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여생을 절약하라는 데카르트의 충고
이루어놓은 것도 없이 나이가 들고 보니 “여태 뭘 하고 살았지” 하며 되뇔 때가 가끔 있다. 되돌아 꼽아보니 남다른 격동기에 그렇게 허둥대며 강산을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았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55~75세가 황금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인생의 고비를 가장 절박하게 고민하며 후대에 교훈을 남긴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사진)가 아닐까 싶다. 데카르트는 프랑스 법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독실한 천주교도였다. 산후에 어머니는 바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천재적인 애늙은이 같은 아들이 싫어 구박이 심했다. 결국 데카르트는 가족과 헤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느 날 데카르트는 네덜란드 부호가 공개적으로 제시한 수학 문제를 풀어 현상금을 탔다. 그 후 아예 네덜란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 본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는 “향후에 내가 풀 수 없는 기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만큼 자부심도 컸다.
1637년에 저술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로 일약 유명 철학자로 떠올랐다. 명성이 높아지자 1649년 스웨덴 초대 여왕 크리스티나가 데카르트를 개인 교사로 초빙했다. 데카르트는 저녁형 인간으로 늦잠 꾸러기였는데, 여왕은 새벽형 인간이어서 수업을 새벽 5시에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죽을 맛이었다.
164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날도 그는 쿨룩거리며 새벽에 왕궁으로 가다가 폐렴에 걸려 이듬해 2월에 54세로 스톡홀름에서 타계했다. 죽음을 예상했는지 『방법서설』 말미에 “나도 이제 여생을 절약해야겠다”고 썼다. 궁핍하지 않고, 건강하고, 자식들이 효자이면 인생에서 83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니 모두들 인생을 절약하며 장수하시기를. 나는 『방법서설』을 너무 늦게 읽어 후회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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