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34만원' 8층 여자는 더 번다…달콤살벌한 쇼, 정체가 뭐야

어환희 2024. 5. 22. 16: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더 에이트 쇼'는 8명의 인물이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이 쇼에서 필요한 것은 당신이 버리려고 했던 시간 뿐입니다.’
지긋지긋한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강 다리에서 투신을 결심한 진수(류준열)에게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리무진을 타고 도착한 격리된 공간에서 진수는 7명의 또 다른 참가자들과 정체 모를 쇼에 참여하게 된다.
쇼의 규칙은 간단하다. 보내는 시간에 비례해 돈을 번다는 것. 8개의 층 중에서 3층을 고른 진수는 1분에 3만원씩 올라가는 전광판 숫자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더 에이트 쇼’는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여한 8명의 이야기다. 영화 '관상'(2013), ‘더 킹’(2017), ‘비상선언’(2022)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드라마 데뷔작으로,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해 만들었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국내 톱10 시리즈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더 에이트 쇼' 중 참가자 8명은 각기 다른 층에 머무는데, 고층일수록 시간당 쌓이는 액수나 방의 크기는 달라진다. 사진 넷플릭스

자본주의 계급 겨냥한 블랙 코미디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상황에서 ‘더 에이트 쇼’의 흥미로운 지점은 층별로 나뉜 불평등한 조건이다. 높은 층일수록 시간당 쌓이는 액수나 방의 크기가 커진다.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 감독은 “(층의) 숫자는 계급을 상징한다”면서 “'인간은 비교하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원작의 메시지가 중요한 핵심이었다. 남보다 더 잘 살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자본주의가 돌아가고, 계급의 격차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마다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불행은 시작된다. 분당 34만원을 버는 8층에 입주한 여자(천우희)는 낮은 체감 물가에 마음껏 소비하며 식음료 배분 등 권력을 손에 쥔다. 층마다 조건은 다르지만, 8명은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텨서 많은 상금을 받아내겠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이에 다리가 불편한 1층 남자(배성우)는 자신의 방을 쓰레기 창고로 내놓는 등 층수가 낮을수록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더 에이트 쇼’는 기존 서바이벌 장르와 다르다.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느끼는 계급의 현실을 작품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점에서 장르적 재미 역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봤다.

8층에 입주한 여자는 마음껏 소비하며 식음료 배분 등 권력을 손에 쥔다. 사진 넷플릭스
3층을 고른 진수(류준열)은 분당 3만원을 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층별로 불평등한 상황을 알게된 뒤 이내 실망한다. 사진 넷플릭스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상금을 두고 게임에 참여한다는 설정 탓에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감독은 “원작인 ‘머니게임’이 ('오징어 게임'보다) 더 먼저였기 때문에 도덕적인 고민은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극 중 사람이 죽어 나가도 ‘오징어 게임’에서는 죄책감을 악당인 주최 측에 넘기고 쾌감을 즐길 수 있지만, ‘더 에이트 쇼’는 조금만 잔인해도 (심리적 부담감이) 매우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더 에이트 쇼’는 주최 측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가 스스로 주최 측인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시청자가 쾌감 아닌 죄책감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도록 윤리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극 중 주최 측이 시청자인 것처럼 설정했기 때문에 어디까지 재미를 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서 “일례로 ‘8층과 6층(박해준)이 장기 자랑할 때 성관계 하는 장면은 왜 안 보여주냐, 보여줘야 재미있지 않냐’는 의견에 대해선, 그것을 비판하는 작품인데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더 에이트 쇼' 참가자 8명은 주최 측으로부터 시간을 얻기 위해 점차 자극적인 행동을 늘려간다. 사진 넷플릭스

“도파민 중독 시대…사라지는 ‘시네마’ 아쉬워”


10일 오전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The 8 Show(더 에이트 쇼)'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한재림 감독. 연합뉴스

영화감독 출신 답게 영화, 나아가 TV·인터넷 등 매스미디어(대중매체)의 문제점도 녹였다. 매회 초반 짤막하게 나오는 무성 영화 느낌을 살린 연출이 대표적이다. 한 감독은 “우리는 지금 도파민에 중독돼 있지 않나. (대중이) 꾸준히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되면서 ‘시네마’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독의 문제의식은 극 중 주최 측으로부터 시간을 얻기 위해 점차 자극적인 행동을 늘려가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럼에도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한 감독은 “폭력적인 장면을 봤을 때 쾌감을 느꼈는지 묻고 싶다. 불편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이어 “자극으로 친다면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폭력 장면에 대해) 시청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폭력을 옹호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