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국민드라마의 추억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4. 5. 1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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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 1958’ 포스터.ⓒMBC

‘수사반장 1958’이 10% 내외의 시청률로 나름 좋은 성적을 거뒀다. 물론 초반에 10%를 넘겨서 그 이상의 상승까지 기대했지만 중반 이후 9%대에 머물면서 아쉬움을 남기긴 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시청률 약세기에 9~10% 정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건 의미 있는 성과다.

전설적인 드라마인 ‘수사반장’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다. ‘수사반장’과 연계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수사반장’ 방영 시점으로 돌아가면 이번 드라마에서 새로 등장한 수사팀 배우들과 과거 수사팀 사이의 불일치 문제로 시청자들이 실망했을 수 있다. ‘수사반장’ 이후 시기를 배경으로 선택하면 수사팀이 너무 연로했다는 문제가 생긴다.

‘수사반장 1958’은 아예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에 수사팀의 젊은 시절을 내세울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이기 때문에 기존 ‘수사반장’과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것에 정당성이 생긴다. 그 젊은 캐릭터들이 차츰 연륜이 더해지며 장차 우리가 익히 하는 그 ‘수사반장’의 수사팀으로 성장해나갔다고 하면 말이 된다.

왜 새로운 ‘수사반장’의 시점이 1950년대인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1950년대 시대설정은 젊은 배우들을 등장시키면서도 기존 ‘수사반장’과 연계성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수사반장 1958’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수사반장’의 후광효과일 것이다. 아직도 ‘수사반장’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많고, 그 작품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워낙 유명한 드라마라서 이름 정도는 아는 국민이 많다. 그런 엄청난 브랜드이기 때문에 ‘수사반장 1958’이 ‘수사반장’ 신작이라고 하자 관심이 몰렸을 것이다.

작품은 공들여 과거 모습을 재현했다. 때로는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과거 묘사에 크게 투자했는데 그것이 옛 추억을 상기시켰다. 이미 ‘수사반장’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과거를 떠올리게 했는데, 작품 속 분위기까지 그 시절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니 더 복고 트렌드와 어울리는 히트작이 되었다.

‘수사반장’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총 880회 방영된 형사물로, 최고 시청률이 70%를 넘은 그야말로 국민 드라마였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저건 음악이 좋아, 음악이”라고 말하며 보던 드라마도 ‘수사반장’이었다. ‘수사반장’ 키즈였던 봉준호 감독은 ‘수사반장’의 악역 담당이었던 변희봉을 ‘살인의 추억’, ‘괴물’ 등에 캐스팅하며 재조명했다.

‘수사반장’은 ‘짜자자자자자잔- 짜자자자자자잔…’하고 울려 퍼지는 류복성 악단의 주제음악도 유명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음악을 얘기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때 어린 시절을 보낸 남성은 대부분 이 음악을 따라해 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나쁜 놈들은 반드시 죗값을 받는 드라마 하나 만들라”는 고위층의 지시로 만들어진 정책 홍보성 프로그램이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드라마가 암울한 사회상을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밝고 희망차고 정의로운 곳으로 묘사돼야만 했다. 그래서 ‘수사반장’ 같은 작품도 기획된 것이다.

처음엔 인기가 없었다. 조기공영 위기까지 맞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놀라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서민의 애환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촌향도의 열풍 속에서 도시 빈민이 대거 형성되고, 그들 중에서 범죄자가 나왔던 시대다. 사연 있는 생계형 범죄자도 많았다. ‘수사반장’은 그런 범죄자들의 사연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최불암이 범죄자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국밥 한 그릇 먹일 때 시청자가 함께 울었다.

범죄자들도 ‘수사반장’에 감화됐는지 실제 출소자들이 출연진들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출연자들이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앞으론 죄 짓지 말고 행상이라도 하라”며 손수레를 사준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서민을 울리는 범죄에 엄히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추격신 촬영 도중에 ‘수사반장’ 출연진들을 보고 진짜 범죄자가 놀라 도망치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워낙 국민적 호응이 크다보니 박정희 대통령 부부도 애청했다고 한다. 하루는 최불암이 청와대 부속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웃음소리와 함께 “나 육영수예요”라고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육 여사는 대통령이 ‘수사반장’을 보며 담배를 따라 피우니 극중에서 담배를 2대만 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박 대통령이 “무슨 쓸데없는 이야길 하느냐. 그만 끊어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최불암은 회고했다. 그 후 극중 흡연 장면이 실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까지 챙겨볼 정도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다. 최불암은 원래 술 좋아하는 한량 성격이었는데,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모범적인 성격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히트작이었지만 1981년에 모방범죄 등을 이유로 치안본부의 자료제공이 끊기고 픽션 위주로 가면서 인기가 하락했다. 민주화 열기로 경찰의 이미지가 부정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일시 폐지됐다가 부활하기도 했지만 결국 1989년에 완전히 끝나면서 추억의 작품이 되었다.

그 브랜드를 이은 ‘수사반장 1958’은 로맨스를 가미한 코믹활극의 느낌으로 ‘수사반장’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과거 ‘수사반장’엔 범죄자를 향한 연민의 시선이 있었지만, 요즘엔 범죄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분위기다. ‘수사반장 1958’은 그런 분위기대로 확실한 악인들을 등장시켰다. 특히 사이코패스 소년범은 완전히 현대적인 설정이다.

한편 과거 ‘수사반장’ 시절엔 절대로 할 수 없었던 권력형 비리를 다루기도 했다. 자유당과 연계된 정치깡패, 군사정권 시절의 비리 등이 묘사된 것이다. 옛 ‘수사반장’의 정취가 약해진 부분은 아쉽지만, 이런 새로운 설정들이 ‘수사반장 1958’의 매력을 형성했다. 과연 시즌제 시대극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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