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먹방'으로만 기억되기엔 아까운 영화

양형석 2024. 5. 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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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황해>

[양형석 기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배우들이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하고 '먹방'이 유행한 2010년대 이후엔 의식적으로 먹는 장면을 넣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터미널>에서는 톰 행크스가 승객들이 카트 반납 후 두고 가는 동전을 모아 햄버거를 사 먹는 장면이 관객들의 침샘을 자극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아예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게 주요소재인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한국영화 최고의 '먹방본좌'는 역시 배우 하정우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중국음식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입에서 한 차례 '가글'을 하고 목으로 넘기는 먹방이 크게 화제가 됐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서는 입맛이 없어야 할 표종성이 너무 맛있게 먹는다는 이유로 하정우의 먹방 장면이 '통편집'을 당하기도 했다(하정우의 먹방은 <베를린>이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특별영상으로 공개됐다).

하지만 역시 하정우가 본격적으로 '먹방 연기의 신'으로 불리게 된 작품은 따로 있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시지를 먹는 장면이 편의점 세트메뉴로 탄생했고 김을 먹는 장면은 인기 개그프로그램을 포함해 여러 예능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미 있게 기억되는 하정우의 먹방 장면과 달리 이 영화는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고 음침하기까지 하다. 바로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황해>다.

한국영화에서도 익숙해지고 있는 '감독판'
 
 <황해>는 가족과 연인관객들이 집중되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개봉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 (주)쇼박스
 
영화는 촬영이 모두 끝나면 편집과 CG 등 필요한 후반작업을 마친 후 관객들을 만난다. 하지만 관객들이 만족스럽게 감상한 영화도 작품을 만든 감독의 눈에는 아쉽고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따라서 흥행에 성공하거나 화제가 된 몇몇 영화들의 경우엔 새롭게 편집한 '감독판'이 새로 개봉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할리우드 몇몇 스타 감독들의 전유물이었던 감독판은 최근 한국영화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배우 정우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이성한 감독의 <바람>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 실업계 고등학교를 코믹하고도 리얼하게 표현해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바람>은 2009년 12월 일반판에서 삭제된 장면들과 내레이션이 추가된 감독판이 개봉했는데 많은 욕설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일반판과 달리 감독판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2008년 <과속스캔들>로 박보영이라는 걸출한 신인배우를 배출했던 강형철 감독은 2011년 두 번째 장편영화 <써니>에서도 심은경과 천우희, 강소라, 박진주 등 뛰어난 여성배우들을 대거 배출했다. 736만 관객을 동원한 <써니>는 같은 해 7월 나미(심은경 분)의 오빠를 비롯한 몇몇 삭제 장면들이 추가된 감독판이 개봉했다. 감독판에서 등급이 낮아졌던 <바람>과 달리 15세관람가였던 <써니>는 감독판에서 청소년 관람불가가 됐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판 영화는 2015년에 개봉한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다. 2015년 11월에 개봉한 일반판 역시 2시간 10분으로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니었지만 2015년의 마지막날에 개봉한 감독판은 무려 3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했다. 하지만 <내부자들>의 인기가 한창 뜨겁던 시기에 개봉한 감독판은 무려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감독판 영화들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 <한산: 용의 출현>은 2022년 7월에 개봉해 726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해 여름 대작영화들 중 최초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세운 <명량>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해 11월 20분의 분량을 추가해 개봉한 <한산 리덕스>는 2만 관객을 채 모으지 못하며 시리즈의 흥행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했다.

부진한 흥행에 묻히긴 아까운 영화
 
 김윤석(왼쪽)과 하정우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에 이어 또 한 번 연기호흡을 맞췄다.
ⓒ (주)쇼박스
 
2008년 나홍진 감독이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통해 507만 관객을 동원하자 영화계는 작품성과 흥행감각을 겸비한 천재감독이 등장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에서 연기호흡을 맞췄던 김윤석과 하정우를 다시 캐스팅해 차기작 <황해>를 만들었다. 관객들로서는 본의 아니게 <황해>를 감상하면서 나홍진-김윤석-하정우 콤비의 전작 <추격자>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전직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추격자>의 이야기도 강렬했지만 <황해>는 러닝타임도 길고 묘사도 상당히 잔인하며 영화 분위기도 <추격자>보다 더욱 무거웠다. <황해>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시즌에 극장가로 쏟아지는 젊은 관객들이 즐기기에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헬로우 고스트> <라스트 갓파더> 등과 경쟁한 <황해>는 전국 216만 관객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약 300만)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처럼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고 오히려 '불호'가 더욱 많아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황해>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 못지 않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정우와 김윤석의 처절한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후반 카체이싱 장면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박진감과 속도감을 선사했다. 워낙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기에 나홍진 감독이 조금만 더 관객지향적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하정우가 연기한 김구남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떠난 후 연락이 끊긴 아내를 찾고 아내를 한국으로 보내면서 진 빚을 갚기 위해 한국으로 밀입국했다. 김구남은 <베를린>의 표종성처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인물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초인적인 생존력을 여러 차례 발휘했다. 특히 충북 보은에서 경찰의 추격을 피해 한겨울에 산 속으로만 이동해 울산 울주군의 바닷가 횟집을 찾아 감자 먹방을 하는 장면은 놀라울 지경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감독판으로 새롭게 편집되면 삭제장면이 포함되면서 러닝타임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황해>는 오히려 156분이었던 일반판의 러닝타임이 감독판에서 140분으로 줄어 들었다. <황해> 감독판은 2011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될 때 처음 공개됐다. 러닝타임이 줄어든 만큼 스토리 이해가 어려워졌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홍진 감독이 새롭게 편집한 버전이 더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훨씬 많았다.  

조성하-곽도원-이엘-이유미-이희준 출연 
 
 <황해>에서 건실한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두목을 연기한 조성하는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주)쇼박스
 
<황해>에서 조성하가 연기한 김태원은 버스회사의 사장으로 아내, 딸과 교회를 다니는 건실한 사업가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내연녀와 불륜을 저지르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다. 하지만 일당백으로 적들을 일망타진하는 면정학(김윤석 분)과 달리 김태원은 두목으로서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한참 떨어진다. <황해>를 통해 명품조연으로 떠오른 조성하는 2013년 <구가의서>와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닌 본명 곽병규로 활동하던 시절의 곽도원은 <황해>에서 베이징 아시안게임 유도 은메달리스트 출신의 체육대 교수 김승현을 연기했다. 김태원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수라는 그럴 듯한 직업 뒤로 밤에 안마시술소와 룸살롱을 운영하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김태원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지만 내연녀와의 문제가 얽히면서 김태원의 살인청부로 집 앞에서 청부업자들에게 습격을 받고 살해 당한다.

김태원이 친한 동생 김승현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바로 자신의 내연녀 주영과 김승현의 관계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주영은 김태원이 김승현에게 원한을 품게 되는 발단을 제공했고 김구남이 한국으로 오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황해> 출연 당시만 해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엘은 2015년 영화 <내부자들>과 2016년 드라마 <도깨비>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가 됐다.

곽도원과 이엘 외에도 <황해>에서 조·단역이었지만 훗날 대중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된 배우들이 꽤 많이 출연했다.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힘쎈여자 강남순> 등에 출연했던 이유미는 김태원의 딸 역할로 교회장면에 잠시 등장했고 이희준은 김구남을 잡으려다 총에 맞는 경찰 역으로 출연했다. 다만 김구남의 아내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생사가 불분명했던 리화자 역의 탁성은은 <황해> 이후 상업영화 출연작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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