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마켓 나우] 상품권 중독 못 벗어나는 유통업체들
이마트가 SSG닷컴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사모펀드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던 것은 2019년이다. 5년이 지나 사모펀드들의 투자회수 시점이 다가왔지만, SSG닷컴의 현재 상황은 당초 예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쿠팡과 네이버의 양강 체제로 정착되나 싶더니 어느새 중국 온라인 쇼핑몰들의 대공습이 이어지며, 존재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사모펀드들과 이마트 사이에 주주간계약서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소식이 최근 큰 주목을 끌고 있다. 2023년 SSG닷컴을 통해 발생한 총거래금액(GMV)이 5조1600억원을 넘었는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SSG닷컴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한 상품권의 판매액’과 ‘그 상품권으로 구매한 물품의 판매액’을 합산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단 GMV라는 개념 자체가 법률적·회계적 용어가 아닌 데다가 온라인 쇼핑몰마다 집계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초부터 불행의 씨앗이 잉태됐던 듯하다. 주주간계약서에 GMV가 명확하게 정의돼 있고, ‘상품권의 판매액은 GMV에서 제외된다’고 명기되어 있다면, 애초에 이런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사모펀드와 유통 업체가 상품권과 관련하여 구설에 오른 것이 이번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0여년 전에는 제화 회사들이 발행한 ‘구두 상품권’이 문제였다. 수백억 원어치 상품권을 발행하면서 이를 부채가 아닌 매출로 인식한 것이 나중에 발견되어, 모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에스콰이어가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일이 있었다.
2019년엔 또 다른 사모펀드가 인수했던 티몬에서 상품권을 통한 이른바 ‘현금깡’이 이슈가 됐다. 당시 티몬은 9.5%라는 파격적인 할인율로 수백억 원대의 상품권을 판매하고, 상품권은 3주 후에 발송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만성적인 적자로 부족해진 현금을 메우기 위해 상품권 판매 금액은 먼저 현금으로 받고, 결제 대금은 한참 뒤에 지급하여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많을 때 발생하는 ‘부(負)의 운전자본(negative working capital)’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상품권은 유통 업체들에 항상 달콤한 유혹이었다. 높은 할인율 등 혜택이 있으면 수요자가 몰려 즉각 현금화할 수 있고, 그 판매 대금은 발행사에 늦게 지급할 수 있으며, 일부 ‘낙전(落錢)’ 수익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번 SSG닷컴의 경우엔 극히 중요한 계약 조항의 달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까지 상품권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향후 유통업 관련 투자에서 또 하나의 경계 사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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