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할아버지가 준 용돈 봉투를 못 버리는 이유

장은예 2024. 5. 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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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시다.

매일 한자공부를 하시고 1시간이 넘는 길도 무조건 걸어 다니는 팔팔한 청춘 할아버지다.

한때는 굳세고 강한 방법으로 나를 지켜주셨던 할아버지였지만, 사실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당신만의 버텨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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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세월 속 손녀인 나는 성장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장은예 기자]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시다. 고지식하고 잔소리 많고 완전 짠돌이에 절약쟁이다. 

할아버지댁 거실에 불이 켜지는 시간은 저녁 5~7시밖에 없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땐 동네에서 가장 싼 3000원짜리 짜장면집에서 먹고, 70대의 나이에 일도 하시면서 간간히 구리 전선을 까는 작업도 부업처럼 하신다. 매일 한자공부를 하시고 1시간이 넘는 길도 무조건 걸어 다니는 팔팔한 청춘 할아버지다. 

그래서 어렸던 나는 할아버지를 조금 무서워했던 것 같다. 바쁘게 입시준비를 하고 나의 청춘을 즐기며 성인이 된 나는 이토록 커졌는데 막상 우리 할아버지는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얼굴에 살이 쏙 빠지고 하얀 머리가 더 많아져 있었다. 자기가 싫지 않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손녀인 내가 성인이 되어 첫 아르바이트를 하다 팔 화상을 입은 날,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파 혼자 눈물을 훔치셨다고 했다. 내가 생신 선물로 오만 원짜리 스킨로션을 드린 날은 뜯어보지도 않은 채로 나를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셨던 적도 있다. 언제 이렇게 훌쩍 다 커버렸냐며 말이다. 

내가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잔소리하며 문자 보내는 기능을 가르쳐드리니 웃으셨다. 그 광경을 본 아빠와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그렇게 잔소리할 수 있는 건 손녀인 너밖에 없을 거라며 놀라기도 하셨다.
 
▲ 용돈봉투 할아버지께 받아 모아둔 용돈봉투이다
ⓒ 장은예
 
나는 왜 그간 우리 할아버지가 강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을까. 

어릴 적 부모님 맞벌이로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살 때, 할아버지는 내가 TV를 보며 떠드는 소리에 시끄럽다고 버럭 하곤 하셨지만, 회사에서 간식으로 나오는 빵을 하루도 먹지 않고 매일밤 내게 가져다주셨다. 그때 어렸던 나는 그게 할아버지의 저녁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느 날인가는, 하교 후 머리가 아프다는 내게 수건을 물에 적셔 몇 시간이고 갈아주시기도 했다. 그 손길을 잊고 있었다. 

내가 20대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는 간식이 생기면 간식 창고에 넣어두셨다가 내가 오면 하나씩 꺼내주신다. 비록 매번 그 창고에서 나오는 것이 땅콩샌드라 내 입맛은 아니었지만, 거절하지 않고 하나둘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이젠 그게 내 입맛이 되었다. 요즘 편의점 같은 곳에는 잘 팔지도 않는데 어디서 그렇게 땅콩샌드를 받아오시는 건지 여전히 정말 의문이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아끼는 할아버지가, 길 가다가도 나를 만나면 지갑에서 족족 돈이 나오는 것이다. 적은 금액이라도 꼭 간식 사 먹고 다니라며 아끼고 아껴 모은 돈을 내게 주신다. 봉투에 용돈을 넣어주실 때 그 봉투엔 항상 'ㅇㅇ아 사랑해'라고 쓰여 있어 나는 지금까지 받은 모든 봉투를 버리지 못했다. 

한때는 굳세고 강한 방법으로 나를 지켜주셨던 할아버지였지만, 사실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당신만의 버텨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면의 여린 마음을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나의 작은 마음을 표현할 때, 그것을 너무나도 큰 행복으로 받는 할아버지의 눈물과 미소가 너무나 소중하고 따뜻하다. 집에서 나는 여전히 무뚝뚝한 딸이고, 애정표현에 서툰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는, 천천히라도 내 사랑을 마음껏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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