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어떤 직업은 불멸의 작품에 들어가는 바람에 인류사에 영원히 박제되는 행운을 얻는데, ‘필경사’가 그렇다. 법률 서류를 깨끗이 옮겨 적는 이 직업은 단순 반복적이고 돈도 적게 받는 사무직이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이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오전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오후에는 안절부절 실수를 저지르다 술을 마시러 가는 ‘터키’는 조증이나 알콜 의존증, 오전 내내 책상 수평이 맞지 않는다고 법석을 피우다가 오후에서야 차분히 일하는 ‘니퍼즈’는 편집 강박증 진단을 받지 않을까. 이 변호사 사무실에 우울증과 무기력증 진단을 받아 마땅한 주인공, ‘바틀비’가 신참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사흘 만에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며 잡무를 거부한다. 잡무뿐 아니라 필사도 거부하고, 심지어 해고도 거부하고, 사무실에서 나가는 것도 거부한다. 마법의 주문처럼 “그렇게 안 하고 싶다”는 말만 점잖게 통보하면서. 고용주인 변호사는 “수동적인 저항만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며 불같이 화를 내지만 속수무책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으나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바틀비식 저항은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지구 최고의 단편 중 하나다. 지구 최고의 장편 중 하나인 『모비딕』의 작가가 썼다는 것을 상기하면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도 멜빌에게는 최상급 작가라는 자의식이 없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라고 부르짖은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나는 감탄했다. 마지막 문장에 느낌표를 두 개나 찍으면서 부르짖다니. 덜 문학적인 대신,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작가는 복수심에 불타는 선장 에이해브나 치유할 수 없는 고독을 지닌 필경사 바틀비와 같은 별나고 경이로운 인간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 풋내기 선원 이스마엘이나 속물 변호사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면 독자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우수 어린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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