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값 21% 내려도, 평양냉면 1만5000원…그틈 파고든 집냉면
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한 냉면 가게 앞마당에 구불구불한 줄이 이어졌다. 어림잡아 50명이 넘었다. 지난달 2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을지면옥이다. 이 가게는 2년 전 1만3000원이던 물냉면 가격을 1만5000원으로 2000원 올렸다. 영업시간 30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복규(73) 씨는 “냉면값이 비싼 감은 있지만 유명하다고 해 가족들과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은 물냉면 두 그릇과 비빔냉면 한 그릇을 주문해 4만5000원을 지불했다. 곳곳에서는 발길을 돌리는 직장인들도 보였다. 김준철(54)씨는 “면은 아무래도 오후가 되면 배가 고픈 데 1만5000원이면 비싼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며 자리를 떴다.
더운 여름철 한 끼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냉면 가격은 최근 빠르게 오르며 면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만169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923원)에 비해 7% 올랐다.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의 냉면 가격은 조금 더 나간다. 1만4000원(필동면옥)부터 1만5000원(남포면옥·을지면옥·평양면옥), 1만6000원(우래옥·봉피양·을밀대) 선으로 1만5000원이 평균선이다.
일본에서 업무차 한국을 찾은 직장인 김모(59)씨는 “일본에서 ‘샐러리맨의 점심은 동전 하나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500엔, 최대 1000엔을 넘지 않는다”며 “냉면 한 그릇에 1만5000원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초등생 자녀 두 명과 서울 중구 남포면옥을 찾은 배지민(45)씨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해 큰맘 먹고 왔는데 냉면 두 그릇과 갈비탕 두 그릇만 시켜도 6만원이라 다른 메뉴는 더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메밀·한우 양지는 하락세인데
오르는 가격과 반대로 냉면 주요 재료인 메밀 가격과 육수를 내는 소고기 가격은 내림세다.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수입산 메밀 1㎏ 중도매인 판매가격(17일 기준)은 3580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4550원)에 비해 21% 내려 평년(3630원)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육수 맛을 내는 한우 양지의 17일 경매 낙찰 가격은 1㎏당 3만8998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4만418원)보다 4% 내렸다.
원재룟값은 하락세인데 냉면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냉면집에도 사정은 있다. 서울 중구의 유명 냉면 가게 관계자는 “메밀은 일일이 손으로 치대 반죽을 해야 하고 육수도 오랜 시간 끓여내야 하는데 다 사람의 몫”이라며 “직원들 월급도 오르고 공과금도 올랐지만, 올해는 냉면 가격을 올리면 손님들에게 욕먹을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이 가게는 지난해 냉면 가격을 1000원 인상했고, 올해는 여름이 지날 때까지 인상 계획은 없다고 했다.
고물가 틈새로 ‘집냉면’ 시장 노리는 식품업계
이런 가운데 식품업계는 고물가 속 냉면을 찾는 수요를 붙잡기 위해 ‘냉면 간편식’을 속속 내놓고 있다. 풀무원은 이달 신제품으로 회냉면과 칡냉면 간편식을 출시했다. CJ제일제당도 기존 동치미 물냉면의 육수와 면발을 리뉴얼했다. 이 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 간편식 냉면 시장은 3년 전보다 약 16% 커졌다.
아예 ‘가성비’를 내세우는 곳도 있다. 8인분짜리 ‘세숫대야물냉면’을 출시한 GS25다. 냉면 사리만 1.2㎏에 육수와 물을 더하면 총 용량이 3.2㎏에 달하는 초대형 냉면이다. 국산 스테인리스 용기를 구성에 포함해 1만7900원에 판매하는데, 사전예약 시 5000원을 할인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이종혁 GS25 즉석식품 MD는 “최근 외식 물가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가성비, 가용비를 중요시하는 고객에게 세숫대야물냉면이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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