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읽기] 플러팅하는 기계
오픈AI가 지난주 발표한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 ‘GPT-4o’는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큰 충격을 주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해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주고, 종이에 손으로 쓴 수학 문제도 차근차근 설명하며 풀어주는가 하면, 사용자가 입고 있는 옷이 업무와 관련한 발표에 적절한지에 대한 충고까지 해줬다.
하지만 정말 놀라웠던 건 이 모델이 가진 기능, 혹은 능력이 아니라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새 AI는 여성의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사교적인 만남에서 대화 상대에 끌린 듯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서구에서 관심 있는 남녀가 대화에 사용하는 플러팅(flirting) 말투였다. 발표 직후에 영화 ‘그녀(Her·사진)’ 속 AI가 현실에 도래했다는 이야기가 쏟아진 이유가 그거였다.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AI가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너무 뛰어나서 사람들이 굳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될 미래가 너무나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AI가 가진 성격은 고정된 게 아니다. 대화 상대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실제 인간과 대화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모두 제거된 AI가 등장한다면, 그리고 그 AI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지적인 자극을 주고 정서적인 만족감을 준다면 사람보다 기계와 대화하는 것을 선택할 사람들은 많다.
그런 AI를 놔두고 굳이 불완전한 인간,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인간과 대화를 할 사람이 몇이나 남을까? 더 나아가 자기의 기분을 완벽하게 맞춰주고,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받아주는 AI와의 대화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렇게 자라난 세대가 실제의 인간과 소통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AI는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미지의 미래로 밀어가는 중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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