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10만개 들어가는 ‘프로브 카드’… 로봇 팔, 쉴 새 없이 조립

조민아 2024. 5. 2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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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기적을 쫓다] ① ‘반도체 검사’ 전문업체 티에스이 공장 르포
반도체·디스플레이 검사 장비 업체 티에스이의 직원이 지난 17일 충남 천안시 소재 티에스이 제3사업장에 있는 프로브 카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프로브 카드는 반도체 성능을 검사하는 핵심 장비다. 천안=이병주 기자


지난 17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의 티에스이 제3사업장 내 제조 공장. 파란 방진복과 헤드캡을 쓴 직원들과 여러 대의 반도체 프로브 카드 생산 기계가 한 눈에 들어왔다. 기계에 장착된 로봇 팔은 쉴 새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기판에 얇은 금색 핀을 꼽고 있었다. 이 기계는 핀을 붙인다는 의미로 업계에선 ‘본더’(Bonder)로 부른다. 핀은 레이저로 열을 가하는 공법으로 촘촘하게 부착된다. 옆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에는 제작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미세 공정이 한창인 이 공장에선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사진 촬영이 제한됐다.

프로브 카드(Probe card)란 반도체 동작을 검사하기 위해 칩과 테스트 장비를 연결하는 장치다. 기판에 장착된 핀이 웨이퍼를 접촉하면서 전기를 보내고, 돌아오는 신호에 따라 불량 칩을 선별해낸다. 반도체 웨이퍼를 칩으로 절단하기 전 프로브 카드가 투입돼 웨이퍼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를 검사한다.

중견 기업 티에스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회사와 해외 유수 업체들에 프로브 카드를 공급하고 있다. 티에스이 3사업장 공장에서는 프로브 카드를, 2사업장 공장에선 인터페이스 보드를 생산하고 있다. 티에스이 3사업장 공장에는 프로브 카드 생산 기계가 수십대 설치돼 있다. 최근 티에스이는 빠른 속도로 핀을 꽂을 수 있는 최신 기계도 들였다. 최신 기계를 점검하던 한 직원은 “기존 기계는 한 대당 하루 평균 5000개 가량의 핀을 꼽을 수 있다면, 이 기계는 1만핀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로브 카드에는 제품에 따라 3~4만개에서 많으면 8~10만개 이상의 핀이 들어간다. 고객사의 제품 납기일을 맞추려면 빠른 제작과 함께 불량품이 없는 게 중요하다. 핀 사이 간격(피치)은 검사하는 반도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고성능 D램용 프로브 카드의 경우 간격이 머리카락 두께보다 좁기도 하다. 핀의 두께 역시 반도체 종류에 따라 다르다. 검사 대상인 반도체의 회로가 복잡하고 미세할수록 핀도 얇아진다.

공장 내 직원들은 기계 앞에 앉아 핀이 잘 꽂히는지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었다. 제작 과정에서 핀이 튀거나 불량 핀이 생겼을 때 제거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24시간 교대 근무를 한다. 최근 프로브 카드 수요가 늘면서 티에스이 공장은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반도체발 훈풍은 프로브 카드 등 장비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티에스이는 올해 연말까지 HBM용 프로브 카드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D램 등 메모리반도체 프로브 카드의 수요가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D램과 인터페이스를 적층한 HBM처럼 HBM용 프로브 카드 개발에도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공장에는 테스트 소켓 부품을 3차원으로 측정하는 공간도 있었다. 한 직원은 측정을 위해 소켓 부품의 가장자리에 나사를 박는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테스트 소켓이란 반도체 후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전기적, 열적 테스트에 쓰이는 부품이다.

3사업장과 차로 15분 거리의 티에스이 2사업장 입구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개발한 STO-ML(Spacetransformer organic-multi layer)이 전시돼 있었다. 티에스이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STO-ML’ 양산을 위한 개발에 성공했다. STO-ML은 초고속 반도체 검사용인 버티컬 프로브 카드 등에 들어가는 기판이다. 이전에는 일본, 대만 업체만 만들 수 있던 부품이다. STO-ML을 해외 업체에서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선 프로브 카드 제작 납기를 맞추는 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개발로 STO-ML이 국산화되면서 티에스이를 포함한 국내 프로브 카드 제조업체들이 납기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티에스이는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업체다. 1994년 설립된 코스닥 상장사다. 티에스이는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테스트 부품인 프로브 카드, 인터페이스 보드, 테스트 소켓 등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기준 매출액 2243억원으로 최대치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1363억원을 기록했다.

“본업 경쟁력이 가장 중요… HBM용 프로브 카드 연내 개발”
김철호 티에스이 대표 인터뷰


"지금 하는 본업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대상으로 한 전기적 검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티에스이 제2사업장에서 만난 김철호(사진) 대표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날 방문한 사업장에는 '열정과 Pride(자부심)'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1994년 설립된 티에스이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과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해외 내로라하는 기업이 티에스이의 주요 고객사다. 해외 매출 비중이 60% 이상이다. 20개국 110여곳에 반도체 검사 장비를 공급한다.

티에스이가 생산하는 인터페이스 보드와 테스트 소캣은 보통 반도체 후공정 단계에 필요한 검사 장비인데, 설립 당시 이미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4년부터는 낸드플래시용 프로브 카드를 개발했다. 프로브 카드는 전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반도체를 검사한다. 최근 주력 사업은 프로브 카드다.

올해 '반도체의 봄'이 다시 오면서 프로브 카드 수요도 늘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D램용을 중심으로 프로브 카드 공급이 증가하고 있고, 낸드플래시용 수요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인공지능(AI), 자율주행 기술이 각광받으면서 반도체 수요가 커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티에스이는 D램용 프로브 카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제품은 고객사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면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당 프로브 카드의 핀 개수는 10만핀 이상이다. 원래 티에스이는 낸드플래시용 프로브 카드가 주력 제품이었지만, AI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D램용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티에스이는 올 연말까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프로브 카드 개발을 목표로 한다. 반도체 칩을 적층한 구조인 HBM은 검사가 여러 번 필요하고, 전용 프로브 카드 구조도 복잡하다. 티에스이는 지금까지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HBM 등 고성능 D램용 프로브 카드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 검사 영역에선 티에스이의 ATS(Array Test System)가 주목받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전기적으로 검사하는 장비다. 김 대표는 “ATS는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고객사에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티에스이의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얻은 게 아니다. 위기에 굴하지 않고 반도체·디스플레이 검사라는 ‘본업’에 집중한 덕분이다. 김 대표에게 회사 성장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출범 직후 닥쳤던 외환위기(IMF) 때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시장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졌고 ‘국내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대만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 세미콘에 갔고, 현지 파트너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대만을 시작으로 해외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2008년부터 미세전자제어기술(MEMS) 공장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한 것도 기술력 확보의 힘이 됐다.

티에스이는 타이거일렉, 메가터치 등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타이거일렉은 검사 장비에 필요한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하고, 메가터치는 반도체 테스트 핀을 제조하는 업체다. 김 대표는 “이들도 결국 본업을 잘하기 위한 계열사”라며 “전기적 검사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천안=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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