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타지마할과 디올백

전석운 2024. 5. 2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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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서
김 여사 타지마할 관광 옹호
'배우자 외교'라도 한계 넘어
장관 대신 나섰다면 국정농단

민항기 타고 유엔가서 연설한
이희호 여사 선례도 있는데
대통령 전용기로 관광지 간 걸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니

김정숙 여사의 외유 논란 두고
디올백 따지는 건 형평 어긋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과거 인도 방문 논란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외교안보편’이란 부제를 붙인 회고록에서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였다. 그 말에 동의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공직자가 아니다. 배우자는 경호대상이거나 특별감찰관법 적용대상이지 국정에 개입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배우자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따라나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해외 정상들의 배우자와 교류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배우자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가야 할 자리를 대통령 배우자가 차지한다면 국정농단이다. 능력과 자격을 갖춘 배우자라면 대통령 특사라도 할 수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대통령 배우자가 정부 예산을 배정받아 단독으로 대외 활동을 한다면 국회 심사와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한다.

김 여사는 2018년 11월 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대통령없이 인도를 방문했다. 그해 7월 문 전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따라간 지 4개월 만이었다. 당초 인도 정부가 희망한 한국의 고위급 인사는 도종환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것 같다. 김 여사의 가세로 규모가 커진 인도 방문단은 도 장관과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 경호인력 등을 포함해 40여 명으로 불어났고, 비용은 4억원으로 늘어났다. 고대 가야 김수로왕과 결혼한 것으로 전해지는 허황후 기념공원의 기공식 참석을 명분으로 인도를 다시 찾은 김 여사는 대통령 전용기를 탔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한 적이 있지만 대통령 휘장만큼은 가렸다. 그러나 김 여사를 태운 전용기에는 봉황무늬와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휘장이 선명했다.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 봤다면 항공기 계단을 내려오는 김 여사를 한국 대통령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나렌디라 모디 총리와 수시마 스와라지 외교부 장관이 김 여사를 접견했다.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이 더욱 논란을 부른 건 타지마할 관광이다. 타지마할은 17세기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궁전 형식의 묘지다. 순백의 대리석 건물은 규모가 크고 건축미가 빼어나 연 2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타지마할 관광은 사전 공식 일정표에도, 사후 출장 보고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가보지 못한 타지마할에서 찍은 김 여사의 기념사진은 외유성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는 설명은 억지다. 이보다 16년 전인 2002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아동특별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것이 오히려 영부인의 단독 외교에 걸맞은 활동이었다. 이 여사는 당시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미국 뉴욕을 방문했지만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하지 않았다. 반면 관광지를 둘러본 것이 활동의 대부분이었던 인도 방문에서 김 여사가 무슨 외교적 성과를 거뒀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김 여사의 해외 방문 횟수는 역대 어느 대통령 부인보다 많았다. 가는 곳마다 유난히 관광지를 많이 찾아 물의를 빚었다. 임기 말인 2022년 1월 문 전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 때에는 김 여사 혼자 피라미드를 비공개로 방문한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었다.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외유 논란에 비하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는 초라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300만원짜리 디올백을 받는 장면이 몰래카메라에 잡혀 망신을 샀다. 그 일로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배우자 외교가 필요하다’며 김정숙 여사를 적극 두둔하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사단장 부인이 장군 전용 차량을 타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대통령은 당장 사단장의 옷을 벗겼을 것이다. 기업 CEO들도 회사 업무 차량을 함부로 배우자에게 내주지 않는다. 대통령 배우자라고 해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해외 관광지를 버젓이 돌아다니는 일을 용인한다면 납세자와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배우자가 외교를 핑계로 외유를 즐긴다면 어떤 국민이 동의하겠는가.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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