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게 놔둘까, 도와줄 것인가... 부모라서 고민합니다

문수진 2024. 5. 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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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이고 싶은 마음 알지만, 아이에게도 배우며 즐기는 과정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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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진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동생이 나와 키가 같아졌다. 내 키는 멈췄는데, 두 명의 동생은 쑥쑥 잘도 자랐다. 큰언니의 체면이 구겨졌다. 엄마와 나는 키가 똑같은데, 동생 둘은 우리보다 8cm가 컸다. 가족사진 속 나는 언제나 발을 들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동생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분주하게 발꿈치를 올리고 내리면서도 표정은 아닌 척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다.

그게 평생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고민이었다. 나는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말하는 나에 맞춰 산다는 건 내면에 수많은 자아를 숨겨 놓은 것과 같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으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바라는 모범생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 아닌데. 난 전혀 아닌데.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나는 지독한 악필이었다. 생각이 나오는 대로 글을 쓰곤 했는데, 손이 글을 따라가지 못해서 기호처럼 글을 썼다. 내가 쓴 글을 가져간 선생님은 반에서 제일 글씨를 잘 쓰는 친구에게 다시 쓰라고 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쓴 글은 분명 내가 쓴 게 맞지만 낯설었다. 제목 아래 내 이름을 적고, 대회에 보냈다. 도지사상을 받았지만, 하나도기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불러서, 영어 편지 쓰기 대회가 있으니 글을 한 편 써오라고 했다. 중학교 들어가서 알파벳을 처음 배운 나는 교과서도 더듬더듬 읽고 있었다. 못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한글로 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미국에 있는 가상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그걸 영어 선생님이 영어로 바꿔서 대회에 보냈다.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전체조회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에게 상을 받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줄 알았다. 부끄러웠다.

그 후로 나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예 안 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밀은 달콤하지만, 비겁하고 부끄러운 비밀은 마음을 좀먹는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따라가고 싶었다. 정의, 가치, 자아와 같은 무겁고 강한 단어의 힘을 좋아한다.
 글쓰기(자료사진)
ⓒ 픽사베이
 
최근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팀을 만들고, 6월에 열리는 대회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만나는 걸로 모자라 주말에도 두 시간씩 만나 연습 중이다. 6명의 아이들과 6명의 엄마들이 모일 곳을 찾다 보니 장소가 여의치 않아서 집마다 돌아가며 연습실로 쓰고 있다. 친하지 않은 엄마들이었는데, 같은 목표를 가졌다는 이유로 급속도로 친해지고 있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학업이나 대회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대회가 있으면 데려가긴 하지만, 손을 보탠 적은 없다. 예전에 내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당장 1등을 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실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들은 나와 달리 아주 적극적이다. 모든 것에 관여했다. 아이들만으로는 할 수 없는 대회라며 팔을 걷어 부쳤다. 다른 팀은 학원 선생님이 붙었다는 말도 들었다. 아이들의 대회에 어른들이 개입해도 되냐고 물었다가, 순진한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초등학교 대회이면서 아이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게 이상했다. 아이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는 대신, 잘 짜인 대본을 던져주면서 그대로 해 보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고민하면서도, 그들과 똑같이 아들을 닦달했다. 좀 더 잘해보라고 말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지 못하는 이상 따라가야 한다고.

언젠가 누군가가 마이크 앞에서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한 행동"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공감한다. 누구나 돋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존경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당장 눈에 보이는 이력서나 학벌이 아니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만나는 그 사람만의 인성에 끌린다. 따뜻하고 다정한 눈빛, 작은 손놀림,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어떤 행동들은 나만 아는 것이지만 마음을 꽉 채울 만큼 크고 강한 힘을 가진다. 만들어진 향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의 향기만으로 주변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미술대회를 나갔다. 야외에서 진행된 대회였는데, 잔디위에 텐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가족이 보였다. 같이 간 엄마에게 저렇게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텐트 안에서 아마 엄마가 그림을 그려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실제 어땠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말도 충격이었는데, 나중에 텐트 안에서 그린 그림이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살짝 어이가 없어 당황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미숙한 아이들의 작품에 혹은 학습에 손을 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때가 있다. 연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가르친다는 건 인내심을 요구한다. 비뚤어지게 줄을 긋고, 엉성하게 물감을 칠하는 아이들이 답답해서 손 걷고 나서는 부모 마음도 이해한다. 어른인 부모의 개입이 들어가면 결과물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아이들이 직접 실수하고 겪어 보면서 실력을 쌓는 것, 그리고 힘들다고 뒤로 물러설 때마다 어른이 도와주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생각해야 한다. 아이가 1등을 하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대회에 참석해서 과정을 즐기는 과정도 중요하다. 1등은 한 명밖에 없다. 누구나 돋보이길 원하는 세상에서 실력이 없다고 편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
  
아들은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팀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제 몫을 해내야 한다. 나는 직접 도와주진 못하지만, 아들이 "엄마"를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넘어지면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홀로 우뚝 서 있을 아이들을 위해 엄마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나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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