다.

두륜산도립공원 두륜산관광펜션. 땅끝마실에 참여하는 해남 숙소 중 모범적인 곳으로 추천받았다.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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