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은 슬로바키아 총리…유럽이 긴장한 이유 있었다

이현우 2024. 5.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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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친러·반미 공약으로 재집권한 인사
중·동부유럽 대표적인 친러 정치인
우크라 전쟁 상황에 영향줄 지 관심
15일(현지시간)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총격 피습 이후 병원으로 후송되는 모습.[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슬로바키아에서 로베르트 피초 총리에 대한 피습 사건이 발생하며 정정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피초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반대하며 중·동부 유럽의 대표적인 친(親) 푸틴 정치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번 피습사건 이후 피초 총리가 친러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유럽 내 친러 연대를 결성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향후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어 주변 유럽 국가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피습…"범행동기는 정치적 문제"
로베르트 피초 총리에 총격을 가한 직후 체포된 용의자, 유라지 신툴라의 모습.[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피초 총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핸들로바 지역에서 회의를 가진 뒤 지지자들과 만나던 중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발사된 5발의 총알 가운데 3발이 복부에 박혔지만, 수술을 받아 상태가 호전 중이며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전직 보안원이자 시인인 유라지 신툴라라는 71세 노인이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의하면 그는 슬로바키아 작가협회 회원으로 2016년 '폭력반대운동(The Movement Against Violence)'이란 정치단체를 결성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던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는 2022년 4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페이스북에 "이것은 슬라브족 형재애가 아닌 그저 침략일 뿐"이란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는 사건 직후 "피초 총리의 정책에 반대한다"며 이번 피습사건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슬로바키아 대통령 선거에서 피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연정 후보가 승리하면서 범행을 준비했다고 자백했다. 용의자의 아들도 아버지가 피초 총리에게 증오심을 느꼈냐는 질문에 대해 "아버지는 피초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황상 그의 주된 암살기도 동기는 피초 총리의 친러정책에 대한 반발로 좁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툴라가 과거 슬로바키아 내 친러 단체에 가담하기도 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그의 정확한 범행동기와 배후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될 예정이다.

과거 공산당 출신·친푸틴 정치인…우크라 무기지원 반대 공약으로 재집권
지난 1월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왼쪽)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오른쪽)가 공식회담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피초 총리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서도 친러·반미 노선 정치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총선 당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반대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워 재집권에 성공하기도 했다.

피초 총리는 현재 슬로바키아의 집권 여당인 사회민주당(SMER)의 총수로 옛 소련 붕괴 이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가입해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이후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좌파당에서 활동하다가 2005년 기존 민주좌파당 및 사회민주계열 소수정당들을 규합해 현재의 사회민주당을 만들고 당수가 됐다. 그는 2006년부터 2010년, 이후 2012년부터 2018년, 그리고 지난해 10월까지 총 3차례 총리직을 역임하고 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반대 공약이 슬로바키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집권 직후인 지난해 10월26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도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500억유로(약 73조5000억원) 규모 장기 지원 패키지안에 반대입장을 밝혀 친러노선 연대에 나서기도 했다.

친러성향인 페테르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대통령 당선인이 6월 취임 예정으로 슬로바키아의 친러 성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달 7일 펠레그리니 당선인은 대선 결선투표에서 53.1%의 득표를 얻어 당선됐다.

슬로바키아, 친러연대 만드나…전쟁에 영향 끼칠까 우려
지난해 12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모습.[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 중부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슬로바키아의 정정불안이 심화하면서 유럽 전역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친러정책이 확대되고 다른 친러국가들과 연대까지 이뤄지면,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연합(EU) 내에서 현재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함께 피초 총리가 친러 연대, 혹은 동맹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이것은 EU의 대러 제재는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재정지원을 가로막아 러시아를 크게 유리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슬로바키아 내 정정불안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슬로바키아 현지 저널리스트인 안드레이 마티자크는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동구권 붕괴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분열 이후 슬로바키아 내 다양한 정치세력들은 양극화되기 시작했고 정치 폭력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번 암살기도와 같은 폭력행위는 이미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슬로바키아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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