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에 적힌 민심 "흘러야 강이다"

박은영 2024. 5. 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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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22일차] 새롭게 자리잡은 꼬마물떼새 둥지… 무사히 부화하기를

[박은영 기자]

 
무인카메라에 찍힌 오소리 ⓒ 대전충남녹색연합

"아이고, 이거 오소리 엉덩이만 보이네~"

아쉬웠다. 얼마 전 세종보 농성천막 앞 대형현수막 근처로 오소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무인카메라를 설치했다. 며칠이 지나 찍힌 영상을 돌려보니 안타깝게도 지나가는 엉덩이만 보였다. 귀여운 야생의 일상을 이렇듯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건 신기하고 기쁜 일이다.

천막농성장은 야생과 동화되어가고 있다. 천막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지붕에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에는 물떼새들이 천막 지붕 위를 걸어다닌다. 울음소리가 들려 핸드폰 앱으로 찾아보니 검은등할미새다. 올해 태어난 아기들이랑 같이 다니던데, 천막 가장 가까이 오는 활발하고 겁도 없는 녀석들이다.
 
▲ 새로 발견된 물떼새 알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더 은밀한 곳에.
ⓒ 대전충남녹색연합
 
어제는 천막 앞 물길 건너 하중도에서 새로운 꼬마물떼새 둥지도 발견했다. 세 개의 새 생명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둥지의 알은 삵, 오소리, 수달, 까마귀 같은 천적에 의해 사라지기에 눈을 씻고 봐야 존재를 알 수 있다. 이 알들도 무사히 부화했기를 바라지만, 야생은 가차없다. 모래 위에 뒤섞인 너구리, 수달, 왜가리, 물떼새 발자국을 보면 이렇게 뒤섞여 사는 것이 야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삵이 사냥하는 것을 우리가 물떼새 지키겠다고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 만난 이 꼬마들은 무사히 부화하기를 바란다.
근거없는 지장수목 정비공사… 재해예방 효과 없는 포스트 4대강사업
 
▲ 세종보 재가동 공사 중인 굴착기 물길을 내려고 굴착기가 하중도에 들어가 작업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세종시는 지난 2월 '2024년 국가하천(금강) 지장수목 정비공사'를 벌여 세종보 일대의 수목을 베어내고 모래를 준설했다. 2억 5400만 원을 들여, 수목정비 5만㎥ 폐기물 처리 200톤을 계획했고 금강에 중장비가 투입되 수목을 제거하고 모래를 준설했다.

수문 개방 이후 모래와 자갈이 쌓인 세종보 상류는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 흰수마자의 서식지이며,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와 쇠제비갈매기가 번식하는 비오톱으로 변화하고 있다. 통수능력을 저감시키고 재해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모래톱과 수목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강을 막아선 세종보였다. 보를 철거하면 자연스러운 흐름과 하천수위 감소로 세종시의 홍수예방에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에도 실재 재해예방효과는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했다.

더구나 하천 준설과 벌목은 하천법에 따라 하천기본계획이 변경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업이다. 준설, 벌목은 생태계에 충격이 크고 복원이 어렵기에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와 환경부는 흰수마자, 미호종개, 흰목물떼새 등의 야생동물 서식에 대한 보전대책은 마련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포스트 4대강 사업'이다.

홍수위 높이는 하천 시설물… 물정책 정상화가 시급
 
▲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 보철거시민행동에서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환경부는 2024년 예산 중 물 공급 및 수질개선 명목으로 4대강 보 활용 연구 20억 원, 녹조 저감 설비 50억 원을 책정했다. 보 활용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해야 할 정도로 보는 쓸모가 없다. 보를 개방하는 것만으로 녹조를 저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금강 보 개방을 통해 증명됐다.

보를 활용해 가뭄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가뭄을 핑계로 공주보 수문을 닫았어도 금강의 물은 단 1리터도 사용되지 않았다. 강우시 수문을 열어도 고정보와 기타 시설물에 의해 보 상류는 하류보다 수위가 높아진다. 윤석열 환경부는 보 운영을 정상화하겠다고 하지만, '보 운영 정상화'라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들은 4대강 사업 자체가 실효성 없는 대한민국 최악의 비정상 국책 사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보가 아니라 물정책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4대강 16개 보는 홍수 가뭄 등에 예방 대비 효과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강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다. 수년간의 보 개방 모니터링, 국민여론 수렴, 주민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된 보 처리방안을 졸속으로 무효화하고, 정치적 술수로 4대강 사업을 옹호하고 무작정 댐 건설, 하천 준설을 추진하는 환경부야말로 비정상이 분명하다.
 
▲ 담벼락에 쓰인 민심 세종보 앞 다리 담벼락에 쓰인 글
ⓒ 임도훈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자"
 "강은 흘러야 강이다. 막으면 썩는다. 야생동물과 함께 살자. 새, 고라니, 수달, 너구리, 멧돼지."
시장에서 들리는 어린이들의 노래 속에 민심이 담겨 있다고 했다. 위의 글은 세종보 바로 앞 다리 자전거도로길 담벼락에 적힌 민심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 시절 무너져가는 민주주의를 목도하면서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글을 보고 활동가들이 '고라니가 쓰고 갔다'고 우스개를 하기도 했다. 이 담벼락의 소리를 들어야 할 대상은 사실 라이더들이 아니라 환경부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런 소리를 듣지 않아서일 것이다.
 
▲ 금강 변 거니는 고라니 부쩍 마른 모습이 눈에 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강 건너편 멀리 고라니 한 마리가 지나간다. 덩치는 큰데 너무 말랐다. 원래 이 동네 고라니는 윤기가 나고 튼튼하기로 유명한데, 하중도 수목제거작업 이후 먹이가 부족해서인 것은 아닐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생명들의 처지에 무감각해져 가는 인간의 삶이다. 세종보를 개방하고 회복한 금강과 이러한 자연은 돈 주고는 절대 살 수 없다.  

뜨거운 햇빛이 천막 지붕에 꽂힌다. 이제 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며칠 흐리긴 했지만 뜨거운 여름이, 장마가 오기 전에 환경부가 우리의 목소리를, 강의 소리에 귀를 열기 바란다. 우리는 강가에 앉아 돌탑을 쌓는다. 산에만 쌓는 것이 아니라 강가에 자갈로 돌탑을 쌓으며 소원을 빈다. 강이 흐르기를, 이 야생의 삶이 우리의 삶과 멀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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