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감 느끼며 돌아본 5.18 묘역, 그들 덕에 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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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승 기자]
오월 망월로의 이팝나무는 벌써 졌다. 제삿밥처럼 소복이 피어오르는 꽃은 먼저 피어 그들 나름의 제를 지냈는지 그날처럼 푸르름만 가득하다. 산언덕과 거리 가로수는 깃발이 되어 바람에 휘날리고 수많은 푸른 잎은 만장의 흰 꽃이 된다.
▲ 오월의 깃발, 잊지 않겠습니다. |
ⓒ 김창승 |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뿌리 없는 부초처럼 마음은 허하다. 5.18 하루 전인 17일, 혼자서 광주 망월동을 찾아갔다.
가지 않으면 몇 날이고, 몇 달이고 후회로운 마음이 들 것 같았기에 먼발치에서라도 오월의 님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나만의 다짐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고 두 손과 마음을 모으고 싶었다.
나처럼 혼자 와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나 동행이 되어 같이 왔던 사람들도 그들의 가슴에 내재된 슬픔과 시시로 흔들렸음을 이곳에 와서 고백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월동 민주 묘역은 모두의 오월이며 기도처인 것이다.
민주의 문에서 마주쳤던 사람들과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나누고 오월 탑으로 갔다. 두 손에 알 하나를 두 손에 조심스레 움켜쥔 모양의 분향탑이 오늘은 따뜻해 보인다. 모자를 벗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추모를 했다.
▲ 5.18민주화 운동 44주년, 당신이 있어 우리의 오월이 있습니다. |
ⓒ 김창승 |
▲ 제 1묘역. 5.19, 5.20... 날이 갈수록 사망자는 늘어난다. |
ⓒ 김창승 |
박금희, 김함오, 김춘화, 양창석, 강해규, 김경희, 문혁, 김영철, 박효선, 최강현, 오대영, 명노근, 이택규ㆍ조아라, 윤한봉… 묘역을 돌며 그들의 묘비 앞에서 명복을 빌었다.
몇 해 전, 이 자리에서 고 강해규의 아들인 강아무개씨를 만났다. 아버지는 시민군이었던 아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계엄군에게 당한 부상으로 인해 돌아가셔서 이곳에 묻혔고, 그 아래 열의 빈자리 봉분 터는 부상으로 신음 중인 고인의 아들이 나중에 묻힐 곳이라고 했다.
▲ 묘역을 밝히는 무궁화. 오월의 영령들도 무궁화꽃이 되었다. |
ⓒ 김창승 |
제2묘역에는 5.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게 진압될 때 최후를 맞이한 동지들이 잠들어있다. 문재학(1964.6.5~1980.5.27), 민병례(1960.5.18~동일 ), 박명규(1961.5.4~동일), 박성용(1963.1.26~동일), 박용준(1956.7.9~동일), 안종필(1964.5.23~동일), 염행렬(1963.11.20~동일), 윤상원(1950.8.19~동일).
출생 연도는 각기 달라도 졸업 연도와 장소는 같다. 염행렬의 묘비 옆에는 명예졸업 증명서가 있었다.
'졸업증명서, 고 염행렬(7기), 631120, 위 사람은 본교의 전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하였지만, 권력과 맞서 용기 있게 저항하고 자신을 희생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본 증서를 수여함. 2020.1.19. 금오공업고등학교장 이형규'.
▲ 명예졸업장 ㅡ고 염행렬, 그는 40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
ⓒ 김창승 |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채 군부독재의 종말을 보지 못하고 산화한 박관현(1953.6.19~1982.10.12)과 5.18항쟁 지도부 대변인으로 활동 중 전남도청에서 장렬히 산화한 윤상원, 그와 사후 결혼식을 올린 박기순 합동 묘에 오랫동안 서있다가 우측 끝 묘역으로 갔다.
▲ 고 박관현의 묘 ㅡ그는 지금도 불의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
ⓒ 김창승 |
제10구역은 행방불명자 묘역이다. 사진도 묘도 없이 이름 석 자의 비만 서있다. 무궁화꽃 사진이 그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묘역이다.
▲ 행방불명자 묘역.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
ⓒ 김창승 |
안운재의 령 (1961.7.21~1980.5.20), 부 병용, 모 배연례, "17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찾지 못한 부모는 가슴이 메어지 듯 아프구나. 민중을 위해 싸우다간 너의 넋이나마 천당으로 가길 바란다"라는 글이 보인다.
그 옆 종문의 령(1946~1980.5.20)에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문이 써있다.
"돌아올 줄 알고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는데 정말 갔느냐, 막둥아. 지금 어디 있느냐. 어머니 부르며 오는 것만 같구나. 못다 핀 인생, 하늘나라에서 장미꽃처럼 영원히 이여다오..."
▲ 어머니의 기도 ㅡ막둥아, 너는 어디 있느냐. |
ⓒ 김창승 |
5.18 민주 묘역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점으로 왔을 때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멍했다. 묘역을 거닐며 때론 내가 흔들렸음이, 때론 불평했음이, 불의를 보면서도 행동하지 못했음이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육체와 힘이 있는데 무엇을 주저한단 말인가. 그런 망설임과 걱정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역을 뒤로하고 민주의 문을 나설 때 소쩍새가 또 울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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