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차별도 서러운데..." '65세 조건부 운전면허'에 부글

이혁진 2024. 5. 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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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고속도로 운전 금지 등 차등 관리 담겨... '고령화시대' 간과한 탁상행정 지적

[이혁진 기자]

 노인운전자
ⓒ 픽사베이
    
20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조건부 운전면허제도는 고령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운전 허용범위를 차등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해당 사안 발표 후 논란이 일자 경찰청은 참고자료를 통해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며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또 "조건부 운전면허는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설익은 대책 발표로 인해 야기된 논란을 보고 있자니, 뒷맛이 쓰다. 
    
물론 최근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가 크게 늘었다는 통계 결과가 있으니, 이에 대한 정부의 조건부 면허 검토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건부 면허 필요에 공감하면서도 65세 기준에 대한 의문과 시민들의 이동권이 제한되는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조건부 면허 도입에 앞서 지금의 형식적인 적성검사를 보다 정밀하게 해 운전자의 인지 및 대응능력 등 사고예방 운전능력을 높이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실제 면허 반납률은 2% 내외로 저조해 이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물론 미국, 일본, 독일 등 일부 선진국은 교통사고 감소대책으로 고령자의 조건부 운전면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에 대한 일률적인 도입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 여건에서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일선에서 택시를 운전하거나 생계를 위한 자동차 영업자들도 조건부면허에 시큰둥하다. 70~80대 고령 운전자들조차 대부분 운전을 제한하는 조건부면허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자동차보험을 40년 가까이 취급하고 있는 이아무개(65)씨는 "조건부 운전면허는 교통사고 발생을 줄이겠다는 의도인데 과연 우리 실정에 부합하고 실효한 제도인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이씨가 관리하는 자동차 보험 가입자 태반은 60세 이상 고령자이다. 그는 "고령가입자들은 오랜 운전경험으로 되레 사고가 적은 편"이라 말했다.
     
이는 고령자라도 운전역량과 인지능력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조건부 운전면허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고령자 면허증 반납제도'와 같이 유명무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령자에게 '직업운전직'이 매력적인 이유
    
사실 직업운전직은 고령층이 선호하는 매력 직종이 되어 가고 있다. '정년퇴직'이라는 기준이 있는 일반 직장과 달리, 건강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오래도록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건부 운전면허는 은퇴 이후 운전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나의 고등학교동창인 오아무개(70)는 은퇴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가 개인택시 영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10년째 택시를 운행하는 그는 조건부 운전 이야기를 듣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조건부 운전은 한마디로 운전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에게 족쇄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택시 운전사들의 상당수가 60대 이상 고령자들이며, 이들 중 대부분 60세 언저리에 직업운전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실제 택시기사 10명 중 4명은 65세 이상 고령자라는 조사가 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택시의 경우 종사자 24만 명 중 39.7%에 이르는 9만 5천 명이 65세 이상 고령이다. 문제는 가파른 고령화추세에 고령운전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요식업을 오래 하다 영업난으로 폐업한 김아무개(68)는 60세 넘어 재취업하기 위해 대형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러나 버스취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마을버스 운전직에 도전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스패어기사'로만 고용됐고 결국 그는 마을버스 취업을 포기했다.
     
그러다 7년 전 지인에게 유치원 버스기사 운전 일을 소개받아 인천에서 유치원생 들의 버스 통학을 돕고 있다. 내후년에 70세가 되지만 운전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고령으로 취업에 차별받는 것도 서러운데 여기에 나이 등 제한조건을 추가하면 차라리 운전을 그만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80대 중반의 한 지인은 자가용 운전이 편하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도리어 불편함을 느낀다는 그는 "일부 고령자들의 자동차사고 뉴스를 접하면 겁도 나지만 아직은 운전대를 놓을 수 없다"면서 "운전면허 반납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동네 시장의 한 분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장애를 입었지만 지방에서 토마토를 긴급공수해 자동차에서 팔고 있다. 대중교통이용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운전하는 장애인들도 많은 실정이다. 
     
나 또한 과거처럼 운전을 오래 하거나 자주 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운전하는데 하등 지장이 없다.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승용차를 집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지만, 교통이 불편한 곳에 가야하거나 짐이 많을 경우에는 부득이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다.
     
조건부면허 도입에 대해 누리꾼들의 반응도 뜨겁다. 대부분 비판하는 목소리이다. 100세 시대에 '65세 일률적용'은 안일한 발상이며, 초고령사회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은 초고령사회의 우리 실정을 감안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는 무엇이든 획일적인 적용이 아니라 개인맞춤식으로 세심하게 운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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