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금강 탐사에서 만난 엄마 까투리의 지극한 모성

정수근 2024. 5. 1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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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농성장에서의 하룻밤과 금강 탐사에서 만난 것들... 강은 수많은 생명의 집

[정수근 기자]

 새벽 금강에 여명이 밝아온다. 해가 막 떠오르려 동쪽 하늘이 붉어온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16일 금강의 천막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 날 새벽 금강 탐사에 나섰다. 그 새벽 탐사에서 참으로 많은 금강의 생명을 만났다. 아울러 아름다운 여울목과 그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등등 풍성한 풍광 또한 만났다. 
그 만남 중 단연 으뜸은 엄마 까투리와의 만남이다. 까투리를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평소엔 이렇게 가까이 접근을 절대 허용하지 않은데 이날 까투리는 필자가 다가가도 미동도 않고 정말 죽은 듯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죽은 듯 미동도 않고 새끼들을 품고 있는 엄마 까투리의 위대한 모성을 엿보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보통은 강을 다니다 보면 인기척에 놀란 까투리(암꿩)나 장끼(수꿩)가 갑자기 날아올라 깜짝 놀라기 일쑤였는데 이날 새벽 까투리는 바로 1미터 앞으로 다가가도 정말 꼼짝을 않았다. 어디를 다쳤나 궁금해하며 살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새끼들을 품은 채 지난밤을 난 것인지라 사람이 다가와도 새끼들 때문에 차마 도망가지 못했던 거다. 조금 후 결국은 날았지만 끝까지 새끼들을 지키려는 그 모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편 너무 미안했다. 물론 새끼들은 혼비백산 풀숲으로 숨어들어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권정생 선생의 동화가 생각난다. 숲에 산불이 나 미처 대피로를 찾지 못한 엄마 까투리가 새끼들을 품은 채 화마에 휩쓸려 결국 엄마 까투리는 타 죽고 새끼 꺼벙이들만 엄마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생을 이어간다는 지극한 모성을 그리고 있는 권정생 선생의 <엄마 까투리>라는 동화도 생각나고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은 미안한 마음이 컸고, 강은 이처럼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그들의 서식처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특히 어린 새끼들을 키우는 정말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특히 도심에서는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남은 서식처가 바로 강이란 사실이다.
 
 큰 물길 이외에 습지 행태의 다양한 공간이 만들어져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 금강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하천을 더이상 인간 편의 위주의 개발을 해선 안 되는 이유이자, 특히 야생의 삶터를 완전히 파괴하는 준설공사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금강의 세종보 또한 재가동해서 물을 채우게 해선 절대 안되는 이유인 것이고.

강은 흘러야 하고, 그로 인해 습지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생겨나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게 된다. 금강마저 낙동강의 비극이 되풀이되게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16일 낙동강의 활동가들이 이곳에 와서 금강 농성의 지지와 연대 기자회견을 했다.

모래톱과 자갈밭 사이 풀숲에서 엄마 까투리와 꺼벙이들을 만났다면 자갈밭과 모래톱에선 꼬마물떼새 여러 개체를 만났다. 어디에 알집을 만들어놓고 알을 낳아뒀는지 이날 낯선 이방객을 경계하면서 이른바 유인 행위를 했다.

꼬마물떼새는 모래 위에 만들어놓은 둥지에 뱀과 같은 천적이 다가오면 날개를 늘어뜨리고 마치 다친 것처럼 움직인다. 때로는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절룩거릴 때도 있고, 힘이 없는 듯 보이게 할 때도 있다. 그 천적이 이러한 연기에 속아 알을 포기하고 어미에게 다가가도록 말이다.

일단 천적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꼬마물떼새는 적을 계속 유인하며 알과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어미 새의 이러한 행동은 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생존본능인 것이다.
 
 꼬마물떼새가 유인 행동을 하면서 종종 걸음친 자갈밭. 이곳에 알집이 있거나 부호한 새끼들이 일대에 숨어 있는 거 같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유인 행동을 하고 있는 꼬마물떼새 어미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따라서 어미 새가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주변에 분명 알집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이날 자갈밭과 모래톱을 천천히 살펴봤지만 알집의 새알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마도 꺼벙이들처럼 부화해서 어린 새끼들이 주변에 꼭꼭 숨어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어쨌든 아쉬웠다. 세상 모든 새끼들은 아름답고도 귀엽기 때문에 그 앙증맞은 생명을 다시 만나지 못해서. 그러나 엄마 까투리의 몸속에서 재바르게 풀숲으로 혼비백산 달아나던 그 앙증맞은 꺼벙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것으로 만족한다.

금강 여울목과 금강 일출의 아름다움

이런 생의 질서를 확인한 것도 좋았지만 금강이 힘차게 흘러가는 현장인 넓은 여울목을 만난 것도 잊을 수 없다. 상하류 단차가 있어서 정말 세차게 흘러가는 여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금강의 여울목. 강물이 세차게 흘러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금강의 여울목 ⓒ 정수근

     
또한 그 여울목 바로 위로 떠오는 아침 해를 만난 것도 잊을 수 없다. 검붉은 해가 이글거리며 금강 바로 위로 떠오르는 장관을 만났기 때문이다. 비록 스카이라인은 주변 아파트와 맞물렸지만 강 속에서 본 일출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금강에서 본 일출 ... 아름다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새벽 강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생명들을 만나고 다양한 풍광 속에 함께했다. 이 모든 것이 금강이 흘러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생의 질서이고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강은 흐르면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물길이 있고 그 주변 습지가 있다. 모래톱과 자갈밭이 만들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천숲도 만들어진다.

이처럼 다양한 공간에는 그에 걸맞은 다양한 생명들이 살게 된다. 강이 바로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주된 서식처이자 그들의 집인 까닭이다. 특히 도심 하천은 야생동물들이 인간 개발을 피해서 머무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공간이다. 하천마저 개발되면 야생동물은 갈 곳이 없다. 

따라서 하천을 단순한 물길로 보는 시각은 정말 일차원적인 생각이고 무지의 소치인 것이고, 강은 물과 습지 그리고 그 속에 그야말로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그들의 서식처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강을 보로 막아 세우고 물을 채워버리면 그 속에서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들은 수장되게 되는 것이다.
 
 금강의 모래톱에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이 찍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날 만난 꺼벙이들과 발견은 하지 못했지만 주변에 꼭꼭 숨어있을 꼬마물떼새 새끼들과 이날 역시 만난 여러 마리의 고리니와 삵과 수달과 너구리 등등이 수장되거나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 지난 4월 30일부터 이곳 금강에 천막농성장이 차려진 이유다. 낙동강을 비롯한 전국에서 수많은 활동가와 시민들이 속속 금강의 농성장을 찾는 까닭이다.
 
 금강 지키기 최후의 보루 금강 천막 농성장. 농성징이 있는 한 세종보 담수 절대 못할 것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낙동강이 흐르는 대구서 달려온 필자가 하룻밤을 농성장에서 기꺼이 자고 이렇게 새벽 금강 탐사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낙동강의 비극이 이곳 금강에서 되풀이되게 놔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명천지에 수많은 생명들을 수장시키는 생명 학살 현장을 절대로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들은 탐욕을 버려야 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철거 1순위 세종보와 같이 고물보를, 지난 정부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기어이 일으켜 세워 강물을 막지 않으면 된다.
    
그러니 저 강의 생명들과 연대해서 세종보 재가동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곳 금강 천막 농성장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부디 세종보 재가동을 꼭 막아서 금강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펄펄 흘러 영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낙동강이 흐르는 대구서 온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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