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얼의 이코노믹스] 생산 혁신 통한 성장 어려워…경제난에 해외 원조 간절

2024. 5. 2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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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외교 밀착 꾀하는 북한 경제 속사정은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장
지난 1월 1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지방발전 20×10정책 (이하 20×10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발전 이십승 십 정책’으로 읽는 이 정책은 매년 20개 군을 선정해서 10년 이내에 현대적 산업공장 설립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2024년 1월 26일자) 현재 북한에는 150개가량의 군(郡)이 있으니, 이 정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늦어도 10년 이내에 모든 군에 순차적으로 공장 설립이 시작될 것이고, 전국에 새로 건설된 현대적 산업공장이 가동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정책을 통해 “전국 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계단 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1990년대의 식량 위기가 진정된 뒤 2000년대 초부터 10여년간 성장세를 유지하던 북한 경제는 대북 제재로 인한 무역 중단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봉쇄 등으로 인해 지난 수년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데,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한화 143만원 혹은 1000달러 남짓으로 한국의 3.4% 수준으로 추정된다. 특히 경제 사정은 지방 혹은 농촌 지역이 훨씬 나빠서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소비품을 비롯해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 당과 정부에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토로할 정도다.

「 대북 제재·코로나 봉쇄로 침체
국민 1인당 소득 143만원 수준

열악한 인프라, 인구 이동 통제
평양과 지방의 이중구조 심각

‘규모의 경제’ 도모하기 어려워
군 단위 지역 개발 사업에 박차

지난 14일 북한 수도 평양의 북쪽에 새롭게 만들어진 전위거리의 야간 준공식이 열렸다. 사진은 전위거리의 모습.

주목할 점은 북한 정부가 지방 경제 활성화와 지방 거주 인민의 생활 수준 개선을 위한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정책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모든 지역에 일정한 숫자의 공장을 짓는 형태의 정책을 채택한다는 사실은 북한 관련 정보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의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가 어떤지,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북한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극적으로는 북한 경제가 과연 현재 처한 문제를 극복해 나아갈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군 단위 자립 경제 체제인 북한

북한 경제의 지리적 양상 또는 지역 분포를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정책적 요소가 중요하다. 첫째는 인구의 지리적 이동에 대한 통제다. 북한에서는 국민이 어디서 살지를 정부가 정한다. 즉 거주 이전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통제는 정부가 사회주의적인 계획을 통해 국토의 균형 잡힌 활용과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기반한 것이지만, 정치적 행동 등을 통제해서 사회 안정을 도모한다는 목적도 담고 있다.

박경민 기자

둘째는 평양과 지방 간 격차다. 북한 정부는 평양에 다른 어떤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기반 시설 등을 마련했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만이 이곳에 살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석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평균소득 수준은 약 1000달러 수준인 데 비해, 평양은 이보다 3배나 높은 3000달러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과 지방 간에 이중 구조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셋째는 군(郡) 단위의 자립 경제 체제다. 북한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2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했는데, 핵심은 모든 군이 인구 10만~20만 수준의 규모가 되도록 군의 지리적 경계를 조정한 것이다. 이 조치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국토를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단위의 집합체로 개편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한국전쟁 중에 북한 영토의 대부분을 한국군에게 점령당했던 경험에 비춰 김일성은 각 군이 어떤 위기 상황에도 식량이나 기본 생필품을 스스로 조달해서 생존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행정구역을 개편한 뒤, 각 군이 기본적인 농산품이나 공산품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생산 시설을 설립하는 정책을 기획했다.

박경민 기자

군 공장 건설 사업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정책이다. 북한은 1958년에 각 군에 4~5개씩의 생필품 공장을 건설해 전국적으로 1000여개의 지방 공장을 한 해 동안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다. 1950년대 말에 완료된 농업 부분의 협동조합화와 더불어 이 정책은 각 군이 식량과 기초적인 생필품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단위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유사한 정책을 여러 차례 시행했는데, 20×10정책은 이런 전통적인 정책이 다시 한번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 고려치 않은 비효율적 정책

지난달 16일 판문점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기정동 마을 모습. [뉴시스]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을 보면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이나 방향이 있다. 북한식 지역 경제 정책은 군을 기본단위로 해서 각 군에 유사한 수준으로 생산 시설을 배분함으로써 자급자족 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이 생필품의 원활한 공급이나 지방경제의 낙후성 개선 나아가 국가 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여부다.

간장 공장의 예를 들어 보자. 20×10정책에 따르면 각 군에 소규모 간장 공장이 하나씩 들어서게 되는데, 각 군은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콩을 이용해서 간장을 만든 뒤 자기 군 군민들에게 공급해 소비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자급자족 방식 대신 어떤 지역에 대규모 간장 공장을 만든 뒤, 여기서 만든 간장을 전국에 제공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후자와 비교할 때 20×10정책과 같은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간장을 생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시설이나 기계가 필요한데, 1t의 간장을 생산하는 공장 100개를 짓는 것보다는 100t을 생산하는 공장 하나를 짓는 것이 시설과 기계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생필품 관련 정책은 전통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무시해 왔으며, 심지어는 대규모 공장을 짓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김일성 주석은 1982년 한 회의 석상에서 “가령 평양에서 장을 만들어 산간벽지에까지 가져다주려면 콩을 실어다가 장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실어다 주자니 결국 이중으로 수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 나는 원료를 가지고 직접 현지에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어 그곳 인민들에게 공급하면 이런 수송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군 단위의 분산형 생산 방식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자원과 인력 이동 어려워 성장 제약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공장의 건설은 큰 공장을 설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대규모 설비와 많은 기계를 갖춘 큰 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규모의 경제를 자동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요인이 결합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두 가지는 필수 전제조건이다.

첫째는 자원의 원활한 이동이다. 대규모 간장 공장을 가동하려면 많은 양의 콩이 필요하다. 공장이 설립된 인근 지역의 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국 각지로부터 콩을 실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통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물론 교통망은 생산품을 전국각지로 보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은 도로와 철도 인프라가 매우 낙후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원료 공급이나 상품 배송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제 침체로 교통 인프라의 보수나 건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크다. 하지만 애당초 군 단위 자급체제를 추진하다 보니, 교통망 건설 자체를 도외시한 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노동력이다. 대규모 공장이 작동하려면 양질의 인력이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인구 이동을 통제하는 북한의 지역 정책은 이러한 인력 공급을 저해한다. 정부가 인력을 강제로 재배치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주택·학교 등 여러 가지 제반 시설의 공급이 수반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정부가 계획해서 추진하는 것 나아가 이를 주민의 큰 불만이나 고통 없이 진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해외 원조는 일시적 방편에 불과

북한이 지난 수십 년간 실패를 반복해 왔음에도 또다시 과거와 같은 정책에 20×10정책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추진하는 데에는 이런 말 못할 속사정도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현재와 같은 사회 기반 시설과 사회 통제 체제를 혁신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근대적 경제성장을 제대로 도모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할 수 없다 보니, 주어진 상태에서 도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 그러나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단을 쓸 수밖에 없으리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권 이후 계속 반복됐는데, 20×10정책은 그중 하나인 셈이다.

결국 생산 혁신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울 때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를 무릅쓰고서라도 북한이 최근 중국과 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외교정책에 심혈을 기울이는 근저에는 이러한 경제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해외 원조는 어려움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뿐, 근본적 해결은 가져다주지 않는다. 북한 경제의 앞날이 어두워 보이는 이유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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