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주차 자전거 피하려다 다쳤다"…학교 80% 이런 난리난 이유
서울 양천구민 이모(49)씨는 지난 3월 한 중학교 앞 인도에 주차된 자전거를 피하려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상처를 입었다. 인도를 가로지르며 마구잡이로 주차된 자전거와 부딪히면서 자전거 여러 대와 함께 쓰러지면서다. 이씨는 “2명 정도 통과할 수 있는 인도였는데 자전거 때문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폭이 더 좁아졌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주민도 “학생들의 통학용 자전거 수십 대가 육교 엘리베이터를 가로막기도 한다. 늘 사고 위험에 놓인 상태”라고 전했다.
학교 앞 인도를 통학용 자전거가 점령한 건 학교 안팎에 자전거 보관소가 없는 탓이다.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전체 자전거 보관소는 1만4591개지만, 초·중·고교 안이나 주변에 설치된 자전거 보관소는 845곳에 그쳤다. 수도권 전체 초·중·고교 4329곳 중 19.5%만 자전거 보관소가 있는 셈이다.
자전거 보관에 문제가 있는 서울·인천 일대 학교 10곳을 돌아보니, 학생과 주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각종 사고에 노출돼 있었다. 지난 16일 자전거 50여대는 인천 구월동의 한 중학교 정문과 과거 이용되던 쪽문 인근을 점령했다. 인근 자전거 보관소는 3년 전 관리 문제로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 A군은 “좁은 통로엔 안전펜스가 있어 자전거를 거치할 수 있지만, 통행에 방해될까 그나마 넓은 통로 쪽에 자전거를 뒀다”고 말했다.
자전거가 겹겹이 붙어 있어 도미노처럼 쓰러질 위험이 크고, 옆 초등학교의 등하교 안전사고도 우려된다는 민원이 학교에 제기됐다. 이 학교 관계자는 “교직원들이 자전거를 최대한 가장자리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보관소가 있더라도 통학용 자전거를 수용할 만큼 공간이 부족한 곳도 많다. 중학교 1곳과 고등학교 2곳이 모여있는 서울 신정3동이 대표적이다. 자전거 보관소에는 7대만 거치가 가능해 지난 17일 이곳엔 자전거 90여대가 안전펜스에 묶여있거나 인도 위에 방치돼 있었다. 서울시 공용자전거 따릉이 다수도 인도 일대를 차지했다.
주차된 자전거가 인도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통행자들은 서로의 길을 비켜주면서 이동해야 했다. 박모(15)군은 “자전거를 학교 내로 들일 수 도 없고, 장기간 자전거 보관소에 방치한 자전거도 있다”며 “자전거로 운동도 하고 학원도 가야 하는 상황이라, 자전거를 인도 위에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전거 보관소 부재는 도난 문제로 이어진다. 자전거를 묶어둘 장소가 없어 자물쇠로 잠그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모(15)군은 “학기 초, 학교 앞에 놓아둔 자전거를 도난당한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자전거 절도는 1만2033건으로 소매치기(278건)의 36배에 달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자전거 도난 피해자 절반 가까이는 청소년”이라며 “학교와 학원 인근에서 도난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들은 내부 자전거 보관소 설치에 난색을 보인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 학교는 아예 자전거 통학 자제를 권고하고, 학생들도 자전거 통학을 포기한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감은 “자전거 통학 시 보호 장비를 꼭 착용하라고 안전교육을 했지만, 지키는 학생은 거의 없다”며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전거 보관소를 설치할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 신정동의 한 중학교 하교 시간을 지켜본 결과, 헬멧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일부는 자전거를 탑승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했다. 학생들은 “안 다친다” “보호 장비가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자전거 파손과 절도에 대한 책임 문제도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관계자는 “교내에 자전거를 보관했다가 파손되면 학교 책임”이라며 “누군가 자전거를 훔쳐간다면, 학교 입장에선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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