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자문위원이 육아휴직 쓰고 알게 된 사실

홍성민 2024. 5. 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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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연구기관에서 육아휴직 썼더니 실적없다고 연봉 감액... 이의 제기에 '이유 없음' 통지

[홍성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의 핵심과제로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꼽으면서 "우리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인식하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그동안과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 취임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저출산 추세의 반전을 위한 3대 핵심 분야로 주거 및 양육, 일·가정 양립에 주력할 것을 강조하며 "신혼·출산 가구의 주거 부담을 덜고, 양육은 사회공동체 책임이라는 원칙에 따라 '부모 돌봄'에서 '공공 돌봄'으로 전환하는 한편 누구나 필요한 시기에 자유롭게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기간 실적 없어 연봉 감액

필자는 현재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2020년부터 제7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일·생활균형 분과위원, 2023년부터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9월 늦은 나이에 첫아이를 만나게 되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백서 '사람을 잇다 삶을 잇다'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후, 2023년 4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약 9개월 동안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였다.

법제연구원은 국무총리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책연구기관으로, 2024년까지 다른 국책연구기관들과 동일하게 관련 규정에 따라 9개월 이상 육아휴직자를 인사평가에서 제외하고 일률적으로 연봉에 변화가 없는 중간등급을 주어 왔다. 하지만 법제처 고위공무원이었던 현재의 원장은 법제연구원 기관장으로 취임하였던 해인 2023년 12월 육아휴직자의 인사평가에 관한 관련 규정을 노사협의회 협의(육아휴직자의 불리한 처우에 관해서 노측에서는 반대)를 거쳐, 6개월 이상 육아휴직자도 인사평가에 포함하도록 개정하였다.

법제연구원은 개정된 규정에 따라 2023년에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복귀한 필자와 행정직 직원에게 인사평가를 위한 업무수행실적표 제출하도록 지시하였고, 필자와 같은 연구직의 경우 연구보고서 작성, 수탁과제 수행 및 기타 학술활동 등을 업무수행실적으로 제출하여야 하지만, 2023년 4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육아휴직으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빈칸으로 업무수행실적표를 제출하였다.

2024년 2월 말 한국법제연구원은 인사위원회 회의를 통하여 육아휴직자 2명 모두에게 전년도보다 연봉이 감액되는 낮은 인사평가등급을 통지하였고, 필자는 이와 같은 행위가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3항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금지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의 제기와 함께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하였다.

하지만 한국법제연구원은 이와 같은 이의제기에 대하여 '이유 없음'으로 통지하였고,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또한 4월 말경에 "근무평정 관련 규정변경 절차에 하자가 없는 점, 변경된 규정에 의거하여 인사위원회에서 근무평정이 실시되었으나 진정인이 업무수행실적표에 어떠한 내용도 기재하지 않고 제출하여 평정 대상이 부존재한 점 등 육아휴직만을 사유로 불리한 처우를 했다고 볼 명백하고 합리적인 근거 없음"이라 하여 행정종결을 통지하였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 복직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금지한다. 대법원은 '불리한 처우'란 "육아휴직 중 또는 육아휴직을 전후하여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서 육아휴직으로 말미암아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불이익 전반을 의미”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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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보다 사회적 인식 바꾸는 게 더 힘들어

우리나라 대법원은 2022년 6월 30일 선고 2017두76005 판결에서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3항의 '불리한 처우'란 "육아휴직 중 또는 육아휴직을 전후하여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에서 육아휴직으로 말미암아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불이익 전반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사업주는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을 이유로 업무상 또는 경제상의 불이익을 주지 않아야 하고, 복귀 후 맡게 될 업무나 직무가 육아휴직 이전과 현저히 달라짐에 따른 생경함, 두려움 등으로 육아휴직의 신청이나 종료 후 복귀 그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등 근로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육아휴직을 신청·사용함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여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육아휴직 복직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금지한 취지를 설시하였다.

한편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그동안 공직사회에서 육아휴직자에게 암암리에 불리한 처우를 해왔던 관행을 타파하고 파격적인 개선안을 권고하였는데,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고 국책연구기관의 기관장으로 부임한 한국법제연구원장은 이와 같은 국가정책으로 육아휴직 활성화에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퇴보하는 조치를 도입한 것은 육아휴직자에 대한 현재의 사회적 인식을 보여 주는 가늠자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올해 4월 19일에 개최된 일·가정 양립 정책 세미나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가정 양립에 대해 "제도적·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를 유연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직장 문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지난해 4월 17일에는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업장 여건과 불이익 우려에 대해 이번에 근로감독을 집중하고 모성보호 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노동현장이 개선되도록 힘쓰겠다"라고 하면서, "근로자가 법에서 보장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등을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고 출산·육아 지원제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의 행정종결 판단은 노동현장에서 감독기관이 국가정책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필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미력하나마 육아휴직제도의 개선에 힘써왔지만 정작 국가의 정책 및 제도를 개선하는 것보다 사람의 생각 나아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육아휴직을 직접 써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기고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바꾸고 싶고, 바뀌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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