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은 우익 손에, 좌익은 좌익 손에 죽었다…해방정국 비극

신복룡 2024. 5.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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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

「 해방정국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입니다. 21세기의 우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나라가 갈리고 전쟁이 터지고 숱한 목숨이 희생된 역사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정치 논쟁도 쉽게 넘겨볼 일이 아닙니다. 중도의 지혜를 찾기 어렵습니다. 역사의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쳐야 할 때입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해방정국의 인물사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냅니다. ‘신복룡의 해방정국 산책’(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25),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이다. 나는 해방정국(1945~50)이란 화두를 잡고 몇십 년을 지냈다. 그 공부가 대단한 고뇌의 결과도, 이념 편들기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고 소박한 소망, 곧 왜 해방정국은 파열했는가에 관한 질문일 뿐이다. 한국 5000년 역사에서 망국과 일제,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과 지금의 암울한 현실 밑바닥에는 분단이라는 업장(카르마)이 깔렸다고 확신한다.

어느덧 나도 현대사를 증언할 나이다. 일제-미군정-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을 겪으면서 네 번 국적(?)이 바뀐 기구한 세대의 상위 200만 명 중 하나로서 이제 기대 수명 82.7세를 지나며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결국 사람이 저지른 업보였다. 격동의 시대에 왜 이념과 체제, 강대국의 입김이 문제 되지 않았을까만, 그건 종속변수였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이 독립변수다. 서로 부대끼며 적대 세력 비난과 체제 수호에 몰두하는 동안 같은 진영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간과했다.


우익 내부 ‘형제의 난’…좌우 대결보다 참혹했다


1945년 12월 1일 한국으로 돌아온 임시정부를 환영하는 행사에서 나란히 앉은 이승만(왼쪽)과 김구. 중앙포토

그 사례 중 하나로, 이승만-김일성의 갈등보다 이승만-김구의 갈등이 역사에 더 치명적이었다. 이를테면, 1925년 임시정부에서 벌어진 이승만 탄핵·파면은 오해에서 빚어졌다. "국제연맹의 위임통치가 일제보다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이승만의 사담(私談)이 “이승만이 미국의 위임통치를 추진한다”고 와전돼 임정이 풍비박산했을 때 한국 보수의 파국이 잉태되었다.

이승만으로서는 억울한 마음에 그때 입은 정치적 상처를 잊지 못했고, 우익 내부의 ‘형제의 난’은 좌·우익 싸움보다 더 치열하고 참혹했다. 방울뱀과 전갈의 싸움보다 더 잔혹한 것이 전갈끼리의 싸움이다. 우익은 우익 손에, 좌익은 좌익 손에 죽었다. 나는 이 점에서 현대사 해석이 남들과 다르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로 갔다면야 이승만과 김구의 애증이 그리 치명적일 것이 없다. 그러나 우파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바에야, 적대 세력과의 관계는 체념하더라도 우익 내부의 단결과 우국심을 공유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행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같은 우익 보수 세력인데, 현재 좌파들이 점유한 김구 진영을 보노라며 어찌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안타까움이 크다.

따라서 지금 이승만·김구를 주축으로 하는 보수주의 우파는 먼저 내부 전열을 정비하고 이념을 정제하면서 좌파와 손절(損絶)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아프게 돌아보며 화해해야 한다. 이 글이 현대사적 관점에서 보수 편향으로 보였다면 그것은 내 진의가 아니다. 나는 다만 좌우 대립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우파마저 분열하고 서로 할퀴는 게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일례로 남한 만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단정파는 매국노였고, 남북 지도자가 만나야 한다는 협상파는 애국자였다는 논리는 합당하지도 않다.

■ 〈제1부〉 이승만과 김구의 만남과 헤어짐

「 [더 알아보기]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①여인과의 만남은 박복했다…출신 다른 이승만·김구 공통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6303

②레닌 금괴가 임정 갈랐다…이승만-김구 ‘결별’ 세 장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987

③좌우 대립의 ‘불편한 진실’…右는 우익, 左는 좌익 죽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731

④가슴 따른 자, 머리 못 이긴다…김구와 이승만 ‘정해진 운명’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924


왜 중도파의 최후는 모두 비극적으로 끝났나

1947년 7월 1일 귀국한 서재필 박사(가운데)를 마중 나온 김규식(왼쪽)과 여운형. 사진 국가기록원

김규식과 여운형을 다루면서 가장 유념한 부분은 왜 이 땅에서 중도파의 최후는 모두 비극적이었는지에 대한 회한이다. 그들도 다른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우국심을 최고 가치로 여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자기 지탱력이 부족했다는 점에 치명적이었다. 고층 건물은 강풍에 견딜 만큼 강력한 구조 만큼이나 그에 적응하는 유연함도 중요하다. 이를 건축학에서는 내풍학(耐風學)이라 한다. 롯데타워나 63빌딩도 미세하게 흔들리며, 광야의 고층 송신탑은 강인한 지탱 케이블이 당기고 있다. 한국의 중도파는 그런 세기(細技)를 갖추지 못했다. 세파에 적당히 흔들리며 살라는 뜻이 아니라 난세에 살아남는 유연함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중도파의 몰락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중도 노선을 허락하기는커녕 용서하지 않은 한국인의 정치 심리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미군정 사령관 존 하지의 푸념에 따르면, 한국인은 그가 겪어본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 담론이 먼저이고 많은 민족이다. 지금도 중앙일간지 1면 머리기사가 정치 논쟁인 나라는 한국 말고 거의 없다. 눈깔사탕을 와작 씹어먹는 심성이 정치에서도 나타나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살한다. 이렇게 중도파를 용서하지 못하는 민중에게도 언젠가는 대중적 회오(悔悟)의 시간이 필요하다.

■ 〈제2부〉여운형과 김규식의 만남과 헤어짐

「 [더 알아보기]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①임정과 밀정, 그리고 여운형…김구 측근은 권총 빼들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524

②“대물 여운형” 점찍은 美군정, 병약남 김규식에 눈 돌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200

③미국은 양다리를 못 참았다, 중도파 고집한 여운형 최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7586

④‘좌우합작’ 허구의 희생자들…중도파, 비극적 해프닝 맞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52


해방정국은 과거 아닌 또 다른 오늘

해방정국은 과거가 아닌 또 다른 오늘이다. 당시 들끓었던 이념대립은 이후 한국인을 옥죄어왔다. 민족의 비극 6·25는 말할 것도 없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논란도 해방정국이 낳은 유복자에 가깝다. 앞으로 중도파의 비극을 보여주는 송진우와 장덕수, 제주 4·3사건과 남북 협상, 박헌영과 김일성의 진실과 허구 등을 다룰 예정이다. 독자들의 열린 마음을 바란다.

신복룡(전 건국대 석좌교수, 정치사)

■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 한국정치(사상)사를 공부한 정치학자. 건국대 교수(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정치사』『전봉준 평전』『한국분단사 연구: 1943~1953』『한국정치사상사』『잘못 배운 한국사』 등을 지었으며, 『군주론』 『한말외국인기록』(전 23권) 『삼국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을 번역했다. 2023년부터 매주 한 차례 중앙일보에 ‘신복룡의 신영웅전’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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