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 챙기려 꼼수…21대 국회 '철회왕'은 이 의원이었다 [21대 국회 징비록]

심새롬, 전민구 2024. 5.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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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자료실에 서류들이 쌓여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 21대 국회 ‘철회왕’은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의원이 법률안을 발의 또는 제출했다가 거둬들인 경우를 따져보니 윤 의원은 총 13건의 법안을 발의 6일~2주 사이에 철회했다. 같은 당 임오경 의원도 임기 초(2020~2021년) 10건의 법률 개정안을 무더기로 발의했다 철회했다. 21대 국회에선 지금까지 226건의 법률안이 이런 식으로 없던 일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를 전형적인 생색내기용이라고 지적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일 “지난 4년간 자신의 이름 노출에 예민한 의원들이 실적과 성과를 부풀리려고 하다 보니 편법을 쓰는 데 더 무감각해졌다”며 “여야 지도부도 정파적 이익에만 눈이 멀어 꼼수 탈당 등을 ‘작은 흠집’ 정도로 치부해 그릇된 의정 문화를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입법 기능 ‘최악의 끝’으로


저조한 법안 처리율은 21대 국회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20년 5월 30일 개원 후 임기 종료를 9일 앞둔 이날까지 36.59%를 기록해 역대 최악이라던 20대 국회 실적(37.86%)을 밑돌았다. 발의된 법률안 2만5839건 중 1만6385건이 곧 폐기될 운명이다. 16대 국회 당시 10건 중 7건에 육박(69.84%)하던 임기 내 법안 처리율은 20년간 꾸준히 추락해 10건 중 3건 수준에 근접했다.
신재민 기자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자체는 16대 1751건에서 21대 9454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법안 발의 건수는 16대 2507건에서 20대 2만5839건으로 폭증했다. 모수가 늘다보니 처리율이 확 떨어진 것이다. 시민단체 등 외부의 입법 감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의원들이 정량 지표에 집착해 결과적으로 내실 있는 입법은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력 13년차 보좌관은 “‘최하’, ‘꼴찌’ 타이틀로 기사가 나오면 지역구에서도 타격을 입는다”며 “법안의 품질은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발의 건수가 공천 평가 등의 기준으로 여겨지다 보니 자구 몇 개만 바꿔 입법하거나, 공동발의 명단에 임의로 이름을 올려주는 ‘품앗이 입법’이 횡행한다”고 꼬집었다.


‘땡처리’조차 불투명


역대 국회도 여론을 의식해 이른바 '땡처리' 입법을 자주 해왔다. 20대 국회는 2020년 5월 20일 마지막 본회의에서 과거사법과 n번방 방지법 등 주요 법안 130여건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9월 이만희 국민의힘 행안위 간사와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교흥 위원장에게 항의하는 모습. 이날 행안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국정감사 기관증인 출석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다 정회했다.뉴스1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8일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릴 예정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의 재표결을 놓고 여야가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각자 표 계산에 분주한 양당은 여야의 이견이 없는 필수 법안에 대한 막판 협상도 뒷전으로 미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법,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일명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등의 민생 법안이 대표적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관련법 등 굵직한 정책 입법도 21대 국회가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들로 꼽힌다


꼼수·편법…“반복 우려”


저조한 입법실적뿐 아니라 거야가 틀어쥔 입법권과 행정부의 권한 사이에서 툭하면 갈등이 생겼다. 이를 깨기 위한 창조적 꼼수도 여러 번 동원됐다. 문재인 정부 막바지인 2022년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 과정은 국회법을 교묘하게 이용한 ‘꼼수 끝판왕’으로 지목된다.
2022년 4월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두 번째)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검수완박 입법폭주 중단하라'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 김상선 기자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의사진행 지연을 시도하자 민주당은 회기 일정을 짧게 쪼개 이를 무력화하는 ‘살라미 전술’로 대응했다. 법사위 단계에서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형배 의원이 자행한 ‘꼼수 탈당’ 역시 전례 없는 편법으로 평가받았다. 민 의원은 1년 뒤 복당했고, 22대 총선에선 자신의 지역구(광주 광산을)에서 재선했다.

지난해 ‘코인(가상자산) 논란’으로 민주당을 탈당했던 김남국 의원 역시 비례 위성당을 거쳐 지난 2일 민주당에 복당해 ‘꼼수 복당’으로 불렸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 교수는 “21대 국회가 수십 년간 쌓인 관례를 무너뜨리고, 제도를 악용해 만든 예외들은 22대 국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행될 수 있다”며 “이미 상임위원장 독식 시도 등에서 그런 징후가 보인다”고 우려했다.

■ 직회부→강행처리→거부권 6차례 반복…“앞으로의 4년이라고 다를까”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1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관련사항 브리핑을 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토론회가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됐다. 뉴스1


21대 국회에선 유독 국회의 입법권과 정부의 행정권이 충돌하는 사례가 잦았다. 거대 야당 주도로 쟁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이를 무력화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10·29 이태원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시작으로 임기 만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최다 기록이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특별검사법)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거대 야당이 ‘본회의 직회부’ 제도를 남용하면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9개 법안 중 6개 법안(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 방송 3법 개정안)이 직회부된 법안이다.

박경민 기자


본회의 직회부 제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 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자리 잡았다. 국회법 86조 3항에 근거한 직회부는 법사위가 법안이 회부된 날부터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올릴 수 있는 제도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소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20대 국회까지는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다수당일지라도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7년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직회부된 것 정도가 유일한 사례였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극심한 여소야대 국면이 펼쳐진 이후부터 직회부는 ‘거야 입법 치트키’로 활용됐다. 민주당은 2022년 12월 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양곡관리법을 처리하며 처음으로 직회부를 법사위 패싱용으로 활용했다. 이후부터 쟁점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지 6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 회부되는 경우가 이어졌다.

이런 기조는 22대 국회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4·10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18일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된 양곡관리법의 일부 문구를 수정한 뒤 재발의해 직회부했다. 같은 달 23일에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이 야당 주도로 직회부됐다. 국회 소수당인 국민의힘 관계자는 “앞으로의 4년도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책임이 큰 국회 다수당일수록 쟁점 법안 처리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법안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세가 숙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새롬·전민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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