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한 아들이 진짜 행복했던 순간, 어른과는 달랐다

오영식 2024. 5. 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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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여행 끝날 때쯤에야 깨달은 교훈... 둘 다 배우는 시간이었구나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오영식 기자]

- 지난 기사 '로마에서 받은 공무원 퇴직문서...9살 아들은 소원을 빌었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아들과 세계여행을 계획한 뒤 처음엔 이런 고민을 했었다.

'나라 몇 곳을 선택해서 여유 있게 여행할까? 아니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걸 보여줄까?'

오래 고민하다 '쉽지 않은 기회니 최대한 많은 곳을 보여주자'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한 도시를 자세하게 파헤치는 여행은, 아들이 나중에 커서 혼자 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 나폴리의 SSC 나폴리 축구장 김민재 선수가 뛰던 축구팀으로, 1980년대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뛴 팀으로 유명하다
ⓒ 오영식
 
그래서 지금껏 짧은 기간 아주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데, 가는 나라마다 왜 이리 보여주고 싶은 곳이 많은지. 항상 여행지 목록에서 어떤 곳을 선택하거나 제외할 때는 아쉬움이 아주 많이 남곤 했다.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나서 그림 같은 경치를 볼 수 있는 쏘렌토와 아말피 해변을 둘러보니, 폼페이란 도시가 눈에 걸렸다. 폼페이의 화산유적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려다가, 아들 표정을 보니 왜인지 시무룩해 보여 대신 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갔다.

화산보다도 놀이기구에 더 관심있는 아들 
  
▲ 쏘렌토 해변 이탈리아 남부 쏘렌토에서 아말피까지는 그림같은 경치가 이어진다
ⓒ 오영식
 
놀이공원 뒤로는 과거 2천 년 전에 폼페이를 삼켜버린 베수비오 화산(Vesuvio Mt.)이 보였다. 아들에게는 아쉬운 대로 놀이기구를 타며 폼페이에 관해 설명해 줬다.

"태풍아, 저 뒤에 높은 산이 베수비오 화산이야. 저 화산이 2천 년 전에 폭발해서 지금 여기가 다 파묻혀서 사람들이 전부 죽었다네?"
"정말? 무섭네.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여기 놀이공원이 있어?"

아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놀이기구에 가 있었다.
 
▲ 폼페이의 놀이공원 놀이공원 뒤로 2천 년 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 오영식
   
그리고 베네치아에서는 물 위에 세워진 건물을 보고 있는 아들에게 설명했다.

"여기가 몇백 년 전에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한 거야."
"우아~ 신기하다. 근데 아빠 여기도 이탈리아지? 그럼 피자 맛있겠다."

사랑의 도시라 불리는 낭만적인 도시 베네치아에서도 아들의 관심은 온통 피자와 젤라토에 가 있었다.
  
▲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들은 베네치아의 대운하와 수상 주택, 성당보다 젤라토를 좋아했다
ⓒ 오영식
 
오스트리아 빈에 와서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란 작품과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 설명해 주었지만, 아들은 지루해했다. 오히려 지나가는 2층 버스와 마차를 보며 환호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내 욕심대로 아들을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Museum)으로 데려갈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싶어서 빈 시내에 있는 놀이공원 프라터(Wiener Prater)로 갔다.
  
▲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알록달록한 지붕이 아름다운 가톨릭 성당으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다
ⓒ 오영식
 
아들은 미술관과 공연을 보러 가는 줄 알고 있다가, 저 멀리 대관람차가 보이자, 입이 귀에 걸린 채 행복해하며 나에게 와락 안겼다. 그렇게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를 끌어당기며 실컷 놀이기구를 탔다. 그러던 아들이 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아빠, 이따 나가기 전에 우리 저거 타 볼까?"
"관람차? 너 고소공포증 있다며? 안 무섭겠어?"
"무서울 거 같긴 한데. 아빠가 고마워서. 나도 용기 내보려고."

평소 아들은 아무리 타자고 설득해도 무섭다며 안 타던 관람차를 먼저 타자고 말했다. 그만큼 아들의 마음은 너그러워져 있었고, 아빠가 타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지 배려하고 있었다.
 
▲ 빈의 놀이공원 '프라터' 뒤로 보이는 대관람차는 1897년에 만들어졌다
ⓒ 오영식
   
야경이 아름다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다.

숙소에 가기 전 먼저 아들과 세체니 온천(Széchenyi Baths and Pool)으로 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아들과 따뜻한 온천에서 실컷 놀려고 했는데 하지 못한 게 아쉬웠던 나는 부다페스트에서만큼은 제일 먼저 온천에 가기로 생각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세체니 온천은 이탈리아의 고급 스파시설과 달리 예약 시간도 사용 시간도 필요 없고 우리나라처럼 입장료만 내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온천이라기보다는 큰 풀장처럼 규모도 크고 잘 되어 있어 아들과 마음껏 물놀이하며 놀았다.

한국에서 챙겨간 구명조끼를 입고 온천 속에서 물놀이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장기간 먼 거리를 여행할 때면 대개 어른들은 많이 들어간 여행 경비를 생각해서라도 이왕 간 김에 평소 보기 힘든 모차르트, 구스타프 클림트 같은 위인들의 작품을 감상하길 원한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야 그나마 덜 아쉬워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들은 겨우 온천 물 안에서 노는 것인데도 마치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내 생각이 틀렸다
  
▲ 부다페스트의 세체니 온천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1913년에 지어진 온천
ⓒ 오영식
 
그동안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아들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에펠탑과 구엘 공원, 콜로세움 앞에서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만 웃었지, 사실 평소에는 젤라토나 피자를 먹을 때 더 행복해했다.

불혹을 넘은 나는 '누가 몰라? 이미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잊고 있었던 중요한 한 가지가 가슴에 와 박혔다. 마치 아들이 내 가슴에 대고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아빠,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사는 것도, 남들보다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 단지 저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그렇다고 항상 아들을 놀게 할 수만은 없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교육은 하되, 스트레스받을 만큼 경쟁으로 내모는 과잉교육은 하지 말자! 대신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잘 만들어 주자고 다짐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1등하고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게 그리 중요한가? 나는 그보다 내 아이가 학교에 있을 때 행복하고,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

여행하며 아들과 많은 걸 보고 배워가자고 생각했지만, 이미 계획단계부터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3만km 넘게 운전하며 여행하는 동안 아빠인 나는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이리저리 살피고 바쁘게 움직였지만, 아들은 항상 나를 바라보면서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저 아이만 배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보면서 나 또한 배우는 시간이었구나. 그걸 여행을 마무리하는 종반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 <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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