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병을 부르고, 약은 약을 부른다

2024. 5. 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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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박사의 젊은 노인 의학 <7>


늙어 가는 모습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노인은 비슷한 연령대보다 천천히 늙어가는 감속 노화, 성공 노화를 겪는다. 만성질환에 시달리지 않고 신체·정신적으로 의존적이지 않으며 활동적인 노인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안에는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리적 내재 역량이 건재하다. 더 구체적으로 항상성을 구성하는 면역력과 신진대사능력,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조절 능력, 원활한 혈액 순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나이에 비해 더 빠르게 늙는다. 이를 ‘가속 노화’라 한다. 가속 노화는 생리적인 내재 역량이 외부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항상성이 깨질 때 급속히 진행된다. 65세가 넘는 생리적 전환 시점에서 가속 노화를 타면 노화는 노쇠에 이른다. 건강 수명이 멈춘, 말 그대로 목숨만 연명하는 불행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노화의 속도를 낮추고 성공적인 노화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40년간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체득한 건강 명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병은 병을 부르고, 약은 약을 부른다!” 말 그대로 병이 다른 병을 부르고, 약이 또 다른 약을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30~40대까지 건강했던 사람이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가장 먼저 수면 부족이 생기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욕구가 커진다. 이렇게 되면 모르는 사이에 체중이 증가하고 혈압이 오른다. 근육량은 점점 빠지며 지방질이 늘면서 인슐린 수용체가 준다. 여기서 더 진행되면 당뇨에 걸리기도 한다.

연쇄 과정은 더 진행될 수 있다. 혈관 상태도 악화되고 부담감이 커지면 혈관벽에 손상이 온다. 피 속에 돌아다니는 당분과 고지혈로 혈관 경색이 오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손발이 저리고 몸이 계속 피곤하며 수면조절도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뇌경색과 심근경색 등이 오기도 한다. 몸의 면역 기능이 급속히 떨어지면 염증이 온몸 곳곳에 퍼진다. 여기서 더 악화되면 우리 몸은 스스로의 방어벽이 급격히 손상돼 암세포 발전을 방어하지 못하는 급속 노화, 가속 노화의 길로 들어선다. 결국 작은 병이 더 큰 병을 부르는 악순환을 겪는 것이다.

약이 약을 부르는 현상도 큰 문제다. 비만은 혈압과 당뇨로 이어지기도 하고 혈관 경색뿐 아니라 온몸 관절의 영양 상태를 손상시킨다. 그 결과 관절염과 같은 정형외과적 질환에 이른다.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됐을까. 비만과 당뇨 우려로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 처음엔 고지혈증 또는 전 당뇨에 대한 치료를 받는다. 적잖은 경우 환자들은 자기 몸에 항상성 유지를 위해 노력하기보단 약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껏 병을 불러들인 문제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다. 비만 환자의 경우 관절 때문에 소염제를 쓴다. 이 소염제는 대부분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라 하여 스테로이드 부작용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소변의 양을 줄이고 몸의 부종을 가져온다. 이로 인해 혈압 당뇨 등이 조금 더 진행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제 환자는 내과뿐 아니라 관절염을 담당하는 여러 과를 다니게 된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의 전신 상태를 통합적으로 보기보단 자기 앞에 놓인 문제만을 해결해 주려고 한다. 그 결과 이 약이 다른 약의 사용을 유도하는 경우가 생긴다.

환자는 처음엔 한 가지 약만 쓰다가 그 약으로 발생한 다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새로운 약을 쓰게 된다. 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다른 과목의 의사는 또 새로운 약을 추가함으로써 ‘처방 연쇄의 부작용’이 생긴다. 그 결과 콩팥과 간의 기능이 약화되면 또 콩팥과 간의 개선제를 먹게 된다. 이는 또 천식과 부종을 일으켜 호흡기와 순환계 약을 추가하게 되기도 한다. 이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는 일은 의사 책임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몫이기도 하다. 환자 본인이 약에 대한 통합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 의사에게 자신이 복용하는 약을 적극 설명하고 처방 약의 부작용과 중복성 여부를 물어야 한다. 필요를 넘는 약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가속 노화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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